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중국에서는 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도 이를 집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를 집행난(執行難)이라고 한다. 집행난이란 법적 효력을 발생시킨 인민 법원의 집행력 있는 법률 문건이 일련의 바람직하지 못한 영향이 개입하면서 이를 실행할 수 없거나, 실현하기 어려운 현상을 말한다.

집행난이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다. 판결을 받아도 채무자가 객관적으로 판결 내용을 이행할 자력이 없는 경우도 있고, 땅덩어리가 커 채무자를 못 찾기도 한다. 찾는다고 해도 회사가 명의만 남아 있고 실체가 없는 경우도 있다. 처리해야 할 사건 수보다 법원의 집행 업무 담당 인력이 많이 부족한 구조적 문제도 집행난의 원인이다.

이런 집행난의 가장 큰 원인은 지방 보호주의와 부처 이기주의다. 일부 지방과 부처는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 인민 법원의 집행을 방해하거나 제한하기도 한다. 판결을 다 받아 놓고도 제대로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현상이 반복되면 소송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이는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체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사법 권위나 공신력을 손상하는 행위는 공산당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에 최근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집행 신방 사건에 대한 ‘접방즉판’ 업무 시스템 수립 및 개선에 관한 의견(最高人民法院關於建立健全執行信訪案件 ‘接訪即辦’ 工作機製的意見)’을 반포했다. 신방은 공민이나 법인, 기타 조직이 서신·이메일·팩스·전화·방문 형식으로 현급 이상의 인민 정부 담당 부서에 특정 사건 상황을 알리거나 건의·의견 제시·고발한 다음 관련 행정기관이 법에 따라 이를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신문고나 청와대 국민청원과 비슷한 제도다.

신방은 법률상 용어이고 민간에서는 상방(上訪)이라 한다. 특히 상향식 의사전달 방식이 용이하지 않은 중국에서 신방은 직접적인 민의를 가장 높은 수준의 담당 기구에 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이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인식된다.

집행에 관한 신방을 ‘접방즉판’이라고 한다. 접수하는 즉시 신속한 집행 절차를 이행할 것을 강조한다. 반면 단체로 제기하는 신방, 심급을 초월해 성(省)정부에 하는 신방, 직접 베이징으로 가서 하는 신방이 발생하게 되면 집행 관할 법원의 주요 책임자와 기타 관련 책임자에게 대면 면담으로 책임을 묻도록 했다. 일찍이 2014년 2월 중공 중앙과 국무원 사무처는 중앙과 국가기관에서는 절차를 생략한 직접적인 신방은 이를 수리하지 않는다고 해 신방의 의미가 반감되기도 했다. 지방 문제가 중앙까지 퍼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이지만 베이징에 울리는 신문고 북소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느 외국 기업도 중국에서 회사를 청산하고 청산소득을 한국으로 송금하려다가 중국 지방 정부가 협조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신방으로 해결한 사례가 있다. 이 기업은 이제 떠나는 마당이니 비즈니스 환경 개선, 외상투자법 등에서 해외로 자유로운 송금을 보장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약속을 근거로 중앙 관련 부서에 신방을 넣었다. 그 후 절차가 급물살을 타면서 이 외국 기업은 무사히 중국을 떠났다.

다만 이건 아주 예외적인 일이다. 만약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려는 기업은 관할 지방 정부를 무시하고 중앙 정부에 직접 하소연하는 방식을 무턱대고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이어 가는 과정에서 오히려 상당한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방의 북소리도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