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주방 스타트업 위쿡에서 만든 빵을 위쿡 1층 카페에서 팔고 있다. 사진 이기대 이사
공유주방 스타트업 위쿡에서 만든 빵을 위쿡 1층 카페에서 팔고 있다. 사진 이기대 이사

5월 10일, 차량 공유 회사 우버가 뉴욕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수조원 부자가 된 운 좋은 사내가 있다. 상장일 기준 100조원 가치 회사의 8.6% 지분을 보유한 공동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이다. 2017년 우버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쫓겨난 캘러닉은 1년 뒤인 2018년 6월,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위반 재판에 출석해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는다. 회사 차원에서 일어났던 일, 더구나 이제 경영 책임도 없는 전 직장 일로 남의 나라 법정에 섰으니 웬만한 사람이라면 삐쳐서 한국에 눈길도 안 줄 것이다.

그러나 이 공격적인 사업가는 불과 몇 달 뒤 제 발로 서울을 찾아왔다. 이번에는 ‘공유주방(Shared Kitchen)’이라는 사업 아이디어를 들고 왔다. 정면돌파를 시도하던 우버의 한국 진출 때와 달리 업계 사람만 모아놓고 비공개 설명회를 열었다. ‘매 앞에 장사가 없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공유주방의 또 다른 영어 이름은 ‘가상주방(Virtual Kitchen)’이다. 공유주방은 여럿이 사용한다고 해서, 가상주방은 조리 장소가 사람 눈에 띄지 않기에 붙은 이름이다. 물론 둘의 의미가 같지 않다. 굳이 플로베르의 ‘일물일어(一物一語)설’을 빌려오지 않아도 이렇게 두 가지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 둘은 셀링 포인트도 다르고 사업 목적도 다른 것이다. 실제로 국내 공유주방 업계에서는 공유주방과 가상주방 두 가지 방식이 각각 발전하고 있다.


외식 산업 진출 발판 공유주방

먼저 공유라는 개념에 충실한 스타트업 ‘위쿡’의 공유주방 모델을 살펴보자. 종로구 사직공원 근처, 초기 스타트업답지 않게 단독 사옥에 입주한 ‘위쿡’은 2층에 오픈주방이 있다. 벽을 따라 공용의 오븐, 냉장고 등 상업용 주방 시설과 조리에 필요한 재료를 전처리하는 공용 공간을 배치했다. 그리고 홀 중앙에는 시간당 1만원 정도 사용료로 빌릴 수 있는 스테인리스 재질의 조리대가 있다.

오픈주방 공간을 빌리는 사람은 대개 음식 솜씨 좋은 개인이거나, 메뉴 개발을 하는 초기 외식 창업자, 사전 작업 공간이 필요한 푸드트럭 사업자다. 판매 목적으로 제조된 수제 식품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유통된다. 조리는 어떻게 해본다 해도 알리고 파는 것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다.

‘위쿡’ 같은 공유주방 운영 업체들이 이 부분을 돕는다. 자체 온라인몰도 있지만 다른 유통 채널 입점도 도와준다. 가장 큰 장점은 상업용 주방에서 연습할 기회와 음식 산업 진출에 따른 초기 비용 절감이다.

공유주방에는 개별주방도 있다. ‘위쿡’은 33㎡ 미만의 분리된 주방 공간을 월 단위로 임대한다. 캘러닉이 우리나라에 소개한 ‘클라우드 키친’이나 국내 스타트업인 ‘고스트 키친’도 개별주방 임대 사업자다.

소규모 개별주방은 케이터링이나 핸드메이드 식품 제조에 적합하다고 하는데, 마침 ‘위쿡’에 샐러드 배달 서비스를 하는 스타트업 ‘프레시코드’팀이 입주해 있었다.

온라인 주문을 받아 식사 대용 샐러드를 배달하는 ‘프레시코드’는 한남동의 33㎡ 크기 주방에서 시작했다. 이 회사는 작년 가을 투자를 받아서 성수동에 390㎡짜리 생산시설을 준비 중이다.

한남동 주방이 생산 포화상태에 도달한 올 초, 남 애타는 사정도 모르고 정기고객 신청이 속절없이 늘어났다. 수소문 끝에 3개월간 ‘위쿡’의 개별주방을 빌렸고, 여기서 매일 300명분의 샐러드를 만든다. 프레시코드의 유이경 공동창업자는 “공유주방이 없었다면 그 주문을 그냥 놓쳤을 것이다. 다른 대안이 없었다”며 공용주방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프레시코드가 공유주방에서 만든 음식이 선반 위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이기대 이사
프레시코드가 공유주방에서 만든 음식이 선반 위에서 배달 오토바이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이기대 이사

한국 공유주방, 규제로 벽쳐

프레시코드가 입점했던 개별주방은 벽과 문으로 공간이 분리돼 있다. 그러나 외국의 공유주방 사진을 보면 거대한 통짜 공간 사진만 있지 굳이 벽을 쳐서 나누지 않았다. 우리나라 공유주방 업체가 방을 나누는 가장 큰 이유는 규제다. 현행법상 트인 주방 공간을 구획별로 나눠 쓴다고 하면 사업자 등록이 나오지 않는다. 주방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책임 소재를 가려야 행정조치가 가능한데, 경계가 명확하지 않으면 공무원이 불안해한다.

따라서 현재 오픈주방에서 식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이들은 공간을 임차한 개인 사업자가 아니다. 공유주방을 소유한 회사가 모든 책임을 지는 것으로 돼 있고, 식품을 만든 사람은 직원 신분이며 팔린 매출은 급여로 사후 정산하는 구조다. 법은 지켜졌을지 모르나 공유주방·가상주방 아이디어가 갖는 장점은 빛이 바랬다. 그나마도 규제가 풀리기를 기다리며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해법이다. 오픈주방에서 사업자등록을 허용해주자는 안건이 규제 완화 샌드박스 심의에 올라 있다고 한다.

만약 규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에서 공유주방이란 용어는 법인이 소유한 배달전문 음식공장을 지칭하게 될 것이다. ‘가상’이 갖는 비용 절감 효과는 위력적이다. 사용 편의성을 최적화한 배달 앱, 비용 절감이 가능한 도시의 높은 인구 밀집도, 젊은 세대에서 시작된 확장일로의 배달 문화 덕택이다.

역삼역 뒷골목에 있는 ‘오픈더테이블’은 가상주방 분야의 선두주자다. 수십 명의 조리 담당 직원이 ‘배달의민족’ ‘푸드플라이’ ‘우버이츠’ ‘띵동’에서 팔리는 10여 개 브랜드 300여 종의 메뉴를 조리한다.

식당 경영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음식점은 매출 저하, 인력 문제, 임대료 상승이라는 삼중고를 겪고 있다. ‘숙박 및 음식점업’의 5년 생존율은 2017년 기준으로 18.9%였다. 52시간 초과근무 금지로 사무실이 밀집한 도심은 저녁 손님이 거의 없다. 수익성 높은 주류 판매를 동반한 저녁 장사를 못 하는데 어떻게 운영이 되겠는가. 프랜차이즈 커피숍들의 창궐로 대학생 알바들이 식당을 외면하는 것도 오래된 이야기이고, 최저임금 인상과 임대료 상승도 고통스럽다.

요즘 직장인들은 회사 근처에서 저녁을 먹는 대신 오후에 떡볶이 같은 간식을 주문해서 먹고, 일찍 퇴근하면 집에 가서 음식을 시켜 먹는다. 배달 전문 가상주방은 이 문제를 파고들었다. 홀 근무자가 없으니 인건비가 줄고, 배달료는 소비자 부담으로 넘겼다. 부동산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데서 오는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음식업은 99% 개인 사업자다. 시대가 고객을 오프라인에서 배달 시장으로 보내버렸는데, 음식 업자는 따라가지 못하게 해서는 공정하지 않다. 규제를 풀어줘서 초기 연습 단계부터 실제 장사까지 가상주방이 지닌 장점을 개인 사업자도 누리게 해주기 바란다.

혹시 규제 하나 풀어주고 다른 규제를 하나 만들고 싶은 공무원이 계시면, 포장 쓰레기 문제를 들여다보시면 좋겠다. 점점 더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배달 음식에 재처리가 가능한 포장재를 쓰도록 권하는 조례 제정이 더해진다면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