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이 없는 사과는 대중의 분노를 자아낼 뿐이다.
진정성이 없는 사과는 대중의 분노를 자아낼 뿐이다.

가수 정준영이 몰래 카메라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사과했지만 진정성이 없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3년 전, 사건이 처음 불거져 기자회견을 하면서 친구한테 “죄송한 척하고 올게”라고 보낸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그의 거짓이 들통났다. 정준영은 한마디로 기자회견이라는 ‘세트장’에서 진정성을 ‘연기’해보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셈이다. 미숙한 사과는 나중에라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진정성을 연기하다 들통나는 경우는 용서받을 길이 없다.

영어에서 ‘진정성(authenticity)’이라는 단어는 자신에게 진솔함(true to oneself)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진정성 있게 보이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남에게 진실할 수 있을까. 어떤 현란한 소통 기법을 동원해도 화자의 진정성을 청자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천만금짜리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과와 그렇지 않은 사과의 차이도 여기에서 나온다.

진정성 있는 사과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하게 복기하는 것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행동은 잘못을 깨달은 가해자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정확한 복기는 진정한 사과의 시작이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잘못에 구더기가 생겨 거적을 덮어 놨더라도, 이 거적을 들춰내 구더기를 직시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자신의 잘못을 있는 그대로 담지 않은 사과는 나중에 책임 소재의 문제나 법적 분쟁에서 벗어나려는 것을 염두에 둔 행동에 그칠 뿐이다. 지금 당장 쏟아지는 여론의 뭇매를 벗어나려는 연기일 개연성이 높다.

자신의 잘못을 명확하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일관하며 사과했던 유명 인사들이 몹시 많다. 우선 ‘땅콩 회항’으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있다. 조 전 부사장은 자기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끝내 밝히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사과했다. 자신의 발언으로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도 예외는 아니었다. 측근 비리와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제 가까운 주변에서, 집안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드렸습니다”라고 모호하게 사과했다.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과와 비교된다. 그는 “사과합니다. 저와 제 주변의 돈 문제로 국민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리고 있습니다”라고 자신의 잘못을 직접 거론하며 고통스럽게 복기하는 사과를 했다.

일본과 독일 지도자의 전쟁에 대한 사과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징용자들에 대한 아베 총리를 비롯한 역대 일본 총리들의 사과를 보면 항상 일본이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구체적으로 복기하지 않는다. 과거의 사건을 최대한 애매모호하게 표현한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이 무슨 짓을 어떻게 했는지 절대로 정확하게 기술하지 않는다.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책임져야 할 것을 우려한 탓이다. 일본 지도자들과 달리, 독일 지도자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로 과거를 용서받았다.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폴란드를 찾아가 학살된 유대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과거 자국의 잘못을 명확하게 복기해가며 사과했다.

두 번째로, 사과에 방어적인 조건을 달면 변명이 돼 진정성을 상실한다. ‘만약에’ ‘그럼에도’와 같은 단어로 조건을 내걸면서 사과를 하는 것이 그 나쁜 예다. 사과하는 사람의 진짜 생각과 대중에게 하려는 말이 다를 경우, 이런 ‘조건부 사과’가 나온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살아난다는 생각과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다. 사과의 득실을 정치적으로 계산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직접적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유감이다’ 등의 용어를 과도하게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사과할 마음이 없는데 사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게 속마음일 것이다.

2013년 남양유업의 사과가 대표적인 조건부 사과다.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하면서 물건을 강매했던 ‘밀어내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됐다. 그러자 남양유업에서는 “녹취에서 드러난 영업사원의 욕설에 대해선 우리의 잘못”이라면서도 “밀어내기 등은 일부 대리점의 문제일 뿐”이라고 꼬리를 잘랐다.

세 번째, 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문제가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사과를 하는 사람이 책임을 통감하고 지금까지의 손해에 대해 배상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더 필요한 자세는 미래는 이런 일들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것이다.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유통한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이 3월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정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유통한 혐의를 받는 가수 정준영이 3월 21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정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타이레놀 사건’, 좋은 사과의 예

이런 의미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의 ‘끝판왕’은 1982년 미국의 소비재·의약품 생산업체 존슨앤드존슨의 타이레놀 사건에 대한 사과이다. 정신병자가 타이레놀에 독극물을 투입한 사건이 발생하자 경영진은 자신들의 잘못이 아님에도 이에 대해 즉각 사과했다. 그리고 그 즉시 일련의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했다.

미 FDA에서는 사고가 발생한 시카고 지역의 타이레놀을 수거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존슨앤드존슨은 모방범죄가 생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카고뿐 아니라, 미국과 캐나다 전역의 타이레놀을 수거해서 소각했다. 존슨앤드존슨의 당시 대응 가이드라인은 ‘소비자에 대한 책임이 최우선’이라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존슨앤드존슨은 주요 미디어에 협조를 요청해 대대적인 경보를 발령했다.

타이레놀 문제가 해결되자 직원들은 브랜드 가치가 손상된 타이레놀의 생산을 포기하자고 했다. 이에 경영진은 “타이레놀의 명예는 더 안전한 타이레놀로 살려내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런 노력 덕에 존슨앤드존슨의 타이레놀은 진통제의 대명사로 다시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과를 받는 대상에게 용서를 과도하게 요청하는 것은 월권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용서를 강요하는 건 빨리 모면해보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사과를 하는 것으로 끝내야 한다. 용서는 피해자의 몫으로 남기는 것이 상대에 대한 배려다.

바야흐로 초연결 디지털 시대다. 정보가 비대칭적으로 공유되던 시대에는 진정성도 연기가 가능한 영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CCTV와 통신의 발달로 인해, 모든 것이 촬영되고 공유된다. 이런 시대에 진정성 없는 사과는 오히려 대중의 분노를 자아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