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절 T세포가 고장 나면 모발이 새로 나지 않아 탈모가 진행된다.
조절 T세포가 고장 나면 모발이 새로 나지 않아 탈모가 진행된다.

탈모인 10명 중 8명은 안드로겐형 탈모다. 안드로겐형 탈모의 가장 큰 원인은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DHT) 호르몬이다. 따라서 DHT를 억제하면 대부분 탈모는 진행을 멈추거나 호전된다. 모발에 영양분을 공급하거나 항산화제와 성장인자 공급을 병행하면 보다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다.

그러나 치료받는 환자 중 5% 정도는 전혀 치료가 되지 않기도 한다. 이들은 병원에서 탈모를 치료하면서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소비한다. 그럼에도 탈모가 치료되지 않는다면 탈모 환자는 불만은 물론 배신감까지 들 수 있다. 탈모를 치료하는 의사도 마찬가지로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다.

도대체 왜 탈모가 치료되지 않을까. 이 고민의 해결법을 제시한 논문이 2017년 발표됐다. 미국 캘리포니아 의대 마이클 로젠블럼 박사의 ‘모낭의 조절 T세포(regulatory Tcell)가 모발 성장에 관여한다’는 내용이다. 조절 T세포는 원래 면역 활동의 수위를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인체에 해로운 세균 등 적군은 공격하고 아군은 보호한다.

조절 T세포의 또 다른 역할은 모발이 새로 나는 과정에 관여하는 것이다. 모발은 성장기를 거치면서 자라고 빠지기를 반복한다. 모유두(母乳頭) 세포에서 신호를 전달해 모낭 하단부에 위치한 벌지(bulge) 구역에 있는 모낭줄기세포를 활성화하면 모발이 새로 난다. 모유두 세포는 주변의 혈관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아 모발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세포다. 모유두 세포로부터 모낭줄기세포로 신호를 전달하는 과정은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이 시스템을 관장하는 것 중 하나가 조절 T세포다. 조절 T세포가 고장 나면 모발이 새로 나지 않아 탈모가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그는 쥐 실험을 통해 이 같은 가설을 얻었다. 피부에서 모낭이 재생되기 전 조절 T세포를 제거한 쥐는 털이 다시 나지 않았다. 그러나 모낭이 재생된 후 조절 T세포를 제거했을 때는 털이 다시 자랐다. 이를 통해 조절 T세포가 모낭에서 줄기세포의 모발 재생 작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유추한 것이다. 그동안 조절 T세포는 줄기세포를 염증으로부터 보호하는 기능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조절 T세포 고장…보완책 써야

DHT를 억제하는 약물 피나스테리드나 두타스테리드를 투여해도 탈모가 개선되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탈모가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되거나, 새로운 모발은 나지만 계속 빠지는 양이 줄지 않아 탈모가 개선되지 않는 경우다.

이 경우 면역 억제제나 벌지 구역의 줄기세포를 활성화하는 비타민A유도체를 도포하거나 복용하면 탈모가 개선되기도 한다. 조절 T세포가 역할을 다하지 못했던 부분을 비타민A유도체가 보완하는 것이다. 로젠블럼 박사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다.

하지만 조절 T세포 이론도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비타민A유도체를 사용해도 치료되지 않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조절 T세포에 대한 이론은 탈모 치료의 또 다른 가능성을 여는 차원에서 유의미하다. 그동안 안드로겐형 탈모 치료는 DHT를 감소시키는 치료법에 집중했던 탈모인들에게 새로운 관심사가 될 전망이다.


▒ 홍성재
원광대 의대 졸업, 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