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들은 관련 부서가 모두 모여 토론해서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결정하지 못한 부분은 실무자에게 위임하고 끝낸다.
스타트업들은 관련 부서가 모두 모여 토론해서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결정하지 못한 부분은 실무자에게 위임하고 끝낸다.

뉴욕의 경제 뉴스 전문 매체인 블룸버그는 매년 1월, ‘블룸버그 혁신지수’로 평가한 국가 순위를 발표한다. 우리나라는 올해도 1위를 지켜, 6년 연속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기사가 뜨자 기획재정부는 “어려운 대내외 여건에서 정부와 기업이 연구·개발(R&D) 투자를 확대”한 것이 반영된 거라는 보도자료를 돌렸다. 실제로 세부항목에서 R&D 투자는 세계 2위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부 과제 R&D의 성공률이 무려 97%라는 ‘웃픈 현실’을 블룸버그가 알았어도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었을까 싶다. 높은 성공률은 위험성과 불확실성이 높은 분야보다 단기간에 성공이 확실한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원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생산성’ 항목은 18위라는 박한 평가를 받았다.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우리 기업의 생산성은 전반적으로 여전히 낮다. 이해를 돕기 위해 OECD의 2017년 자료를 가져왔다. 각국 노동자의 시간당 GDP 기여분을 비교해보면, 1위인 아일랜드가 100달러, 미국이 72달러, 우리나라는 37달러, 우리 밑에 딱 하나 남은 멕시코가 21달러였다. 낮은 생산성을 벌충했던 긴 근로시간도 시대의 변화로 인해 줄어드는 추세다. 효율이 낮은 데다 투입 시간마저 적다면 경제 성장은 어려워질 것이다.

우리 생산성 문제의 특징은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이 현저히 낮다는 점이다. 2018년 OECD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생산성 차이가 가장 큰 나라로 지목됐다. 이 차이는 두 집단의 임금 격차로도 연결된다. 제조업 대비 서비스업 생산성도 44%로 낮은 편이다. OECD 국가 평균(84%)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제조업이 장비 의존도가 높고 인적 요인이 낮은 반면, 서비스업은 사람만으로 결과물을 만든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우리 기업의 조직 관리가 매우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스타트업도 생산성 문제를 고민한다. 거의 모든 스타트업이 서비스 업종의 중소기업이며, 한국의 경직된 제도와 사업 환경 속에서 사업을 한다. 그래도 차이가 하나 있다면 스타트업들은 유연한 조직 문화를 갖추고 그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학 경험이나 다국적기업, 컨설팅펌 출신이 많은 스타트업 젊은 경영진은 직원 사기를 끌어올려 생산성을 높이는 서구식 인사관리에 관심이 많다.

사무실에서 최고의 효율을 내는 방법은 간단하다. 컨디션과 근무 환경이 최상인 상태에서 해당 업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전권을 쥐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환경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명제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다만 업무 흐름과 근무 환경을 조정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존에 근로 의욕을 저하시켰던 의사 결정 구조, 커뮤니케이션 채널, 근무 환경을 유연한 조직 문화로 대체해 생산성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효과는 근사하다.

기업 의사 결정 과정의 첫 번째 낭비 요소는 여러 단계 결재에 따르는 서류 작성, 수정 시간과 기다림이다. 현실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실무자임에도 결정은 윗사람이 내린다. 직위가 높을수록 현업을 모르니 노파심에서 주문은 많아지고 사소한 것들이 지적 사항으로 쌓인다. 더구나 결재권자가 항상 자리를 지키는 것도 아니라서 일의 진척이 느려진다. 사전 품의와 실 집행 내역 보고까지 시간 낭비가 두 배다.

여러 명의 의견을 청취하는 방법은 결재 말고도 많다. 결재로 책임 소재를 가린다지만 직무상 내린 결정에 어떻게 책임을 지울 수 있을까. 그래서 스타트업들은 관련 부서가 모두 모여 토론해서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결정하지 못한 부분은 실무자에게 위임하고 끝낸다. 회의 개최가 어려운 상황이라면 협업 툴에 올려 온라인 의견 청취로 대체한다. 정답을 찾는 데 시간을 많이 들이지 않고 해나가면서 고친다.

제대로 된 사내 커뮤니케이션은 조직 구성원이 동일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여정 중에 서로 사기를 북돋는 것이다. 이 부분을 잘하는 회사들은 업무 중간중간 실무자들이 부족한 정보를 토대로 판단을 내려야 할 때 그 공극(空隙)을 메워준다. 또 모든 판단 시점에 존재하는 불확실성도 조직 가치관에 부합하는 투명하고 상식적인 결정으로 대응한다. 그래서 스타트업 대표들은 매주 전 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리더들의 철학을 공유하고 각종 사안을 브리핑해 주며, 질의응답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도록 힘쓴다. 불균등한 정보 배분은 사내 정치를 조장하고 힘 있는 부서를 사일로(Silo·회사 안에 성이나 담을 쌓고 외부와 소통하지 않는 부서)로 만들기 때문에 금지된다.

스타트업의 기본적인 사무 환경은 고사양 노트북, 보조 모니터, 사무용 소프트웨어, 팀과 공유하는 보조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등 네 가지다. 여기에 ‘구글 G스위트’ ‘오피스365’ ‘잔디’ ‘슬랙’ ‘트렐로’ 등 협업 툴, ‘드롭박스’ 등 클라우드 서비스 계정은 필수다. 잔디라는 국산 협업 툴을 예로 들면, 개인 간 톡 기능도 있고 주제별로 대화방을 만들어 파일 공유도 가능하다. 결재권자까지 모두 참여한 대화방에서 의견을 공유하고 이의가 없으면 바로 진행하니 업무 속도가 빨라진다. 별도의 회의록 없이 대화방에 남은 기록을 검색하면 되는 편리함에 이미 20만 개 기업들이 사용 중이다.


근태관리·업무일지…옛 방식은 버려라

새 직원이 오면 드라이브에 저장된 과거 작업물의 URL 주소를 가르쳐주는 것으로 인수인계가 끝난다. 외부 접촉이 많은 직무라면 명함 관리 업체 리멤버의 팀 명함첩 기능으로 동료가 등록해 둔 명함을 활용한다. 모든 자료는 검색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클라우드 기반의 툴이 그 역할을 한다.

사무직 직원들의 근태관리는 갈등만 일으키기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직원이 자리에 오래 앉아 있다 하더라도 그가 카카오톡을 통해 개인적인 일을 하는지, 업무를 보는지 구분이 안 되기 때문이다. 또 어떤 회사는 이런 개인 메신저를 업무에 활용하기도 한다. 관리자가 아니라면 자리를 지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그래서 각 프로젝트의 마감 시간과 결과물의 질만 평가하면 된다. 스타트업 중엔 근무지의 제한을 푼 경우가 많다. 노트북을 챙겨 카페를 가든 회의실에 숨어서 하든 가장 몰입도 높은 장소와 시간에 일해야 효율이 높다.

과거에 생산성 향상을 위해 매시간 업무일지를 쓰게 하거나 집중 근무 시간을 적용하는 기업도 있었다. 사람마다 일하는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그런 세부적인 것은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게 맞다. 경영자라면 업무용 사스(SaaS) 소프트웨어를 사는 데 비용 아끼지 말고, 최대한 직원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그들의 판단을 존중하려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 대신 HR 책임자는 주변 사람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문제 직원을 어떻게든 설득해서 퇴사시켜야 한다. 어느 스타트업 HR 팀장은 “젖은 낙엽을 핀셋으로 떼어내는 작업이 가장 어렵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래도 누군가 궂은일을 해야 한다.

회사 규모가 작을수록 근속 기간이 짧아지고 경력이 쌓이면 떠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정말 필요한 사람이라면 파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일 잘하는 선수에게는 돈으로 보답하고 성실한 이는 진급을 시킨다. 가르쳐서 빼앗기는 악순환을 막으려면 신뢰하고 배울 만한 동료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이 중심이 돼야 회사가 발전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