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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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원 서울아산병원노년내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사,KAIST 이학 박사
정희원 서울아산병원노년내과 교수 서울대 의학 학·석사,KAIST 이학 박사

나이가 그다지 많지 않은데도 갑자기 치매가 생긴 것 같다며 진료실을 찾는 사람이 꽤 있다. 빠른 임상 경과가 병력이나 뇌 사진으로 잘 설명이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 중 상당수의 환자는 인지 기능 변화뿐 아니라 수면 이상, 우울감, 불안 등을 겪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세히 면담해 보면 스트레스나 업무 부담으로 잠을 줄이거나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불면 증상을 경험하며 술이나 수면제를 만성적으로 사용하는 환자들이 많다. 수면의 양과 질이 모두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치료를 위해 증상의 변화를 역추적해 수면 문제의 계기가 된 생활 속 원인을 찾아낸다. 원인을 치료하기 시작하면 수면제 복용은 중단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수면의 패턴, 양과 질이 회복되면서 환자가 호소하던 ‘치매 증세’도 수개월에 걸쳐 좋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지난 20년간의 연구를 보면 수면 부족은 아주 강력한 뇌 가속 노화 인자인 것이 점차 확실해지고 있다. 하룻밤을 새우는 것은 혈중알코올농도 0.08%(면허 취소 수준인 0.1%에 가까운 정도)와 비슷한 집중력 장애를 일으킨다. 수면 부족은 대뇌 기능을 즉각적으로 떨어뜨리는데 집중력, 단기·장기기억력과 의사 결정의 질 모두에 나쁜 영향을 준다. 약간의 수면 결핍이 일정 기간에 걸쳐 쌓여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0일간 하루에 6시간만 잠을 자면, 24시간 동안 자지 않은 사람과 비슷한 수준의 집중력을 보인다. 

경영인은 깨끗하고 정확한 의사 결정을 수행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핵심 역량이다. 그런 의미에서 잘 시간을 아끼는 습관은 극히 해롭다. 만성적인 수면 부족 습관은 치매를 부른다. 연구 결과를 종합해 보면 7시간 30분을 자야 하는 사람이 계속 6시간만 자면 치매가 발생하는 시기를 10년쯤 앞당길 수 있다. 수면 부족이 쌓이면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만성적으로 높아지며 심혈관 계통에 부담이 생겨 심근경색 같은 질환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커지고, 면역 기능이 떨어진다. 이런 변화 탓에 잠이 부족하면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꾸준히 해도 근육은 늘지 않고 배가 나온다.

인지 기능을 해치지 않을 수 있는 최소 일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이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수면 시간은 8시간 22분이다. 하지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 격언처럼 우리 사회에서 무언가를 성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잠에 인색하고, 잠을 학대하는 경우가 많다. 필립스가 2021년 세계 수면의 날을 맞아 수행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일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42분에 불과하다. 나라 전체가 잠을 아끼면 뭔가를 더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잘못된 가설을 바탕으로 굴러가고 있다.

일이 많아서 잠을 줄인다는 전문직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잠을 줄이기 때문에 집중력·업무 효율이 떨어지고, 이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애꿎은 잠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이 생기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조직의 성공을 원하는 경영인이라면, 구성원이 잠을 충분히 잘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라. 긴 근무 시간과 새벽 회의는 강력한 규율처럼 보이지만 조직의 건강과 생산성을 모두 파괴한다는 것을 인지하라. 성공을 진심으로 원한다면 잠 시간만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