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에 등장한 핀란드군의 K-9 자주포. 국산 무기 중에서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한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퍼레이드에 등장한 핀란드군의 K-9 자주포. 국산 무기 중에서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한 대표 주자라 할 수 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71년 주한 미 7사단이 철군하고 동남아가 공산화의 위험에 노출됐다. 안보에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한국 정부는 1974년 ‘율곡 사업’으로 명명한 국산 무기 개발 및 기존 무기 체계의 현대화에 나섰다. 이때부터 자주국방을 위한 본격적인 방위산업의 역사가 시작됐다. 물론 무기의 국산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그때 처음 깨달은 것은 아니었다.

6·25 전쟁이라는 국난을 겪었기에 자력으로 무기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열망은 그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경제력, 기술력을 비롯해서 충분한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못한 것이었다. 이처럼 부족한 것이 많다 보니 가장 기본이 되는 소총의 면허 생산을 시작으로 걸음을 내디뎠고 국력 신장과 더불어 점차 분야를 넓혀갔다.

그렇게 4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는 소총을 넘어 전차, 장갑차, 미사일, 구축함, 잠수함, 헬리콥터, 초음속 전투기 같은 고성능 무기들을 생산해서 일선에 배치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산업으로서의 규모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 방위산업은 세계 7~8위로 평가될 정도다. 백지에서 시작해 엄청나게 성장한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혹자는 외국에서 공급받은 원천 기술이나 부품 때문에 일부 무기는 국산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세밀한 기준으로 따지면 지구상에서 무기를 완전히 자급자족하는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미국의 최신 무기인 F-35 전투기 같은 경우도 처음부터 여러 나라의 참여로 개발됐다.

그렇게 자력으로 개발된 무기 중 일부는 해외에도 수출돼 호평을 받고 있다. 60만 명의 상비군을 유지하고 있기에 우리나라는 자체 수요가 많은 편이다. 하지만 중화기 이상의 고급 무기는 내수만으로 방위산업을 유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때문에 하나의 산업 분야로 계속 자생력을 유지하려면 해외 수출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다.

이렇게 외국의 문을 두드려 판매에 성공한 무기 중에서 K-9 자주포는 가장 성공한 사례다. 1990년대 말, 터키에 기술 제공하는 것을 시작으로 해외 시장 개척에 성공했다. 현재는 남아시아의 군사 강국인 인도와 전통적으로 독일제를 비롯한 유럽산 무기를 애용해 온 핀란드, 에스토니아, 노르웨이 같은 국가들에 완제품 수출이 이뤄졌다.


면허 생산한 52구경장 AS-90 자주포 포탑을 UPG-NG 차체와 결합한 초기의 AHS 크랩. 하지만 사격시 반동이 심해 실패로 막을 내렸다. 사진 위키피디아
면허 생산한 52구경장 AS-90 자주포 포탑을 UPG-NG 차체와 결합한 초기의 AHS 크랩. 하지만 사격시 반동이 심해 실패로 막을 내렸다. 사진 위키피디아

무기 자체 개발 나선 폴란드

저렴하면서도 현존 동급 자주포 중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성능이 좋고 운용 실적도 풍부하다는 점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슷한 시기에 개발에 나섰으나 각종 시행착오를 겪은 후 K-9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전력화에 성공한 자주포가 있다. 바로 폴란드의 AHS 크랩(Krab) 자주포다.

폴란드는 냉전이 종식되자 1999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한 후 서방의 기술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예산을 절감하고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가능하면 완제품 대신 부품이나 기술을 도입해 자력 제작에 나섰다. 냉전시절에 상당한 소련제 무기를 면허 생산해 동유럽에 공급했을 만큼 기술력이 풍부했기에 잘못된 판단은 아니었다.

폴란드의 자주포 AHS 크랩도 그런 정책에 따라 개발이 시작됐다. NATO의 규격이 예전 동유럽권과 달라서 새로 개발하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 수밖에 없다. 이에 폴란드는 전차, 장갑차, 자주포 등의 기갑차량 공통 차체로 개발해 놓은 자주포 차대인 UPG-NG에 영국제 AS-90M 포탑을 면허 생산해 결합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AS-90M 포탑은 UPG-NG와 궁합이 맞지 않았다. 실험 결과 구조적으로 차체가 약해 사격 시 요동이 심했다. 때문에 연사가 어려웠고 차체에 균열이 발생하는 등 고장이 빈번했다. 결국 2011년 완성해 놓고도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해 전력화가 어려워졌다. 그 대안으로 성능이 입증 된 K-9 차체에 결합한 후 시험에 나섰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AHS 크랩은 최고의 자주포 중 하나로 환골탈태했다. 만족한 폴란드는 120대를 목표로 2015년부터 양산을 개시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들어간 모든 비용 등을 고려하면 AHS 크랩의 조달가가 AS-90M 완제품과 비교해서 그다지 차이가 없다. 결론적으로 약 4년이라는 시간을 낭비한 셈이다.

자국 산업 보호와 기술 획득이라는 측면에서 이를 투자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AHS 크랩의 가장 큰 문제는 처음에 상황을 너무 낙관적으로 예상해서 실패에 대한 대책이나 대안을 미리 준비해 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무기 개발 과정에 있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지만 경영에 있어 충분히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사례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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