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추된 독일군 Bf 109 전투기의 잔해. 하르트만은 352기 격추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16번이나 격추당하고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을 겪기도 했다. 실패를 극복했기에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격추된 독일군 Bf 109 전투기의 잔해. 하르트만은 352기 격추라는 대기록을 세웠지만 16번이나 격추당하고 목숨을 잃을 뻔한 위험을 겪기도 했다. 실패를 극복했기에 대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비행기가 탄생하자마자 인간들은 이 신기한 문명의 이기를 무기로 사용할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정찰이나 연락용도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에서 지상의 목표를 향해 폭탄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라이트 형제의 성공 후 불과 10년 만에 야포의 사거리보다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등장하면서 전쟁의 패러다임이 바뀌어 갔다.

당연히 당하는 쪽에서 이를 그냥 바라만 볼 수는 없었다. 적기를 격추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일단 당시에 사용하던 총이나 대포로 사격해 보았으나 정확도가 떨어져서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사실 컴퓨터와 고성능 센서 덕분에 사격 통제 장치가 획기적으로 발달한 지금도 무유도(無誘導) 화기로 항공기를 격추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하늘에서 아군기로 맞상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이 됐다. 그렇게 전투기들이 진검 승부를 펼치는 공대공 전투가 시작됐다. 인류가 탄생한 이래 그저 바라만 보던 존재였던 하늘이 격렬한 전투 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빠른 속도로 비행하며 3차원으로 기동하는 적기를 격추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적군기의 뒤로 돌아가서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당연히 상대도 틈을 주려 하지 않았다. 때문에 승패는 전투기의 성능과 이를 다루는 조종사의 능력에 의해 결정됐다. 통상 5기의 적기를 격추한 조종사에게는 최고라는 의미를 지닌 에이스(ace)라는 호칭이 부여됐다. 5라는 숫자가 적은 것 같아도 막상 이를 달성하기는 어려웠다.


2차 대전 당시 독일 공군은 에이스의 보고

전쟁의 판이 커지면서 뛰어난 에이스들이 속속 등장하는데, 특히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은 에이스의 보고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었다. 무려 100기 이상을 격추한 수퍼 에이스만 108명이나 배출했다. 현재까지의 ‘격추 왕’ 중에서 124위인 핀란드의 일마리 유틸라이넨(Ilmari Juutilainen)을 제외하면 그 이상은 모두 당시 독일 공군 소속이다.

일정 횟수를 출격하면 임무를 바꿔주는 연합군과 달리 독일은 조종사들이 살아 있다면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투에 투입했던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당시 연합군 최고의 에이스였던 소련의 이반 코체더부(Ivan Kozhedu)의 전과가 62기라는 점과 비교하면 독일 조종사들이 남긴 기록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이처럼 대단한 에이스 중에서도 최고의 기록을 달성한 인물은 독일 공군 조종사 에리히 하르트만(Erich Hartmann)이다. 전쟁 중 그가 격추한 적기는 무려 352기에 이른다. 대규모의 공중전이 사라진 현대에는 5기의 격추도 거의 없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가 세운 기록을 능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평가된다. 그만큼 대단한 불멸의 기록이다.

하르트만은 독일의 쇠퇴가 시작된 1942년부터 참전했기에 활동 기간이 긴 편이 아니었음에도 엄청난 기록을 세웠다. 그에게 피해를 가장 많이 본 소련은 너무 약이 올라 미군에게 항복한 그를 전범으로 몰아 인계받은 후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10년 넘게 강제 노역을 시켰을 정도였다. 1955년 석방된 이후에 서독 공군에 입대해 재건에 앞장서기도 했다.


제트기 시대 미 공군 최초의 에이스였던 제임스 자바라(James Jabara). 한국전쟁 당시에 총 15기의 적기를 격추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제트기 시대 미 공군 최초의 에이스였던 제임스 자바라(James Jabara). 한국전쟁 당시에 총 15기의 적기를 격추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성공은 실패를 극복해야 이룰 수 있어

그런데 전쟁사에 대단한 기록을 남긴 인물인 하르트만이 처음부터 잘 싸웠던 것은 아니었다. 하르트만은 최초 출격 당시 너무 겁을 먹어 편대 전체에 누를 끼치는 실수를 연이어 범했고 귀환 중 연료마저 떨어져 기체를 대파했다. 격분한 부대장이 비행 정지를 시키고 기초부터 다시 배우도록 조치했다. 한마디로 최악의 수모였다.

대개 초임자가 처음에 이런 실패를 겪으면 기가 꺾이고 의기소침해지는 것이 보통이지만 하르트만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하나하나 곱씹고 복기하면서 차분히 실력을 길러나갔다. 시행착오를 약으로 생각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그는 역사상 최고의 에이스가 될 수 있었다.

기업을 경영하다 보면 도약을 위해 커다란 도전을 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한국 경제의 도약기였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많은 기업가가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서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도전적인 기업가가 드문 편이다.

실패할 경우 닥칠 어려움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실패를 성공으로 가기 위한 소중한 자산으로 생각하는 서구와 달리 이를 용인하지 않고 질책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도전을 위축시켰다. 많은 이들은 352기 격추라는 기록을 달성하는 동안 하르트만도 16번이나 격추를 당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이처럼 성공은 실패를 극복해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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