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재팬의 웹툰 앱인 픽코마의 일본 광고. 작품 2만 개 이상, 매일 ‘기다리면 0엔’이라고 쓰인 문구가 보인다. 픽코마는 일본 만화 앱 매출 순위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 시장 중심이면서도 올해 들어 전 세계 앱 매출 6위에 올랐다. 미국·중국 기업을 빼고는 유일하게 톱10에 들었다. 사진 픽코마
카카오재팬의 웹툰 앱인 픽코마의 일본 광고. 작품 2만 개 이상, 매일 ‘기다리면 0엔’이라고 쓰인 문구가 보인다. 픽코마는 일본 만화 앱 매출 순위에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 시장 중심이면서도 올해 들어 전 세계 앱 매출 6위에 올랐다. 미국·중국 기업을 빼고는 유일하게 톱10에 들었다. 사진 픽코마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온라인 칼럼 ‘최원석의 디코드’ 필자, ‘테슬라 쇼크’ ‘왜 다시 도요타인가’ 저자, 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온라인 칼럼 ‘최원석의 디코드’ 필자, ‘테슬라 쇼크’ ‘왜 다시 도요타인가’ 저자, 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

만화 왕국 일본의 웹툰 이용자 수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급증하고 있다. 일본 웹툰 애플리케이션(앱) 상위 6곳의 월간 이용자 수는 2021년 10월 기준으로 2438만 명에 달했다. 2020년 같은 달보다 28%, 2019년 10월보다는 132%나 늘어난 것이다.

6개 앱 가운데 투톱은 각각 카카오와 네이버 계열인 픽코마와 라인망가가 차지했다. 특히 일본 만화 앱 매출 1위인 픽코마는 올 들어 전 세계 앱 매출에서도 6위에 올랐다. 미국·중국 기업을 빼고는 유일하게 톱10에 들었다.

일본 만화 매출은 1995년 5864억엔(약 5조8000억원)을 정점으로 하락 일로였지만, 2020년에 6126억엔(약 6조1000억원)까지 V 자 회복하는 등 1978년의 통계 개시 이래 최대치를 찍고 있다. 종이 만화가 쇠락한 대신 웹툰이 큰 인기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웹툰 앱 1·2위가 카카오·네이버 계열

일본도 2017년 디지털 만화가 종이 만화 매출을 처음 넘어선 뒤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기는 하지만, 원래 종이 만화였던 것을 스마트폰·태블릿PC로 옮겨 보는 형태가 주류였다. 그랬던 시장이 최근 들어 한국식 웹툰 쪽으로 무대 중심이 바뀌고 있다. 4~5년 전만 해도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가며 만화를 읽는다는 게 생소했지만, 현재 일본 디지털 만화 시장의 30~40%는 만화 앱, 즉 웹툰 플랫폼이 차지한다. 특히 일본 젊은 여성층의 종이 만화 이탈, 한국 웹툰 선호 경향이 뚜렷하다. 일본 시장 조사 업체 ‘우먼리서치’가 작년 말 실시한 ‘여성이 뽑은 웹툰 앱’에 따르면, 이용률에서는 라인망가, 추천도에서는 픽코마가 1위를 차지했다.

일본 만화 업계가 한국식 웹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일본 시스템이 만화잡지를 내는 ‘출판사’ 기반인 데 비해, 한국 웹툰은 철저하게 ‘IT 회사’ 기반이기 때문이다. 일본 만화 시장은 슈에이샤(集英社)·고단샤(講談社)·쇼가쿠칸(小學館) 등 대형 출판사가 이끌고 있다. 이들이 내는 잡지가 시장을 이끈 ‘플랫폼’이었다. 잡지에 다양한 만화가 연재되고, 인기작은 단행본으로 출간돼 추가 수익을 낸다. 이후 TV·극장판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으로도 만들어져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비즈니스 공식이었다.


일본 출판사도 앱 출시, 과거 유산이 발목

종이 만화 시대의 한국은 일본 출판사에 맞설 자본도 역량도 플랫폼도 없었지만, 게임을 통해 전기(轉機)가 찾아왔다. 한국 업체는 인터넷·모바일 게임 산업에서 소비자 지갑을 여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크리스 앤더슨 ‘와이어드’ 전 편집장은 ‘인터넷 공짜경제 시대’에 가장 똑똑한 기업의 하나로 한국의 넥슨(Nexon)을 꼽았었다. 넥슨은 세계 최초로 이른바 ‘부분 유료화’ 모델을 개발했고 지금은 그 모델이 세계 게임의 공식이 됐다.

이 공식은 일본 시장을 장악한 한국 웹툰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에 그대로 적용된다. 일단 스마트폰 앱을 통해 볼 만한 웹툰을 대량 제공한다. 연재가 이어질 때까지 기다리면 계속해서 무료로도 즐길 수 있다. 다만 돈을 내면, 좀 더 빨리 보거나 나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방식은 일본에서 특히 10대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스마트폰은 항상 손에 들려 있으니 접근성 면에서 웹툰이 최고였다. 일본에선 디지털 만화라 해도 ‘기다리면 무료’ 방식이 드물었다. 특히 10대는 어른들처럼 만화를 충분히 사볼 만한 돈이 없거나 이를 불편하게 여기는 경향이 크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만화카페 등에 가는 빈도도 줄었다. 또 기존 종이 만화의 판형을 전자책으로 옮기는 일본 출판사 방식은 태블릿PC가 없고 스마트폰만 갖고 있는 경우 불편했다. 따라서 10대들은 한국에서 검증받은 이 방식의 웹툰 플랫폼에 쉽게 빠져들게 됐다. 한국에서 무르익은 부분 유료화 전략의 노하우가 한국의 게임과 웹툰을 넘어 만화 왕국 일본에까지 침투하게 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일본도 10·20대는 웹툰…한국 플랫폼이 시장 주류 되는 건 시간문제

반면 일본에서는 한국과 달리 게임에서 웹툰으로 이어지는 비즈니스 모델 구축이 없었다. 만화 잡지·단행본이라는 종이 주체의 콘텐츠 중심이어서 디지털 사업 전개에 소극적이었다. 기존 시스템에서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굳이 한국 사례를 연구해 변화를 도모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최근 일본 출판사들도 한국 웹툰 플랫폼과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내놓기 시작했지만, 한국 IT 회사와 전면전을 벌이기는 쉽지 않다. 종이 만화 중심의 자산과 작가군이 워낙 많아, 한국 플랫폼처럼 바꾸기엔 레거시 코스트(과거의 성공 유산이 큰 비용으로 작용하는 것)가 막대하기 때문이다. 일본 주간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는 최근 호에서 일본 만화 앱 운영사 임원의 말을 인용해 “작가 확보 등을 놓고 같은 회사 내 온·오프라인 편집부 간에 대립하는 일도 생기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한 출판사에서도 그 출판사가 발행하는 잡지마다 앱이 따로 존재하는 식”이라고 전했다. 일본 출판사가 한국 웹툰에 맞서 전력(戰力)을 집중해도 모자랄 판이지만, 한 출판사 내에서도 부서 간 알력 때문에 전력이 분산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최근 일본 출판사의 스타급 만화 편집자가 한국 웹툰 회사로 이직하는 일도 늘고 있다. 일본 만화 시스템의 자랑이었던 잡지 만화, 단행본, TV 애니메이션, 극장판 애니메이션, 캐릭터 상품 등으로 이어지는 비즈니스 모델도 한국 웹툰에 밀릴 위기에 놓였다. 최근 일본에서 넷플릭스를 통해 크게 히트한 드라마 ‘이태원 클라쓰’ ‘지옥’ ‘지금 우리 학교는’ 등은 전부 한국 웹툰이 원작이다. 웹툰이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을 통해 드라마로 제작돼 수익을 극대화하는 모델, 즉 웹툰 비즈니스 모델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일본의 인기 만화가들도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국 웹툰 플랫폼으로 유입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잡지 만화 시스템의 에이스 편집자였다가 한국 NHN의 웹툰 플랫폼인 코미코의 대표로 일했던 무샤 마사아키(武者正昭)는 “한국 웹툰 플랫폼은 일본의 40대 이상 기존 만화 독자를 굳이 공략하지 않아도 된다. 10·20대만 공략해 웹툰 독자층을 넓혀 놓으면 한국 플랫폼이 일본 시장의 주류가 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