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의 글로벌 도시(Asia’s World City)’인 홍콩 금융인들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위안(元)화 환율 동향이다. 100여개 세계적인 금융기관의 아시아·태평양 본부가 밀집해 있는 센트럴(中環)에 포진한 ‘차이나워쳐(China Watcher)’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위안화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시아 최고의 금융 중심지인 홍콩은 중국 경제의 ‘실핏줄’조차 샅샅이 파악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바로미터(barometer)다. 이런 측면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중국 정부의 전격적인 위안화 환율 개혁조치 단행(7월21일) 이후 홍콩의 위안화 예금고가 늘고 있다는 점.

 중앙은행 격인 홍콩 금융관리국 통계를 보면, 작년 말 121억위안(약1조 5125억원)에서 지난 7월 말 현재 211억위안(2조8800억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홍콩에서 위안화 수요 증가는 역설적으로 위안화(차이나달러·China Dollar)의 ‘국제화’와 ‘위상 상승’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하는 ‘태풍의 눈’으로 도약하는 차이나달러의 ‘파워’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가령 러시아는 올해부터 중국과의 국경 무역에서 미국 달러화를 거치지 않고 위안화와 루블화로 직접 결제할 수 있도록 했다. 몽골·베트남·키르기스스탄·북한 등도 중국과 무역시 위안화를 결제 통화로 쓰고 있다.

 홍콩의 진종(金鐘)·몽콕(旺角)·통루완(銅)처럼 중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몰리는 주요 쇼핑 상가나 광둥(廣東)성 선전(深玔) 등에서는 통상 100대 105정도로 위안화 가치가 낮았던 위안화 홀대 현상은 이제 ‘흘러간 옛날 얘기’가 됐다.

 크레디트 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 아·태 본부의 타오동(陶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차이나달러는 1970년대 오일(Oil)달러와 1980년대 저팬달러와 맞먹는 파괴력을 몰고 올 것”이라며, “‘차이나달러 시대’ 개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단언했다.



 중국 외환 보유고 급증

 세계가 차이나달러의 파워에 이목을 집중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올 6월 말 현재 7110억 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엄청난 외환 보유고다. 중국경제권에 편입된 홍콩(1220억달러)을 합치면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8300억달러를 넘어 세계 1위인 일본(8435억달러)과 맞먹는다. 더 놀라운 것은 2001년 2000억달러이던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2년 만인 2003년에 4032억달러로 치솟았고, 작년 말에는 6099억달러로 6000억달러를 넘어섰다는 점, 또 그로부터 반 년 만에 1010억달러(약 101조원)가 늘어 1년 전보다 51.1%나 급증한 것이다.

 왕즈하오(王志浩) 스탠다드차타드은행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말까지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913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세계 1위인 일본 추월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추세라면 2008년 베이징(北京) 올림픽 이전에 1조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더욱이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중국으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매년 눈덩이처럼 늘어나는데다, 연간 수백억달러의 무역흑자 그리고 위안화 추가 절상 등을 겨냥한 핫머니(단기성 투기자금) 등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탓이다. 특히 중국은 서방 선진국들과 달리 외환관리를 국가(외환관리국, 실제로는 인민은행)가 직접 통제해 오일달러나 저팬달러보다 파급 효과가 훨씬 크다는 분석이다. 한국산업은행 홍콩법인의 박기순 박사는 “차이나달러의 파워를 이용해 중국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국제 금융시장의 흐름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현재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 가운데 약 2000억달러 정도를 미국 재무부 발행 국채(國債)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를 일부 매각할 경우 미국의 금리인상과 경기불황이라는 파급 효과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주목되는 것은 차이나달러의 급부상과 비례해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입김’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점. 과도한 외환보유고 압박 완화와 선진기술 흡수 등을 겨냥해 외국의 유명 브랜드나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단적인 예다.

 중국해양석유(CNOOC)와 하이얼(海爾)의 유노컬 및 메이텍 인수는 실패로 기록됐지만 롄샹(聯想)과 상하이이치(上海一汽)는 IBM 컴퓨터 부문, 쌍용자동차 합병 등에서 각각 성공을 거뒀다.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간다(借船出海·지에촨추하이)’와 ‘밖으로 나간다(走出去·조우추취)’는 전략이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1999년 2억 달러 남짓하던 중국의 해외 기업 인수 금액은 지난해 20억 달러를 넘어 5년 만에 10배 이상 폭증했다. 



 한국경제에도 위협적

 ‘불똥’은 이미 한국에도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 네트워크 게임업체인 성다(盛大)가 한국 게임업체인 액토즈소프트를,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데 이어 올들어 중국 국영기업들이 인천정유, 대우일렉트로닉스 같은 알짜 대형 매물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중 기술 격차가 갈수록 좁혀지는 마당에 중국의 한국 기업 사냥은 한국 경제의 독자 활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위협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 5월 해외 진출 허가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해외 투자 한도액도 33억달러에서 50억달러로 늘리는 한편 경쟁력 있는 기업의 해외투자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선언해 경쟁국들의 우려를 한껏 자극하고 있다.

 CSFB의 타오동 이코노미스트는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야기된 달러의 과도한 중동유입(오일달러)이 브래튼우즈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으며, 1980년대 저팬달러도 미국 부동산 시장에 대거 유입돼 자금 흐름의 왜곡을 초래했었다”고 말했다. 차이나 달러 역시 어떤 형태로든 국제금융시장에 예상치 못한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1980년대 일본이 막대한 무역 흑자와 엔고(高)를 바탕으로 미국 자산 매입에 나선 것과 같이 중국의 ‘미국 사들이기(Buying America)’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현상은 차이나달러의 파워를 무기로 중국의 외교 행태도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서방국가와의 섬유 전쟁에서 ‘전면전’을 선포하는 등 외국의 경제 압력에 맞서 중국이 ‘노’(No)라고 응수하는 사례가 부쩍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산업구조의 고도화도 경계할 부분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순페이(孫飛) 박사는 “인민폐 평가절상을 계기로 중국은 자원 집중형 제품보다는 고부가가치의 제품 수출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며, “산업구조가 고부가가치·첨단기술 중심으로 이동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위안화 가치 상승으로 지난해 3000만명에 육박한 중국인들의 해외여행이 한층 활성화될 경우, 글로벌 관광산업의 판도 변화도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중국인 ‘큰손’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잡기 위해 동남아나 한국은 물론 영국·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에도 위안화 직거래 상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구매력 기준으로 미국달러에 이어 세계 2위 자리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차이나달러는, 세계의 기축 통화로 자리를 굳히는 동시에 세계인의 일상생활까지 크고 작은 변화를 초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