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마코토(왼쪽) 닛산자동차 CEO와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CEO. 사진 닛산자동차·블룸버그
우치다 마코토(왼쪽) 닛산자동차 CEO와 카를로스 곤 전 닛산자동차 CEO. 사진 닛산자동차·블룸버그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은 도요타가 1위이지만, ‘기술력’은 닛산(日産)자동차를 인정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2020년대 들어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판도를 바꾼 전기자동차(EV) 개발도 경쟁사보다 한발 앞섰다. 닛산이 2010년 양산을 시작한 ‘리프’는 테슬라의 전기차(모델3) 출시 전인 2019년까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전기차였다. 닛산의 탄탄한 기초 기술력은 창업 1세기가 넘는 역사에서 기인한다. 이 회사의 뿌리는 1900년대 초반 일본 제국주의 시기 군수업체다.


카를로스 곤, 일본 탈출 2년간의 전말

닛산은 독특한 기업이다. 국가 기간산업을 외국에 좀처럼 넘기지 않는 일본 재계에서 외국 기업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드문 사례다. 닛산은 영업 부진이 이어지면서 1990년대 후반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1999년에는 회사 부채가 2조1000억엔(약 21조원)까지 불어나 파산 위기까지 몰렸다. 닛산은 회생을 위해 1999년 프랑스 르노와 자본 합작을 맺는다. 2000년 르노에서 파견한 카를로스 곤의 대표 취임 이후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1년 만에 ‘V 자 회복’에 성공했다. 르노·닛산은 2019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생산 대수 기준 3위(922만 대)까지 올라섰다. 곤은 닛산을 회생시켜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국가 훈장까지 받았다.

카를로스 곤의 1인 장기 집권이 이어지면서 2018년에 개인 비리가 터졌다. 2019년 12월 말, 카를로스 곤의 일본 탈주극은 세계적인 빅 뉴스였다.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났던 곤은 대형 악기 케이스에 몸을 숨겨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자가용 비행기로 국적이 있는 레바논으로 도주했다. 그는 탈출에 성공한 뒤 2020년 1월 9일 베이루트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자신에 대한 기소와 재판이 르노와 닛산의 경영 통합을 막기 위한 일본 당국과 일본인 경영진들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일본 당국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곤을 지명 수배하고, 레바논 정부에 신병 인도를 요청한 상태다. 레바논은 일본과 범죄인인도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점을 들어 신병 인도를 거부하고 있다.

곤이 최고경영자(CEO) 직위를 이용해 회삿돈을 횡령한 건지, 일본인 경영진이 당국과 결탁해 닛산을 지키려고 했는지의 진실은 조만간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곤의 국외 탈주 과정을 통해 일본 ‘국가’와 ‘대기업’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닛산의 원점인 ‘니혼산교(日本産業)’의 성장 역사를 추적해 보면, 재벌 기업을 해외에 넘겨주지 않기 위한 ‘음모’라는 그의 주장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의 도주극은 ‘정경일체(政經一體)’ 일본 국가의 실체를 보여준다.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2000년 이후 일본에서 진행된 ‘외자 유입형’ 기업의 한계와 ‘토종 순(純) 일본 기업’의 반격으로 보는 분석도 있다.

닛산그룹의 주력 니혼산교는 1920년에 창립됐다. 히타치(日立)광산에서 출발해 기계·금속업으로 확장했다. 정부 요청으로 1938년 만주로 본사를 이전했다. 만주중공업개발(滿州重工業開發)로 사명을 바꾸고 일본제국의 만주 진출을 지원했다. 제조업 부문에선 미쓰비시(三菱), 미쓰이(三井) 등 선발 재벌을 능가하는 규모로 커졌다. 당시 닛산은 일본의 15대 재벌(財閥) 가운데 하나로 꼽혔다. 4대 재벌은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야스다그룹이다. 닛산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덩치를 불려 신흥 재벌로 분류된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연합군의 재벌 해체 결정에 따라 ‘닛산자동차’만 남아 닛산그룹의 명맥을 잇고 있다.

닛산은 곤의 해외 탈주 전후로 실적이 곤두박질했다. 브랜드 이미지 추락과 무리한 해외 진출에 따른 경쟁력 저하로 2019년, 2020년에 영업적자를 냈다. 글로벌 시장에서 자동차 판매 대수는 2017년 577만 대를 기록한 뒤 2020년 405만 대까지 떨어졌다. 2021회계연도 상반기(4~9월)에 1391억엔(약 1조3900억원)의 소폭 이익을 내며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기술의 닛산’ 존재감은 떨어졌다. 전기차 개발 역사는 길지만, 자동차 시장 변화에 뒤처졌다. ‘리프’가 나오기 훨씬 전인 1947년, 닛산과 제휴 관계였던 프린스자동차중공업이 납축전지에 전기를 담는 전기차인 ‘타마 전기자동차’를 개발한 적이 있다. 당시 택시로 주로 사용됐고, 한 번 충전으로 최대 65㎞를 주행했다.

카를로스 곤은 2021년 연말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닛산의 전동화 전략을 비판했다. 자신이 회사를 떠난 뒤 닛산의 전기차 전환이 너무 느리고, 자동차 시장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닛산을 경영할 당시 ‘리프’를 개발하고 각종 전동화 모델을 선보이는 등 진취적인 회사였다고 강조했다. 전기차 ‘리프’의 초기 반응은 괜찮았지만 2016년까지 누계 150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할 계획이었으나 달성하진 못했다. 충전 인프라가 부족했고, 탈탄소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적었기 때문이었다.

닛산의 경영 재건 임무는 곤에 이어 2019년 말 CEO에 오른 우치다 마코토(內田誠) 사장 손으로 넘어갔다. 우치다 사장은 올 초 NHK와 인터뷰에서 “닛산의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기어를 바꿀 때가 왔다”고 선언했다. 그는 “전기차는 기술의 닛산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닛산다운 전기차를 고객에게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닛산은 새로운 전기차를 대거 투입, 공세에 나선다. 지난 연말, 닛산은 새로운 전동화 전략을 발표했다. 올해부터 5년 동안 전기차 개발에 2조엔(약 20조원)을 투자하는 게 골자다. 지금까지 전동화에 투자한 1조엔의 두 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우치다 사장의 현지 언론 인터뷰를 소개한다.


우치다 사장, 소형 전기차로 승부 건다

전기차 판매의 관건은.
“충전소 설치가 매우 중요하다. 공공장소에서 충전이 불가능하면 전기차의 편의성이 떨어진다. 닛산은 최근 10년간 충전소 설치에 250억엔(약 2500억원)을 투자했다. 2026년까지 200억엔(약 2000억원)을 더 투자한다. 일본 정부는 전국의 충전소를 2030년까지 현재 5배인 15만 개로 늘릴 방침이다.”

올해 전기차 신차 계획은.
“1월에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모델 ‘아리아’ 시판에 들어갔다. 새로운 전기차는 ‘리프’ 이후 10년 만이다. 올봄에는 경차 전기차도 판매한다. 미쓰비시자동차와 공동 개발 중이다. 한 번 충전으로 170㎞ 주행하는 근거리 쇼핑용이다. 판매 가격을 낮추기 위해 주행 거리를 짧게 했다.”

경차 전기차 가격은.
“고객들이 선뜻 구매할 수 있는 가격으로 제공할 것이다. 일본 자동차 시장에서 경차 비중은 40%에 달한다. 고객들이 경차 전기차의 편의성을 받아들인다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일본 전기차 시장도 정착될 걸로 본다. 정부는 전기차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경차 구입에 최대 50만엔(약 500만원)을 지원한다. 보조금을 활용할 경우 닛산의 경차 가격은 약 200만엔(약 2000만원) 선으로 예상한다.”

닛산 전기차의 강점은.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 기술은 ‘배터리’다. 차세대 배터리인 ‘전고체배터리’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전고체배터리는 전기를 모으거나 방출할 때 필요한 ‘전해질’이 액체가 아닌 고체다. 2028년까지 전고체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를 시장에 투입한다. 리튬이온배터리보다 에너지양은 두 배 늘고, 충전 시간은 3분의 1로 단축하는 게 목표다. 전고체배터리에서 앞서는 메이커가 되겠다.”

올해 경영 목표는.
“시장에서 인정받는 자동차 메이커가 되는 것이다. 사회에 필요하고 소비자들이 공감하는 회사가 되는 게 목표다. 고객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차를 계속 공급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