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북미 대륙에서 확산하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집단 발병으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항구에 정박한 그랜드 프린세스 크루즈에서 하선하는 여객들, 휴교를 선언한 워싱턴 D.C.의 초등학교, 사재기로 텅 빈 월마트의 진열대. 사진 EPA연합
코로나19가 북미 대륙에서 확산하기 시작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집단 발병으로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항구에 정박한 그랜드 프린세스 크루즈에서 하선하는 여객들, 휴교를 선언한 워싱턴 D.C.의 초등학교, 사재기로 텅 빈 월마트의 진열대. 사진 EPA연합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이 미국에서도 빠른 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돼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와 싱가포르·태국 등 동남아시아, 이탈리아·프랑스 등 유럽을 강타한 코로나19가 북미 대륙까지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선언했다.

3월 11일(현지시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대국민 담화를 열고 13일 자정부터 30일간 유럽으로부터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여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유럽 시민들의 미국 입국을 전면 금지시킨 것이다. 같은 날 기준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12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38명으로 집계됐다. 2월 29일 첫 사망자가 발생한 지 닷새 만에 사망자 수도 두 자릿수를 넘기며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 2월까지만 해도 미국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은 지역이었지만, 3월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워싱턴주, 뉴욕주, 캘리포니아주 등 인구가 많은 주요주는 벌써 확진자 수가 200~300명을 넘어섰다.

긴장감이 커지며 미국 전역에서는 일찌감치 마스크, 손소독제 등 위생 관련 용품과 휴지, 온도계 등 사재기 현상이 나타났다. 시장조사기관 닐슨에 따르면 2월 손소독제 판매량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73%, 의료용 마스크 판매량은 319% 급증했다. 미국 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문이 빗발친 탓에 타깃, 홈디포, 크로거 등 미국 내 주요 유통 채널은 관련 용품 판매 제한에 들어가기도 했다.

산업계 영향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직격탄을 맞게 된 곳은 항공 업계다. 세계 최대 항공사인 아메리칸항공은 올여름 성수기 국제선 항공편을 지금보다 10%, 4월 국내선 항공편은 7.5% 감편하기로 했다. 델타항공도 국제선 항공편은 20~25%, 국내선 항공편은 10~15% 줄이기로 했다. 이 밖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주요 기술 기업들도 재택근무에 돌입했다.

미국 사회도 확산 방지를 위해 학교 등 공공시설 폐쇄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3월 22일까지 봄방학에 돌입한 하버드대는 방학이 끝난 후에도 학교로 돌아오지 말 것을 발표했다. 또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 오하이오주립대, 스탠퍼드대 등 확진자가 100명이 넘어선 주에 있는 대학을 중심으로 이 같은 결정이 잇따르고 있다.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등학교도 임시 휴교에 동참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3월 10일 기준 미국 전역 380개 학교가 소독을 위해 하루 이틀 정도 휴교 결정을 했고, 대다수 학교는 장기 휴교를 고려 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보다 코로나19에 더 취약하다고 우려한다. 경제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서비스 산업 비중이 67%로 중국(50%)보다 크다(2019년 기준).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인은 일 년 평균 3차례 비행기를 타는 반면 중국인의 비행기 탑승 횟수는 0.5차례에 못 미친다. 이들이 스포츠 경기에 쓰는 비용도 중국의 10배가 넘는다. NYT는 “코로나19는 대부분의 경제 활동과 사회적 상호 작용을 중단시키는 ‘스노마겟돈(snowmageddon·눈과 최후 종말을 뜻하는 아마겟돈을 합친 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코로나19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연결 포인트 1
트럼프 ‘코로나 별거 아니야’

“지난해 독감으로 미국인 3만7000명이 사망했다. 매년 사망자 수가 평균 2만7000~7만 명이다. 셧다운은 없었고 경제는 그대로 돌아갔다. 지금 코로나19 확진자는 22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546명이다. 생각해보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월 9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안일한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다. 앞서 그는 2월엔 “미국 내 확진자가 15명이지만 며칠 안에 0명에 가까워질 것” “코로나가 기적적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2월 29일 첫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 확진자가 급속히 증가했다.

특히 그는 첫 사망자가 나온 날 메릴랜드주에서 열린 ‘보수정치행동회의(CPAC)’ 연설에서 자신이 한 중국으로부터의 입국 금지 조치를 “A+++급 결정”이라고 자랑했지만, 행사 참여자 중 확진자가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진자와 접촉한 의원과 악수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검사를 받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3월 9일 미 증시가 급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다. 사진 AFP연합
3월 9일 미 증시가 급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기도 했다. 사진 AFP연합

연결 포인트 2
358조원 긴급 예산 카드 만지작

3월 9일 미국 증시는 2008년 금융위기 때와 같은 대폭락장을 연출했다. S&P500지수는 6.40% 급락했다. 유가가 장중 30% 넘게 급락한 것이 코로나 공포에 더해져 공포심을 자극했다.

트럼프 정부는 코로나19에 따른 긴급 경제 완화 카드를 고려하고 있다. 3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를 찾아 3000억달러(약 358조원) 규모의 급여세 인하안을 놓고 공화당 상원의원들과 논의했다. 급여세는 근로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근로소득 외 개인소득에 부과하는 소득세와 구분된다. 이 밖에도 시급 근로자들이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안과, 직격탄을 맞은 항공·숙박 업계 지원책도 고민 중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안은 그가 83억달러(약 10조원)의 긴급 예산안에 서명한 지 사흘 만에 나왔다. 당시 상·하원은 사태가 악화하자 바이러스 추적 활동과 병원 등의 용품 구매에 쓰일 자금으로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요청한 것(25억달러)보다 3배 많은 예산안을 마련했다.


코로나19 사태로 미 의료보험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코로나19 사태로 미 의료보험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3
검사비 400만원? 미 의료보험은

2월 6일 한 미국 남성이 개인 펀딩 사이트 ‘고펀드미’에 기금 모금을 요청했다. 3세 딸과 중국에서 탈출해 미국으로 돌아와 코로나19 검사를 받았다. 그가 받은 검사는 혈액을 채취하고 코안을 면봉으로 훑는 비강 검사가 전부였다. 다행히 음성 판정을 받았지만, 검사비와 병원 입원비로 청구받은 금액은 3918달러(약 470만원). 16만원 안팎인 한국 검사비의 30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된 그가 사연을 올리자 전역에서 1만7930달러의 기부금이 모였다.

코로나19로 미국의 의료보험시스템이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정부가 아니라 병원과 보험사가 운영한다. 검사·진료·입원 수가가 통일돼 있지 않아 같은 검사라도 병원마다 가격이 다르다. 사람들은 형편에 따라 민간보험을 들긴 하지만 보험료와 보장 범위가 천차만별이다. 실제로 비슷한 기간 검사를 받은 한 남성은 983달러 청구서를 받았다. 보험료가 쌀수록 보장 범위도 좁다. 그러나 이조차 없는 미국인이 2750만 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