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월 19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의 ‘스테이트 다이닝 룸’에서 취임 6개월 연설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7월 19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백악관의 ‘스테이트 다이닝 룸’에서 취임 6개월 연설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崛起)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 정부는 네덜란드 정부에 핵심 장비를 중국에 팔지 말라고 압박하고 있다. 7월 1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네덜란드 정부가 미국의 압력으로 자국 기업 ASML이 만든 첨단 노광장비의 수출 허가를 계속 보류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ASML이 생산하는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실리콘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EUV를 이용해 5㎚(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의 극도로 미세한 회로를 새겨넣을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반도체 생산장비다. 따라서 삼성전자, 대만의 TSMC, 미국의 인텔 등도 ASML의 첨단 EUV 노광장비를 확보하느라 혈안이 돼 있다. 중국도 자국 반도체 제조사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 대에 1억5000만달러(약 1740억원) 수준인 ASML의 첨단 EUV 노광장비 수입을 추진하고 있지만, 미국의 방해로 아직 손에 넣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관리들은 WSJ에 바이든 행정부가 네덜란드 정부에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들어 대중 수출을 제한할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앞서 1월 20일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네덜란드의 카운터파트너와 통화해 두 나라의 ‘선진 기술에 대한 긴밀한 협력’을 강조하면서 이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의 기조를 이어받은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때인 2019년 찰스 커퍼먼 국가안보부보좌관은 네덜란드 외교관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좋은 동맹은 이런 장비를 중국에 팔지 않는다”라며 수출 제한을 압박했다. 심지어 커퍼먼 부보좌관은 ASML 제품이 미국 부품을 사용한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이런 부품의 네덜란드 수출을 금지할 수도 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압박에 난처한 네덜란드

중국도 이 장비를 수입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앞서 네덜란드 주재 중국대사는 현지 언론을 통해 ASML 장비의 중국 수출이 허가되지 않으면 양국 무역 관계가 훼손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는 중국의 기술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수출 제한은 미·중 기술 냉전에서 중국 측에 상당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피터 버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이러한 수출 규제가 남용될 경우 중기적으로 혁신을 더디게 할 수 있다”며 “단기적으로도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악화할 수 있다”라고 난색을 보였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4월 칭화유니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신화연합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4월 칭화유니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 신화연합

연결 포인트 1
악재 쏟아지는 중국 반도체 굴기 칭화유니 파산 절차…굴기 지속 전망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연이은 악재에 흔들리고 있다. ASML 장비 반입 장벽뿐 아니라 중국 메모리 반도체 산업 성장의 상징이던 칭화유니가 최근 파산 절차에 들어가는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ASML 매출의 17%를 차지할 만큼 ‘큰손’이지만 중국이 사들인 장비는 모두 구식 모델이다.

칭화유니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8년 4월 처음으로 시찰한 메모리 반도체 공장을 운영하는 국영 기업으로 자금난에 작년 11월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바 있다. 7월 초 칭화유니의 채권은행이 베이징인민법원에 칭화유니 파산신청서를 제출하면서 향후 운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일각에선 중국 당국의 반도체 기업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며 쏟아지는 악재에도 중국의 반도체 굴기는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웨일스 뉴포트에 있는 반도체 업체 ‘뉴포트 웨이퍼 팹(NWF)’ 전경. 사진 뉴포트 웨이퍼 팹
영국 웨일스 뉴포트에 있는 반도체 업체 ‘뉴포트 웨이퍼 팹(NWF)’ 전경. 사진 뉴포트 웨이퍼 팹

연결 포인트 2
미국에 발맞춘 영국 중국의 NWF 인수 제동

영국 정부도 미국과 발을 맞추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경계를 높여가고 있는 것. 영국은 자국 최대 반도체 업체 ‘뉴포트 웨이퍼 팹(NWF)’이 중국 자본에 인수되는 것에 제동을 걸었다. 영국의 핵심 반도체 기술이 중국으로 넘어가면 영국을 넘어 전 세계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 같은 움직임에도 반발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이 중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을 막기 위해 비논리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반박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은 지난 6월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미국의 견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망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라며 “영국의 안보 위협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라고 했다.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 네덜란드 ASML에서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이재용(가운데) 삼성전자 부회장이 2020년 10월 네덜란드 ASML에서 생산과정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 삼성전자

연결 포인트 3
반도체 코리아 영향은 중국 공장 둔 삼성·SK 피해 우려

G2(주요 2개국)의 힘겨루기가 한국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20년 10월 ASML을 방문한 바 있다. 이 부회장의 ASML 방문 이후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 네덜란드로부터 EUV를 포함, 3조원 이상 반도체 장비를 샀다. 반도체 굴기를 놓고 벌어지는 미·중 패권 전쟁이 우리에게 얼핏 나빠 보이지는 않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주요국들의 압박이 시작되면서 중국에 반도체 공장을 두고 있는 국내 반도체 업체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시안, 우시에 메모리반도체 공장을 각각 운영 중으로, 미국이 중국산 반도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경우 해당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의 수출이 제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인수해 중국 다롄에도 메모리 공장을 갖게 됐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압박이 커질수록 중국 정부가 규제 측면에서 미국 반도체 공급망에 편입된 한국 반도체에 대한 압박을 키울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중국의 손을 완전히 놓지 않은 한국 반도체에 대한 압박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