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사진 넷플릭스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오징어 게임’이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자랑스러운 대기록을 남겼다. 83개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넷플릭스 사상 최대 히트작이 됐다. 수백억원의 상금이 걸린 서바이벌 게임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그에 따른 배신을 다룬 한국 드라마에 전 세계가 열광한 것이다. 탄탄한 구성 못지않게 한국의 전통적인 놀이문화를 접목한 것이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씁쓸한 부분은 배우와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감독이 모두 한국 사람이지만 그 과실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촬영이 한국에서 진행됐음을 감안할 때 너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지만 글로벌 무역 룰에 따르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떤 이유로 그럴까. 

‘오징어 게임’에는 한국의 배우와 감독이 등장하지만 해당 작품의 원산지(국적)는 외국산으로 판정돼 정반대로 한국 배우와 감독이 수혜를 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통상적으로 관객은 영화의 국적을 촬영지, 배우, 감독 등으로 판단하지만 글로벌 무역 시장에서 콘텐츠(영화) 국적에 대한 룰은 따로 있다. 제작자가 누구냐가 국적을 가르는 기준이다. 포괄적인 의미로 제작자는 시나리오와 감독 등을 선정하고, 제작비 투자 및 사용, 상영 극장 섭외 등 제작 및 상영에 관한 업무 전반을 총괄하는 자(회사)로 사용된다. 이중에서 자본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외국 자본인 넷플릭스가 투자한 것을 감안하면 ‘오징어 게임’이 한국산이라는 단도직입적 결론에는 문제가 있다. 

오래전에도 흥미로운 논란이 있었다. 일본 배우가 주연한 사무라이 영화 ‘쇼군 마에다’가 지난 1993년에 수입이 확정되면서 많은 반발을 낳았다. 당시는 국내에서 일본 영화 상영이 금지되고 있던 시기고 작품의 배경이 일본 전국시대로 사무라이 정신을 미화하고 있다는 점이 거부감을 부추겼다. 그러나 제작자(유니버설)로 미국 기업(자본)이 참가했다는 이유로 한국의 수입 장벽을 넘어섰다.

글로벌 무역 전쟁에서 국적은 규제를 가하는 기준으로 매우 중요하다. 국내 시장을 지키는 데 국적이 방패(수입 규제)와 창(단속)으로 동시에 사용된다. 일반 공산품과 동물은 국적에 따라 수입 여부가 결정되고 수입되더라도 관세율이 다르다. 공산품은 원부자재 투입 비율과 제조 공정으로 국적을 따진다. 

동물은 어떻게 국적을 따질까. 미국에서 사육된 후 현지 소비됐다면 문제가 없지만 미국에서 송아지를 수입해 한국에서 사육하면 원산지가 변경될 수 있을까? 산 동물은 비교적 쉽게 국적이 변경된다. 해외에서 태어나고 국내에서 일정 기간(6개월 이상) 길러진 소는 국내산이라는 표기가 가능하다. 수입된 수산물도 같은 원리로 국내산이라고 이름을 바꿀 수 있다. 국내에서 양식되는 기간으로 미꾸라지는 3개월, 새우나 가리비는 4개월, 기타 어패류는 6개월이 최저 기준이다.

영화와 함께 디지털 콘텐츠 시장을 주도하는 노래를 보자. 글로벌 시장에서 톱을 달리고 있는 한국의 아이돌그룹 BTS의 노래는 한류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일반 공산품과 달리 국경 장벽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관세를 부과받지 않고 있는 데다 수입 규제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이런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인도네시아는 노래 같은 온라인 콘텐츠에 대해 HS코드(상품분류 기호)를 부여해 관세 부과를 위한 기초 작업을 마무리했다. 관세라는 규제가 세계적으로 디지털(콘텐츠) 제품에 부과된다면 한류 붐은 급속히 다운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콘텐츠 제품은 유통체계가 투명하지 않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오징어 게임’이 중국에서 불법적으로 시청자를 만나 적지 않은 논란을 낳았다. 쉽게 개인 대 개인 간 유통이 되고 저작권을 무시하고 의류 등 관련 제품들이 시장에 출시됐다. 특히 영화 등 콘텐츠는 필름이나 디스켓으로 거래되면 관세 부과 대상이어서 국경을 넘는 데 장벽이 존재하지만 온라인에서 다운받으면 합법 여부를 떠나 무체물로 분류돼 관세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같은 제품이 어떤 형태로 수출입을 하느냐에 따라 가격이 다르고 탈법 여부도 논란거리다.


한국 아이돌그룹 BTS. 사진 하이브
한국 아이돌그룹 BTS. 사진 하이브

세계는 콘텐츠 전쟁 중

모든 나라가 콘텐츠 산업 육성을 위해 많은 돈을 투입하고 있다. 자국 문화의 자존심을 두고 한판 전쟁 중이다. 한국은 영화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 게임’으로 대박을 터트리고 BTS가 꾸준히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소프트파워 강국으로 위상을 단단히 하고 있다. 2020년에 한국의 게임, 영화, 음악 등 콘텐츠 수출액이 108억달러(약 13조원)를 기록하면서 가전제품과 화장품 수출액을 앞선 것으로 집계됐다. 일자리와 관광 등 간접적인 효과를 감안하면 그 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런데 일반 제조 상품과 달리 세계 시장은 정비되지 않은 룰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주역으로 콘텐츠가 향후 미래 산업을 좌우할 새로운 동력으로 떠오르면서 자국에 유리한 룰 세팅(제정)을 위해 파워 게임이 전개되고 있다. 자유로운 유통을 주장하는 쪽과 문화 상품은 각국의 특수성을 감안해 ‘다양한 장벽’을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충돌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의 또 다른 축인 데이터 거래 시장을 두고도 경제 강국들이 충돌하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 산업에 밑거름이 되는 데이터에 대해 중국은 높은 장벽(만리방화벽·Great Firewall of China)을 쌓고 있는 반면 미국은 자유로운 이동을 주창하면서 긴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 데이터 사용량은 최근 5년 사이에 세 배 증가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중국은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물론 자국 내 IT 기업들의 해외 진출에 제동을 걸고 있다. 한국의 플랫폼인 네이버와 카카오에 대해 직접 경로는 물론 VPN(가상사설망)을 차단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고 있다. 데이터가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중국이 주도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전자적 전송에 대해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 현행 제도를 유지하되 조정될 수 있다고 단서를 달아 악용(?) 여지를 뒀다. 

반면 미국은 데이터의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토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은 USMCA(개정된 북미자유무역협정)를 통해 제삼자가 생산한 콘텐츠에 대해 플랫폼 기업의 책임을 면제했으며 미국의 기술 기업을 사실상 차별하는 디지털세(Digital Services Taxes)를 반대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개인 정보에 역점을 두면서 대외교류에 소극적이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디지털 협정들은 △공공질서 유지 △윤리 보호 △국가안보 확보 등 포괄적인 개념을 통해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을 제한하고 있어 초고속 디지털화(digital highways)와는 아직 거리가 멀다. 

디지털 국제 규범은 단순히 글로벌 무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국내 관련 산업의 흥망성쇠와도 연결된다. 혁신의 마중물로도 지칭되면서 각국이 룰 세팅을 두고 이해득실 계산에 몰두하고 있다. ‘잠깐이라도 졸면 향후 100년의 산업 패권 전쟁에서 낙오한다’는 각오로 혼미한 디지털 무역 질서를 바로 세워야 한다. 그 핵심은 개방성과 혁신성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