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은 6월 2일부터 4일까지 일본 오키나와 동남방 공해상에서 미국 해군과 함께 항모강습단 연합훈련을 했다. 4일 한·미 함정 6대와 항공기 3대가 공동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합동참모본부
한국 해군은 6월 2일부터 4일까지 일본 오키나와 동남방 공해상에서 미국 해군과 함께 항모강습단 연합훈련을 했다. 4일 한·미 함정 6대와 항공기 3대가 공동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사진 합동참모본부
최인한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6월 들어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에서 군사적 대결이 이어지고 있다. 6월 5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했고, 한국군과 미군도 6일 미사일 발사로 맞대응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월 20~24일 한·일 순방에 나서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북한과 러시아에 대한 경고 수위를 높였다. 미국과 중국 간 패권 경쟁과 맞물려 동아시아에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일본 오키나와(沖縄)가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오키나와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만 해도 세계적 휴양지로 유명했다. 일본 본토와 다른 독자적인 역사가 있는 데다 문화 유적지도 많다. 일본인은 물론 우리나라와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이 몰렸다. 오키나와는 관광지지만, 주일 미군의 최대 군사 기지이기도 하다. 5만여 명이 넘는 주일 미군의 공군과 해군 시설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6월 초 군사 훈련도 오키나와 인근 공해상에서 실시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군이 점령했던 오키나와는 1972년이 돼서야 일본에 반환됐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 오키나와 반환 50주년을 맞아 대규모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세계적 휴양 관광지 오키나와

몇 년 전, 오키나와에 관광 목적으로 다녀온 적이 있다. ‘동양의 하와이’로 불리는 오키나와는 지도상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가까웠다. 오전 9시 인천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니 오전 11시 20분께 오키나와 나하(那覇)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길거리에서 만난 오키나와 원주민들은 일본 본섬 사람들과 생김새가 조금 달랐다. 대부분 키가 작고, 얼굴색이 검은 편이다. 동남아인과 일본인의 후손들이다. 

오키나와 본섬은 총길이 108㎞, 폭 3~26㎞로 가늘고 긴 형태다. 나하에 있는 류큐(琉球) 왕국 유적지인 ‘슈리성’이 대표 관광지로 꼽힌다. 슈리성에는 한반도와 류큐 왕국의 역사적 인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조선시대 양국 간 조공무역을 했다는 기록과 그림이 전시돼 있다. 슈리성은 물론 오키나와 곳곳의 관광지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만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주말에 찾은 슈리성에는 일본 본토에서 수학여행을 온 일본 학생들에 이어 중국인, 한국인순으로 많았다.

나하 시내 관광지는 공중 모노레일로 연결된다.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인 모노레일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모노레일 안에는 젊은 남녀 연인들, 신혼부부,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필자가 묵었던 호텔 인근 대형 할인점 이온몰이나 식당가에도 한국인 관광객들이 북적였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훨씬 더 남쪽에 있는 미야코지마는 우리나라의 겨울철에도 골프가 가능해 한국인 골프 마니아들이 많이 찾았다.


한반도와도 인연 깊은 지리적 요충지

일본은 47개 광역자치단체로 구성돼 있다. 도쿄도, 오사카부, 교토부, 홋카이도와 43개 현이 있다. 태평양의 한가운데 위치한 오키나와현은 일본 최남단에 있는 행정 구역이다. 오키나와현은 오키나와 본섬(本島)을 포함해 363개 섬으로 구성돼 있다. 동서 1000㎞, 남북 400㎞에 걸쳐 49개의 유인도와 무인도가 산재해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갔던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본섬’을 지칭한다. 오키나와현 중심지는 오키나와 본섬의 나하다. 오키나와 본섬은 일본 본토 주요 네 개 섬에 이어 일본에서 다섯 번째로 크다. 오키나와 본섬의 면적은 1206.98㎢로 제주도(1850.2㎢)의 3분의 2 정도다. 오키나와현 전체 인구는 146만 명에 달한다.

오키나와는 고대부터 일본열도(본섬)와 중국 대륙, 동남아시아를 연결하는 무역 중계지로서 번영해왔다. 일본 본토와 다른 문화를 가진 오키나와에선 15세기쯤 수리(首里)를 도읍으로 하는 류큐 왕조가 세워졌다. 수리의 서쪽에 맞닿은 나하가 무역항으로 발전했다. 1429년 통일 국가로 등장한 류큐 왕국은 1879년 일본 메이지 정부에 의해 식민지화됐다.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5년 미군의 상륙작전으로 오키나와 주민의 절반 이상이 사망했다. 오키나와는 미군의 점령지로 있다가 1972년 일본에 반환됐고, 1979년 오키나와현이 됐다. 지금도 일본에는 5만6000여 명의 미군이 주둔 중이다. 미군 기지(면적 기준)의 70%가 오키나와에 몰려 있다. 오키나와 주민들이 미국과 일본 본토 사람들에게 반감을 갖는 배경이다. 

오키나와현에는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를 보여주는 장소가 있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이 더 걸리는 남쪽 섬 ‘미야코지마’에 흔적이 남아있다. 미야코지마는 2020년 일본 자위대의 ‘미사일 부대’가 생긴 곳이다. 이곳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끌려갔던 조선인 위안부들을 추모하는 ‘위안부 추모비’가 있다. 미야코지마 주민들과 한국의 연구자, 한·일 국민이 힘을 합쳐 2008년에 세운 것이다.


주일 미군 기지 70% 차지하는 오키나와

2022년 상반기 현재, 오키나와에 있는 미군 기지는 오키나와 본섬 전체 면적의 약 15%를 차지한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인 1945년 4월, 오키나와에 상륙한 미군이 기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거주민들의 집이나 논밭을 수용, 미군 기지를 확대했다. 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1949년)에 이어 한국전쟁(1950년)이 일어나면서 오키나와가 태평양 지역의 안정 유지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전쟁 패전국인 일본은 1952년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회복했지만, 오키나와의 미군 점령 기간은 20년이나 더 이어졌다. 

미군 기지 대부분이 오키나와 시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나하의 경우 도시 개발이 어려운 것도 바로 미군 기지 때문이다. 미군 비행기나 헬리콥터 사고도 종종 일어나 주민들에게 피해를 준다. 미군 기지에서 비행기 등의 연료가 새어 나와 강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오키나와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망가뜨리는 환경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미군들이 일으키는 범죄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1996년 일본 정부와 미국 정부는 도심 한복판에 있는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비롯해 11곳의 미군 기지를 일본에 반환하기로 합의했다. 이어 2006년에는 8000여 명(2012년에는 9000여 명)의 해병대를 국외로 옮기고 가데나(嘉手納) 비행장보다 남쪽에 있는 6곳의 미군 기지를 반환하기로 약속했다. 지난 2013년 4월 약속 이행을 위한 실행 계획이 발표됐지만, 기지의 반환 시기는 2022년 이후로, 진전이 더딘 편이다. 


한·미 군사 훈련 이후 긴장감 높아진 한반도

6월 2일부터 4일까지 오키나와 동남방 공해상에서 한·미 해군 간 항모강습단 연합훈련이 실시됐다. 한·미가 다국적 훈련이 아닌 양국 연합훈련 차원에서 핵 추진 항모를 동원한 것은 2017년 11월 이후 4년 7개월 만이다. 미 해군의 핵 추진 항모 로널드레이건호, 이지스 구축함 벤폴드함 등이 참가했다. 레이건함은 길이 333m, 폭 77m에 높이 63m 규모로 ‘떠다니는 군사 기지’로 불린다. 한·미 양국의 훈련 이후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 다음 날인 5일 오전 북한의 평양 순안, 평남 개천, 평북 동창리, 함남 함흥 일대 등 4곳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 8발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사됐다. 북한의 이번 도발은 한·미가 오키나와 공해상에서 핵 추진 항공모함을 동원해 연합훈련을 실시한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이에 맞서 한국군과 미군은 6일 곧바로 미사일 8발을 대응 사격했다. 합참은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도발을 강력히 규탄하며,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안보 불안을 가중시키는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올 하반기에도 남북한, 북한과 일본, 중국과 대만 간 군사적 긴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오키나와 주일 미군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의 안보와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당분간 오키나와가 ‘관광지’보다 ‘군사 기지’로 주목받을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