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 사진 블룸버그
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회장. 사진 블룸버그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자동차 산업이 100여 년 만에 대전환기를 맞았다. 가솔린 자동차에서 전기자동차(EV)로 주력 제품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의 3대 핵심 부품은 신소재 차체, 배터리, 구동 모터다. 정밀 모터 업계 1위인 일본전산(日本電産·Nidec)은 전기차 시대에 뜨는 제조 업체다. 국내외 자동차 업체들로부터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전산의 2021회계연도 상반기(4~9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증가한 9106억엔(약 9조1000억원)으로 상반기 기준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순이익은 같은 기간 38% 늘어난 676억엔(약 6700억원)에 달했다. 주가는 1년 전보다 30% 오른 1만3000엔(약 13만원) 선에 거래된다. 일본전산은 어떻게 반세기 동안 정밀 모터 시장에서 정상 자리를 지키며 지속 성장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찾아본다.


한 우물 파는 일본식 경영 스타일로 정밀 모터 업계 1위

일본전산은 1973년 창업 후 초정밀 모터로 세계 시장을 석권한 기술 중심 기업이다. 노트북, 스마트폰에서부터 전기차, 로봇 등 거의 모든 구동 제품에 들어가는 정밀 모터를 만든다. 교토의 시골 창고에서 전체 직원 4명으로 시작한 일본전산은 약 50년 만에 계열사 330여 개, 임직원 11만2500여 명, 매출 1조6181억엔(약 16조원·2020년 기준) 기업으로 성장했다. 회사 설립 이후 대기업과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밥 빨리 먹는 순, 빨리 달리기 선착순 신입직원 채용’과 같은 독특한 인재 선발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직원을 강하게 몰아붙이는 사훈(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전산은 컴퓨터 시장 확대에 맞춰 1982년부터 2010년까지 PC 시장에 집중했다.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에 들어가는 스핀 모터에서 글로벌 시장 점유율 80%로 압도적 1위다. PC 시장 성장세가 둔화하자, 2010년부터 가전 및 산업용 모터로 제품군을 다양화했다. 현재 휴대전화용 소형 정밀 모터에서도 세계 1위 자리를 지킨다. 매출 비중은 가전제품 및 산업용 모터 37%, 소형 정밀 모터 27%, 자동차용 모터 22%, 기기·장치용 모터 9%, 전자 및 광학 부품 4% 등이다.

창업자인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77) 회장은 뚝심이 강한 기업가다. 이 회사는 부침이 심한 제조 업계에서 ‘선택과 집중’을 잘해온 업체로 손꼽힌다. 나가모리 회장은 창업 아이템으로 ‘모터’를 선택, 반세기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그가 회사를 창업한 1970년대 초반에도 이미 세계적인 모터 업체들이 100여 개가 넘었다. 당시 중소업체의 모터사업부에 근무하던 6년 차 샐러리맨 나가모리는 ‘모터’ 하나에만 집중하면 대기업을 이길 수 있다고 판단, 창업 동지 3명과 함께 도전에 나섰다. 그는 “대기업 선발 업체들이 모터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 기술과 품질로 정밀 모터를 개발하면 세계 시장을 평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회고했다. 그가 창업 초기 지향했던 ̒돌아가고 움직이는 모든 분야에서 No.1 업체̓는 지금도 회사의 장기 비전이다. 전기차용 구동 모터를 차세대 주력 제품으로 키우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일본전산은 10월 26일 중간 결산 회견에서 2021회계연도의 실적 전망을 상향 수정했다. 매출은 1조7000억엔(약 17조원)에서 1조8000억엔(약 18조원)으로, 순이익은 1400억엔(약 1조4000억원)에서 1480억엔(약 1조4800억원)으로 올렸다. 올해 매출과 순익 모두 사상 최대에 달할 전망이다. 국내외에서 전기차용 구동 모터 등 신제품 수요가 급증한 덕분이다. 이날 나가모리 회장은 “앞으로 100만엔(약 1000만원) 이하 전기차 경쟁이 가장 치열해지고, 연간 5억~6억 대로 늘어나는 전기차 시장에서 80%가 저가 자동차가 될 것”이라며 “일본전산은 소형 전기차용 제품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전기차가 대중화 단계에 들어서는 2025년 전기차용 구동 모터 판매 대수 목표를 기존 280만 대에서 350만 대로 높였다”고 소개했다. 

일본전산 입장에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오히려 사업 성장 기회가 됐다. 지난해 이후 가전, 상업, 산업용 모터의 매출이 고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가전용 컴프레서와 공조기용 모터 등 에너지 절약형 고부가 가치 제품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다. 나가모리 회장은 “수익성 높은 신제품이 잘 팔려 영업이익률을 올 상반기 10%에서 내년 하반기에 15%까지 높이는 게 목표”라고 했다.

일본전산은 2025년 매출 4조엔(약 40조원), 2030년 매출 10조엔(약 100조원) 회사를 중장기 비전으로 삼고 있다. 오는 2030년 전기차용 구동 모터 시장에서 점유율 45%를 목표로 한다. 자동차 산업을 배터리와 모터가 책임지는 시대가 열려 목표 매출 달성이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 전망이다. 이를 위해 자동차용 모터 생산을 대폭 늘리고 있다. 앞으로 5년간 1500억엔(약 1조5000억원) 이상을 설비 증대에 투자한다. 이 회사의 전기차용 구동 모터 시스템 ‘E-Axle’은 모터, 인버터, 감속기 등을 조합한 방식이다. 지난 2019년 5월부터 150㎾ 출력의 구동 모터 시스템 Ni150Ex를 중국 광저우자동차에 공급하고 있다. 현재 Ni100Ex, Ni150Ex, Ni-200Ex까지 제품 라인업을 확장해 광저우자동차, 지리자동차 등 중국 완성차 업체에 납품 중이다. 요즘 일본전산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자동차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대만 폭스콘과 전기차용 구동 모터 생산을 위한 조인트벤처(JV)를 추진 중이다. 미국 테슬라와의 제휴설도 연일 뉴스가 되고 있다. 세키 준(關潤) 일본전산 최고경영자(CEO)는 인터뷰에서 “테슬라와 접촉을 하고 있고 일론 머스크 CEO와 회담을 하고 싶다”며 테슬라에 구동 모터 공급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가모리류 경영, 기술·인재·미래 인사이트 핵심

일본에서 나가모리 회장만큼 주목받는 기업가는 드물다. 그의 사업 성공 방식은 ‘나가모리류 경영’으로 불릴 정도다. 나가모리는 쟁쟁한 선발 전기전자 업체를 제치고 일본전산을 세계 1위 모터 업체로 키웠다. 제조 업체 경영자로서 제품 개발, 제조, 판매는 물론 능숙한 인수합병(M&A)으로 회사를 키우는 수완도 뛰어나다.

업계와 학계에선 일본전산의 성공 비결의 첫째로, 경영자의 일관된 경영 방침을 꼽는다. 나가모리 회장은 모터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추구해왔다. 그는 30여 년간 이어진 경기 침체 상황에도 첨단 기술 개발과 많은 투자비가 필요한 하드웨어 산업을 고수했다. 둘째는 사람 교육, 즉 인재 양성이다. 나가모리 회장은 “일류 기업과 삼류 기업의 차이는 제품의 품질이 아니라 직원들의 질(質)에 달려 있다”고 인재 육성을 항상 강조한다.

일본전산의 독특한 인재 전략은 ‘3Q’로 요약된다. 3Q는 우수한 노동자(Quality wor-ker), 우량 기업(Quality company), 고품질 제품(Quality products)이다.

나가모리 회장은 미래 시장을 읽는 혜안도 뛰어나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미리 읽고 10여 년 전부터 전기차용 모터 개발과 설비 투자에 집중했다. 지난 6월 말 자신의 후임 CEO로 닛산자동차의 부사장 출신인 세키 준을 발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키 신임 CEO는 나가모리의 영입 제의를 받고 2019년 일본전산에 합류했다. 오는 2030년 매출 10조엔 회사를 달성하려면 전기차 모터 시장에서도 세계 1위를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회사 내부 출신 경영자보다 자동차 업계를 잘 아는 외부 인재를 선택한 것이다.

일본전산이 CEO 승계 작업을 매끄럽게 마무리하고,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주역이 될 수 있을까. 글로벌 자동차 업계와 투자자들이 일본전산의 변신을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