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일 일본 도쿄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진 AP연합
12월 3일 일본 도쿄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진 AP연합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 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온라인총괄 부국장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지 두 해가 지났다. 지난 2년간의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각국의 특성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오미크론 변이가 출현해 최종 평가를 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일본은 12월 현재 선진국 가운데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이다.

매뉴얼 사회로 불리는 일본은 겪어보지 못한 대재앙인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우왕좌왕했다. 도쿄올림픽을 거치며 확진자는 올여름 하루 2만 명대까지 치솟은 뒤 감소세로 돌아섰다. 이달 들어 100여 명 안팎에 그친다.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참고 기다리는 일본인의 인내력과 일본 사회의 안정성은 돋보였다. 반면 11월 30일 취한 외국인 전면 입국 금지처럼 대외 폐쇄적이고 국가 이익을 절대 우선하는 국가주의적 성향이 확인됐다.

일본 정부는 2020년 7월 예정된 도쿄올림픽을 개최하려고 막판까지 고집을 피우다가 3월 25일에야 연기 결정을 내렸다. 당시 아베 신조 총리는 긴급사태 선언을 3월 7일, 16일 두 차례에 걸쳐 단계적으로 실시했다. 외출 자제 조치도 강제력 없이 국민의 동참을 요청하는 정도였다. 마스크 배포나 긴급 재난 지원금을 둘러싸고도 혼선을 빚었다.


도쿄올림픽 끝나자 코로나19 대응 달라졌다

전 세계의 비판적인 여론에도 불구하고 2021년 7월 도쿄올림픽이 강행됐다. 그 과정에서 낙후된 디지털 행정 및 의료 시스템으로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해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하지만 인내심이 강한 국민 덕분에 큰 혼란 없이 위기를 넘겼다. 올 10월 이후 확진자와 중증 환자는 크게 줄어드는 추세다. 일본 정부는 11월 30일 외국인의 신규 입국을 금지시켰다. 앞서 11월 8일부터 비즈니스 목적의 단기 체류자와 기능실습생, 유학생 등에 대해 조건부 입국을 허용했다. 불과 20여 일 만에 외국인 입국에 대한 정책을 완전히 바꿔 일본의 대외 폐쇄성을 노출했다. 해외 거주 일본인도 12월 1일부터 연말까지 귀국 항공편의 새로운 예약이 금지됐다가 국민의 반발로 사흘 만에 취소되기도 했다.

이번 외국인 입국 금지는 도쿄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시행했던 방역 조치와 너무나도 달라진 정책이다. 당시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이유로 올림픽 반대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일본 정부는 국익 차원에서 올림픽 개최를 밀어붙였다. 개인의 안전과 자유, 국가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사회의 기본 가치를 무시하는 ‘국가주의 일본’의 실체를 드러냈다.

올 6월 초, 일본에서 코로나19 백신을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3.5%에 불과했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하루 확진자 수가 연일 2만 명을 넘어 ‘방역 후진국’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9월부터 이 수치가 급격하게 줄어 10월에 1000명 아래로 떨어졌고, 11월 이후 100여 명 수준이다. 12월 6일 기준, 신규 확진자 수는 60명에 불과하다. 2차까지 백신을 맞은 접종 완료율은 77.1%를 기록했다.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와 중증 환자 급감은 ‘미스터리’로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도 화제다. 일부에선 확진자 검사 수치를 줄였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정보도 나돈다. 지난여름이나 현재나 일본 국민이 코로나19 검사를 받는 조건에 달라진 것은 없다. 의료계에서는 하루 확진자 1만~2만5000명이 나오던 7~8월에 경증·무증상 환자 규모를 하루 10만~20만 명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회복된 후 ‘자연 면역’을 획득, 백신 접종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본인이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집중적으로 맞아 감염자가 적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다른 나라에서도 동일 백신을 맞고도 확진자 결과가 다르게 나타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변이 바이러스의 일본 내 ‘자가 소멸론’이 나오지만, 과학적 근거는 없다.

도쿄 정책연구재단의 시부야 겐지 교수는 일본에선 최근 감염 사례가 적기 때문에 사망자가 적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인의 평소 생활 습관 덕분에 코로나19에 걸릴 가능성이 다른 나라보다 적다는 것이다. 평소에도 일본인은 꽃가루나 감기 방지 목적으로 마스크를 쓰는 경우가 흔하다. 손 세정제의 사용도 생활화돼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중앙정부와 지자체 간 협력 체제가 잘 작동하는 것도 코로나19 방역에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부야 교수는 확진자 급감 배경으로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는 등 매우 잘 행동한다”고 평가한다.


‘코로나19=자연재해’로 인내하는 일본인

일본인이 코로나19 초기에 둔감하게 반응한 뒤 차츰 안정을 되찾은 원인은 무엇일까. 대하소설 ‘대망(大望)’을 쓴 국민 작가인 시바 료타로는 ‘국가 위기 시 일본인의 약삭빠른 의식 전환 능력’을 작은 섬나라가 단기간에 국력을 키운 원동력으로 설명한다. “일본인은 자연 순응적이어서 코로나19에 무리하게 저항하지 않았다. 한국처럼 바이러스를 강력히 제압할 생각이 애초에 없었다.”

올림픽 개최에 미련을 두다가 긴급사태 선언이 계속 늦어졌다거나 전통적인 지방분권체제가 방역 활동에 걸림돌이 됐다고 설명하는 일본인도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인’의 실체를 파헤친 미국 사회학자 루스 베네딕스의 ‘국화와 칼’에서도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인의 두 가지 극단적 성격을 들춰낸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싸움을 좋아하는 동시에 유순하며, 군국주의적인 동시에 탐미적이다.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뛰어나다. 용감하면서도 겁쟁이이며,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은 재빨리 받아들인다”고 분석한다.

지난 2년간을 복기해 보면, 코로나19 초기에는 일본인의 ‘이중성’ 가운데 약점이 더 많이 작용한 듯하다. 전혀 예측지 못한 코로나19 위기 상황에도 주변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집단 우선 성향 배려심이 감염 확산을 키웠다. 기존 제도나 관습을 잘 바꾸지 않는 전통 중시 기질과 외부인에게 ‘속마음(혼네)’을 감추려는 ‘폐쇄성’이 정체를 모르는 ‘바이러스’ 공격에 허점을 드러냈다.


코로나19 사태, 일본 4차 산업혁명 계기 될까

일본인은 변화를 매우 싫어한다.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치기 전까지는 기존 관습이나 제도를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예로부터 아시아 대륙과 단절된 고립된 섬나라의 지리적 특성이 국민성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들은 외부 환경 변화에 매우 느리게 반응하지만, 국가적 위기라고 판단되면 혁명적 전환을 해온 특성이 있다. 중세 도쿠가와 막부에서 메이지유신(1868년)이 나타났고,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군국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로 탈바꿈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일본 사회에 대격변의 바람을 몰고 올 것 같다. 전통 의식, 종교 등에서 변화 움직임이 감지된다. 고유 종교인 신토(神道)와 불교 의식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요즘 신사나 절의 참배를 비대면 온라인으로 하는 곳들이 생겨났다. 일본인의 정신적 지주인 황실(왕실)도 바뀌고 있다. 왕실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신년 축하 행사를 코로나19 감염 방지를 위해 ‘영상’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일본은 정치와 관료 엘리트인 ‘관(官)’이 주도하고, ‘국민(民)’이 따라가는 구조다. 국가 지도자인 총리는 최근 2년 새 확 바뀌었다. 아베 신조 총리의 8년 장기집권은 막을 내리고, 후임 스가 요시히데 정권은 1년 단명으로 끝났다. 글로벌 감각을 가진 실력파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11월 초 등장했다. 외국인 전면 입국 금지 같은 폐쇄정책은 개방적인 세계 시민사회에 부합하지 않는다. 기시다 정권 아래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새로운 자본주의 건설을 내걸고 취임한 기시다 총리가 일본을 다시 성장 궤도에 올리고, 디지털과 탈탄소 사회로의 구조 전환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 일본의 변신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