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스크를 한 모습을 형상화한 모형이 3월 러시아 모스크바 기념품 가게 인근에 서 있다. 사진 EPA연합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스크를 한 모습을 형상화한 모형이 3월 러시아 모스크바 기념품 가게 인근에 서 있다. 사진 EPA연합

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 등 5개국으로 이뤄진 기밀정보 첩보 동맹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는 중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증거를 은폐했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5월 4일(이하 현지시각) 호주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파이브 아이즈가 작성한 15쪽짜리 보고서를 입수해 공개했다. 보고서는 코로나19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 있는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사람에게 전파된 정황을 담고 있다.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일한 이들이 완전한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고, 이 때문에 사람이 코로나19에 노출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년 전 중국의 한 TV 방송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의 과학자들이 실험 가운과 라텍스 장갑만 끼고 실험을 진행하는 모습을 방영했다.

또한 이 보고서는 중국 정부가 2019년 12월 코로나19가 사람 간에 전염될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올해 1월 말까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실었다. 파이브 아이즈는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위험성을 은폐하기 위해 내부 고발자를 처형했고, 연구소에 있던 코로나19 증거를 제거했다는 주장도 함께 다뤘다.

앞서 미국과 영국에선 중국이 코로나19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주장이 나온 바 있다. AP통신은 5월 3일 미국 국토안보부(DHS)가 펴낸 보고서를 인용해 “중국이 의료 물자를 비축하기 위해 코로나19를 숨겼다”고 보도했다. 중국이 코로나19 위험을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하는 것을 일부러 늦추면서 의료장비를 수입하는 동시에 수출은 줄였다는 것이다. DHS에 따르면 1월 중국의 수술용 마스크 수입량은 전월보다 278%, 수술용 방호복 수입량은 72% 늘었다.

영국 정보 당국도 우한 연구소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출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5월 3일 영국 해외 담당 정보기관인 MI6 전직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코로나19 발원지로 꼽힌 야생 동물 도축 시장이 아닌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가 의혹의 핵심이었다”며 “영국 정보기관은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중국 정부의 주장과 중국에서 나오는 정보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영국 정부에 보고했다”고 전했다.

파이브 아이즈 보고서와 관련해 영국 정보 당국은 텔레그래프에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 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주영 중국대사관 관계자는 “한 인터뷰에서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장은 ‘엄격한 관리 속에 실험이 진행됐다’고 말했다”라며 “연구소 내에서 감염된 사례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파이브 아이즈와 미국 정부 일각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나왔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에 동조하기 어렵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4일 “파이브 아이즈 5개국 가운데 호주, 영국, 캐나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 3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링컨기념관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트럼프 대통령이 5월 3일(현지시각) 워싱턴 DC 링컨기념관에서 폭스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 AFP연합

연결 포인트 1
트럼프 “코로나19, 中 발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산의 책임을 중국에 돌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30일 “코로나19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증거를 봤다”고 주장했다. 그는 5월 4일에도 “중국이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코로나19 중국 발원설’에 무게를 실었다. 그는 이어 “우한 연구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고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를 코로나19의 진원지로 지목하며 거들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3일 미 ABC방송에 출연해 코로나19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시작됐다는 수많은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수준 이하의 연구소를 운영한 전력도 있다”며 “코로나19는 중국 연구소의 실패 결과”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말하는 ‘증거’가 무엇인지 불분명한 상황이라 일부에선 미국에서 퍼진 코로나19에 대한 책임을 중국으로 돌리기 위한 음모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3월 10일 우한을 방문,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환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시진핑 국가주석이 3월 10일 우한을 방문, 코로나19 대응 의료진, 환자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中 “미국 대선에 활용 말라”

중국은 미국이 제기한 ‘코로나19 우한 발원설’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중국 환구시보는 5월 4일 “폼페이오 장관은 (코로나19가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 번도 증거를 보여준 적이 없다”며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것을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에서 코로나19 발원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대선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여론의 주의를 끌기 위한 것”이라며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뒤집으려고 한다”고 주장했다. 또 “거짓 소문을 퍼뜨리는 부도덕한 행위는 무책임하고 국제 사회의 방역 협력도 방해한다”고 했다.

인민일보도 같은 날 “미국이 코로나19와 관련해 중국 책임론을 펴는 것은 냉전 시대 화석 같은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중국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줄곧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책임 있게 행동했다”며 “중국의 방역 활동은 국제 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찬사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사진 AFP연합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사진 AFP연합

연결 포인트 3
중국 편든 WHO“자연 발생”

WHO가 미국을 향해 코로나19가 중국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발생했다는 “증거를 제시하라”며 관련 주장을 일축했다. 미국의 주장을 반박하며 사실상 중국 편을 든 셈이다.

마이클 라이언 WHO 긴급준비대응 사무차장은 5월 4일 스위스 제네바 WHO 본부에서 열린 화상 언론 브리핑에서 “미국 정부로부터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아무런 증거를 받지 못했다”며 “미국의 주장은 추측에 기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언 사무차장은 “코로나19에 대한 것은 공중 보건에 대한 정보라 매우 중요하다”며 “WHO는 코로나19의 기원에 대한 어떤 증거라도 있다면 기꺼이 받겠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데이터와 증거가 있다면 공유 여부와 시기는 미국 정부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마리아 판케르크호버 WHO 신종질병 팀장도 “코로나19에 대한 1만5000개의 유전자 배열을 확보하고 있지만, 우리가 확인한 바로는 모두 자연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