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1년 10월 1일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1년 10월 1일 미 워싱턴D.C. 백악관에서 회담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1년 12월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연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021년 12월 23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연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대립이 계속되면서 관련국의 셈법이 복잡하게 얽히는 모양새다. 미국이 고강도 대(對)러시아 제재를 마련하는 가운데 유럽 각국에서는 경제적 파장에 대한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는 1월 9일(이하 현지시각) “유럽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경우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준비 중인 ‘패키지 제재’ 방안이 유럽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해 러시아와 협상을 앞두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동유럽 국가 등과 러시아 제재 방안을 논의했다.

이들 국가는 대북, 대이란 제재 수준의 고강도 대러 수출 규제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금융 기관을 국제 금융 거래에서 차단하고, 항공과 반도체, 컴퓨터 등에 활용하는 첨단 기술을 통제하는 내용이다. 이런 제재는 항공, 전자기기, 공작기계, 스마트폰, 태블릿 PC, TV 등 다양한 품목 수출 거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한다. 블룸버그는 “(아직) 결정된 것은 없지만 이런 무역 제재가 미국의 대러 수출뿐 아니라 다른 외국산 제품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러시아를 대상으로 수출하는 유럽 등 다른 국가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유럽 일부 강대국들은 이런 미국의 고강도 제재안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가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 때문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제재에 대한 보복으로 유럽향 천연가스 공급을 차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에너지 무기화는 이미 유럽 경제에 위협으로 다가온 상태다. 실제 러시아는 2021년 12월 21일부터 유럽을 관통하는 야말-유럽 가스관을 통한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러시아 국영 가스 기업 가스프롬이 운영하는 야말-유럽 가스관은 러시아 서부 토르조크에서 벨라루스, 폴란드를 거쳐 독일 동부로 통하며, 유럽에 가는 러시아산 가스의 20%를 공급한다. 이 여파로 천연가스 가격도 치솟았다. 가스 공급을 중단한 당일 유럽연합(EU) 천연가스 가격 기준인 네덜란드 TTF거래소 천연가스 가격은 1MWh당 175유로(최고치)로 치솟았고, 유럽에는 겨울철 가스 대란 공포가 번졌다. EU는 천연가스 수요의 40% 이상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다.

이에 대러시아 제재를 위한 합의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EU가 미국의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려면 27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의 긴장감이 격화한 것은 2021년 10월 러시아가 나토 가입을 원하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10만 명 이상의 병력과 군사 장비를 배치하면서 비롯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준비설이 흘러나왔지만, 러시아는 이를 부인하고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군사적으로 지원해 자국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웬디 셔먼(왼쪽) 미 국무부 부장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1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미·러 안보 회의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미 국무부
웬디 셔먼(왼쪽) 미 국무부 부장관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부 차관이 1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한 미·러 안보 회의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미 국무부

연결 포인트 1
돌파구 못 찾는 미·러 안보 회담

미국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해법 마련에 나섰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양측은 1월 1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가량 마라톤회담을 벌였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이 이끄는 미국 대표단과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부 차관을 단장으로 한 러시아 대표단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여부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양측의 입장 차만 재확인한 채 종료됐다. 러시아는 최근 내놓은 안보 제안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반대를 비롯한 나토 확장 금지, 나토의 동진(東進)반대, 동유럽 내 군사 활동 금지 등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미국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사실상 결렬된 셈이다.

셔먼 부장관은 회담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러시아 측과 “솔직한 토론을 했다”면서도 “러시아의 가능성 없는 요구에 반대했다. 미국은 누구도 나토의 개방 정책을 닫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미국은 우크라이나 접경 러시아군 철수를 거듭 요청했지만, 러시아의 답은 듣지 못했다”라고 했다.

랴브코프 차관도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의사가 없다고 (미국에) 전했다”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다.

다만 양측은 앞으로 추가 회담 가능성을 열어놨다. 셔먼 부장관은 “미국은 조만간 러시아와 다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했고, 랴브코프 차관은 “이번 주 다른 회담 결과에 따라 향후 추가 회담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후속 회담 날짜는 정하지 않았다. 러시아는 12일 나토와, 13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와 회담했다.

이런 상황에서 양측의 군사적 긴장감은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군 약 3000여 명은 미국과 회담 다음 날인 지난 11일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서 실탄 총기와 탱크 등 군사 장비를 동원한 사격 훈련을 진행했다.


중국 샤먼에 있는 월마트. 사진 블룸버그
중국 샤먼에 있는 월마트.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2
미·중 갈등에 등 터지는 서방 기업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의 대중 경제 제재 조치와 중국의 애국주의 사이에서 서방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글로벌화(化)가 급격히 진전된 상황에서 국가 차원의 경제 제재가 타깃 효과를 내지 못하는 모양새다. 미국의 러시아 제재 움직임에 유럽이 경제 역풍을 우려하는 배경과 다르지 않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3일 중국 소수 민족인 위구르족 강제 노역 우려에 대한 대응으로 ‘위구르족 강제 노역 방지법’에 서명했다. 이는 위구르족 집중 거주 지역인 중국 신장 지역에서 생산하는 모든 상품의 미국 내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조치가 미국 유통기업 월마트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월마트 계열 회원제 창고형 할인마트인 샘스클럽 회원 수가 최근 급감한 것이다. 샘스클럽이 중국 소비자 불매운동의 표적이 된 결과다.

중국 내 샘스클럽은 바이든 행정부 조치 이후 신장 지역에서 나온 제품을 진열조차 하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월마트 측은 중국 언론에 재고 부족 때문이라고 입장을 밝혔지만, 중국 소비자들은 샘스클럽이 고의로 신장 지역 물품을 취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회원 탈퇴 등 불매운동에 나섰다.

중국 공산당 반부패 당국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 국가감찰위원회는 이에 대해 “어리석고 근시안적”이라며 “중국 시장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처신을 똑바로 하라”는 취지의 경고문을 냈다. 또 신장산 제품 사용 금지령을 내린 스웨덴 H&M, 미국 인텔 등에 대해서도 “서구 반중 세력의 중국 음해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