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도쿄특파원·온라인총괄 부국장
최인한 시사아카데미 일본경제사회연구소장
현 경희사이버대 일본학과 강사, 전 한국경제신문 기자·도쿄특파원·온라인총괄 부국장

“조국 일본과 마찬가지로 지구는 하나의 소중한 ‘고향 별’이다. 다음 세대에 지구를 아름답게 남겨주는 것이 우리 역할이고 책임이다.” 도요다 아키오(65) 도요타 사장은 올 초 일본자동차공업협회 회장 자격으로 업계와 언론, 소비자에게 신년 메시지를 보냈다. 일본 최대 제조 업체 도요타가 자동차 산업을 혁신시켜 탈탄소 사회를 이끌겠다는 비전을 담았다. 직원이 37만 명인 도요타(TOYOTA)는 일본 시가 총액 1위 기업이다.

1937년 도요타자동차공업을 설립한 지 84주년을 맞은 도요타가 100년 기업을 향해 모빌리티 중심 업체로 탈바꿈하고 있다. 아키오 사장은 2018년 새해 벽두 ‘자동차 회사’에서 ‘모빌리티 회사’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사장 취임 12주년을 맞은 아키오는 전기차와 수소차 개발에 역량을 쏟아붓고 있다. 일본의 탈탄소 목표 연도는 2050년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이 가솔린에서 전기차 중심으로 빠르게 바뀌는 것도 도요타의 사업구조 재편을 재촉하는 배경이다. 자동차 산업에서 업종 경계는 이미 무너졌다. 미국 구글, 아마존, 애플과 중국 바이두, 알리바바 등 빅테크 기업들이 잇따라 자동차 시장에 뛰어들었다. 새로운 기술 트렌드 ‘CASE’ 파고를 넘어야 생존한다는 데 업계는 공감한다. CASE는 커넥티드(connected)카, 자율주행(autonomous)차, 차량공유(sharing), 전동화(electrified) 차량의 앞글자를 각각 따온 것이다.

실제로, 2020년 7월 1일 당시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시가 총액이 2065억달러(약 235조4000원)를 기록, 자동차 업계 1위 도요타(2020억달러·약 230조2000억원)를 사상 처음으로 제쳤다. 올 5월 테슬라 시가 총액은 도요타의 2배에 달한다. 회사 임직원들이 긴장하는 것처럼 도요타는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섰다.


설립 80년 만에 모빌리티 회사로 변신 중

2020년대 들어 도요타의 변신 속도에 가속이 붙고 있다. 경기 침체에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터졌기 때문이다. 직기(織機) 업체에서 출발, 자동차 산업에 진출한 도요타가 80여 년 만에 ‘모빌리티’ 중심으로 회사 구조를 완전히 바꾸고 있다.

아키오 사장은 2018년 초 ‘모빌리티 회사’로의 장기 비전을 첫 공개했다. 이후 미래 자동차와 모빌리티 업체 지분을 사들이고, 관련 업체와 제휴에 나섰다. 지난해 도요타는 보유 중인 굴뚝 산업 주식을 처분하고, 미래 자동차 주식을 사들였다. 일본제철, 절삭공구 기업 OSG, 차량 전구 회사 이시미쓰공업, 산업용 벨트 제작 업체 미쓰보시벨트 등 4개 협력사 주식을 전량 매각했다. 대신 NTT, 스즈키, 미국 우버 등 CASE로 불리는 미래차 주식을 매입했다. CASE 업체인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 중국 CATL, 일본 소프트뱅크, 파나소닉 등과 전략적 제휴도 숨 가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도요타는 미쓰비시UFJ은행,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미즈호은행과 함께 800억엔(약 8000억원) 규모 ‘우주 개발 투자펀드’도 만들었다. 이 펀드로 로켓, 인공위성 등 우주 개발에 참여하는 신흥 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유인 달 탐사 차량을 공동 개발 중이다.

도요타는 코로나19 사태에도 견고한 실적을 냈다. 2020회계연도(2020년 4월~2021년 3월)에 순이익은 2조2452억엔(약 22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0.3% 늘어났다. 매출은 전년보다 8.9% 감소한 27조2145억엔(약 272조1000억원)에 그쳤지만 수익성은 개선된 것이다. 미국과 중국 등 주력 시장에서 판매가 살아났고, 비용을 절감한 결과 매출 감소에도 순익이 대폭 증가했다. 올해 실적은 더 좋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회사 측은 2021년 전망치를 통해 매출이 전기 대비 10.2% 늘어난 30조엔(약 300조원), 순익은 2.4% 증가한 2조3000억엔(약 23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판매 대수는 1055만 대로 지난해 992만 대를 웃돌 전망이다.

오는 2030년에 하이브리드차(HEV)와 전기차(EV) 등 전동화 차량의 판매 목표치는 800만 대다. 도요타 전체 판매 대수의 80%에 해당한다. 주력 차종이 10년 뒤 미래 차종으로 완전히 바뀐다. 아키오 사장은 지난해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에서 “자율주행 전기자동차가 달리고, 로봇 등 첨단 기술이 모이는 스마트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 사진 블룸버그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사장. 사진 블룸버그

아키오, 위기 극복·대변혁 리더십 발휘

일본인의 도요타 사랑은 대단하다. ‘도요타자동차=일본’으로 생각하는 소비자들이 무척 많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의 부흥에 도요타가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다. ‘가이젠(改善)’으로 대표되는 도요타의 품질 개선 방식은 글로벌 제조 업계에서 성공 방정식으로 통한다. 1980~90년대에 ‘세계 최고 일본(Japan as NO.1)’의 명성을 쌓은 주역이 바로 도요타다. 창업 이후 오너 가문과 전문 경영인이 잡음 없이 경영권을 번갈아 물려 주고 있는 전통도 일본 업계에서 귀감이 된다.

80여 년 만에 업태를 바꾸는 도요타그룹의 대변혁을 이끄는 주역이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다. 도요다 가문의 사키치(1867~1930)는 방직기로 첫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아들 기이치로가 1937년 자동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아키오는 기이치로의 손자다. 아키오가 도요타자동차의 11대 사장에 취임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인 2009년 6월. 그해 도요타는 71년 만에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그는 미국에서 1000만 대 대량 리콜 문제가 터지면서 큰 위기를 만났다. 회사 내에서 반대 의견이 강했지만, 그는 2010년 2월 미국 의회 청문회에 참가해 리콜 문제에 사과하고 책임지는 리더십을 보였다. 아키오는 “모든 차에 내 이름이 붙어 있다”며 품질을 강조, 세계 소비자를 호의적으로 돌려놨다.

취임 이후 아키오 사장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리콜, 동일본대지진 등으로 인한 글로벌 부품 조달 피해, 코로나19 등 큰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더욱 좋은 자동차를 만들자” “일본의 모노즈쿠리(장인정신을 담은 고품질 자동차 제조)를 지키자”고 말했다. 그는 올해에도 “예측 불가능한 정답이 없는 시대를 맞고 있다. 전 사원이 스스로 생각해서 필사적으로 도전하지 않으면 자동차 시장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며 “경영자는 회사 구성원을 바른 방향으로 인도할 책임이 있다”고 강조한다.

“80여 년 전 자동차 산업에 신규 진출할 당시 ‘기존 사업에만 매달리는 회사는 오래 생존할 수 없다’는 조부의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도 자주 말한다.


친환경 전기차, 수소차 개발 생산 확대

아키오 사장은 올 1월 8일, 완성차는 물론 부품 제조, 자동차 판매, 버스 및 택시 운송, 연료 및 보험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관련 업계 종사자 550만 명을 대상으로 동영상 메시지를 보냈다. 일본 경제의 중심인 자동차업계가 탈탄소 사회를 선도하자는 주장이었다. 일본에서 일하는 10명 중 1명이 자동차 산업과 연관돼 있다. 납부하는 세금은 15조엔(약 150조원)에 달한다.

도요타는 2050년 탈탄소 사회를 위한 기술과 제품 개발도 서두르고 있다. 전기자동차 생산을 확대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동차 생산에 사용되는 전기, 그 전기를 생산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줄이는 등 생산 시스템을 완전 개조하겠다는 것. 아키오 사장은 올 3월 기자회견에서 “탈탄소화의 중심에 자동차를 뒀으면 한다”며 “도요타는 지진 피해 지역의 생산공장을 미래차 공장으로 개편 중”이라고 밝혔다. 도호쿠 지방에서 생산되는 차량 대부분은 이미 전기차로 바꿔 그 비율이 80%를 넘고 있다. 후쿠시마현 나미에의 수소 제조시설에선 그린 수소를 개발하는 실험을 진행 중이다. 2037년 100주년을 맞는 도요타가 미래 자동차 시장에서도 선두 업체 위상을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