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월 22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차기 의장에 제롬 파월(68) 현 의장을 재지명했다. 파월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절인 2018년 2월 취임해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었으나, 내년 2월부터 4년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다. 민주당 정권에서 전 정권이 지명한 공화당 성향 인사를 중용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이 ‘경제 안정’에 집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연준 의장은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주는 미국 통화 정책을 관장해 ‘세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린다.

바이든 대통령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직후, 연준이 기준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낮추고 양적 완화를 통해 경제 안정화를 이뤄냈다는 데 주목했다. 그는 파월 의장 연임을 통해 경제 정책의 연속성을 유지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고물가·고용난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정책 불확실성이 커지면 금융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경제에 엄청난 잠재력과 불확실성이 있기 때문에 연준의 안정과 독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파월 의장의 다음 임기 1순위 과제는 인플레이션 타파다. 코로나19 이후 공장 가동률 하락, 노동자 이탈 등으로 상품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다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병목 현상 등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탓이다. 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10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기 대비 6.2% 올랐다. 이는 1990년 12월 이후 30년 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이다. 미국의 10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2010년 11월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파월 의장은 재임명 기자회견에서 “물가 상승이 특히 음식, 주택, 교통 같은 필수품의 높은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에게 타격을 준다는 걸 알고 있다”며 “경제와 노동 시장을 지원하는 한편,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지 않도록 수단을 사용할 것”이라고 했다. 백악관 측도 “연준은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고 완전 고용을 이뤄 우리 경제를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파월 의장의 과제는 인플레이션 타파뿐만 아니다. 로이터는 ‘파월 의장이 직면한 5가지 과제’로 △적절한 정책 수립 △금융 규제 강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발행 △기후 위험 △인종 및 성별 불평등을 꼽았다. 로이터는 “진보 진영에서는 연준이 고용 강화, 기후 위험 해결, 불평등 타파 등 더욱 광범위한 역할을 하기를 바라고, 보수 진영에서는 금융 시장과 감독에서 영향력을 줄이기를 원한다”며 “파월 의장은 다양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했다. 파월 의장 재임명엔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적인 셈법도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공화당 성향 인사인 파월 의장을 재임명하면 야당에 긍정적인 메시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원하는 사회복지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야당인 공화당의 지지와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파월 의장은 일부 민주당 의원을 제외하면 양당 상원의원들에게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어 인준 청문회를 무난히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파월 의장은 테이퍼링(양적 완화 점진적 축소)을 안정적으로 시행하고, 추후 미국 기준 금리 인상도 진행할 것으로 기대된다.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파월 의장은 연준 의장 가운데 드물게 경제학 관련 학위가 없는 인물로, 비둘기파(완화적 통화 정책 선호)에 가깝다는 평을 듣는다.


차기 연준 부의장으로 지명된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 사진 블룸버그
차기 연준 부의장으로 지명된 라엘 브레이너드 연준 이사. 사진 블룸버그

연결 포인트 1
연준 이인자로 부상한 브레이너드

미국 연준 부의장 자리에는 라엘 브레이너드(59) 연준 이사가 지명됐다. 그는 엘리자베스 워런, 제프 머클리 등 일부 민주당 상원의원의 지지를 받아 차기 의장 후보로 꼽히기도 했으나, 연준 이인자 자리에 앉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진보 성향이 강한 브레이너드 이사를 전면에 내세워 “연준이 기후 변화나 금융 규제, 빈부 격차 등에 소극적이다”라는 비판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됐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경제학 학위가 없는 파월 의장과 달리 정통 경제학자다. 이 때문에 그가 ‘강력한 이인자’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웨슬리언대 사회과학대학을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주당원인 브레이너드 이사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백악관 경제보좌관, 조지 부시 행정부 시절 재무부 관료를 지냈다. 2014년 연준에 합류한 뒤, 8년 만에 부의장직으로 올라섰다.

브레이너드 이사는 그간 엄격한 금융 규제를 선호하고 기후 변화 대응을 강조해 왔다. 그는 연준이 매년 실시하는 대형 은행 자산 건전성 평가에 기후 변화 관련 위험을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연준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를 개발해 국민의 금융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주유소. 사진 AP연합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주유소.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불확실성 해소에 투자자 안심

파월 의장 연임이 발표된 11월 22일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와 나스닥지수는 장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연준 정책 유지, 불확실성 해소에 안심하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앞선 파월 의장 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급작스러운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다만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에 강하게 대처하겠다고 시사하자, 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 모두 하락 마감했다.

파월 의장 연임은 투자자들이 가장 유력하다고 본 시나리오다. 역대 미 대통령이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연준 의장 연임을 택해 왔기 때문이다. 2017년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닛 옐런에서 제롬 파월로 연준 의장을 교체한 것이 오히려 예외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월가에서는 연준이 내년 상반기에 테이퍼링을 종료하고, 이르면 6월부터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금리 인상 시기와 횟수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파월 의장은 11월 초 기자회견에서 금리 인상 우려를 잠재우면서 명확한 금리 인상 시기를 언급하는 것을 피했다. 그러나 11월 23일 공개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2%)보다 높을 경우 금리 인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미국 뉴욕 맨해튼 증권거래소(NYSE) 앞의 월스트리트 도로 표지판. 사진 AP연합
미국 뉴욕 맨해튼 증권거래소(NYSE) 앞의 월스트리트 도로 표지판.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3
美 인플레 고민에 전략비축유 푼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1월 23일 급등하는 국제 유가를 잡기 위해 5000만 배럴 규모 전략비축유(SPR)를 방출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 인도, 영국 등 주요 석유 소비국도 전략비축유를 시중에 풀어 공급을 늘리기로 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플러스에 원유 증산을 요구했지만 통하지 않자, 강경책을 내놓은 셈이다.

전략비축유는 경제 봉쇄, 사고 등으로 석유 공급이 중단될 경우에 대비해 비축하는 원유로, 미국은 1973년 석유 파동 이후 비축을 시작해 현재 6억 배럴 이상을 비축하고 있다. 앞서 국제에너지기구(IEA) 주도로 1991년 걸프전, 2001년 리비아 전쟁,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시기 전략비축유를 방출한 바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비축유 방출로 치솟는 에너지 가격과 물가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계획이 통할지는 미지수다. 석유 공급이 늘면 산유국이 감산을 결정할 가능성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OPEC플러스는 비축유 방출 계획을 두고 “석유 추가 생산 계획을 재고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번 정책이 부작용을 낳을 경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늘어날 전망이다. 인플레이션이 저소득층의 일상과 직결됐기 때문이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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