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LCC)에서 CES 2020이 개막했다. 개막 전 이른 시간부터 전시장 입구는 행사를 기다리는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올해 CES에는 4400여 개 기업이 참가했고 17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렸다. 사진 AFP연합
1월 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라스베이거스 컨벤션 센터(LCC)에서 CES 2020이 개막했다. 개막 전 이른 시간부터 전시장 입구는 행사를 기다리는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올해 CES에는 4400여 개 기업이 참가했고 17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몰렸다. 사진 AFP연합

정체된 도로에서 택시를 부르자 하늘에서 소형 헬리콥터가 내려온다. 자율주행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회의하고 식사도 한다. 제3의 인격을 가진 인공인간이 TV 아나운서가 돼 뉴스를 전한다. 자신의 아바타에게 옷을 입혀 사이즈와 스타일을 확인하고 구매한다.

영화나 소설에서 제시됐던 미래상이 성큼 현실로 다가왔다. 1월 7일(현지시각)부터 10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 2020’에는 상상으로만 가능했던 기술이 제품으로 구현돼 전시됐다. 기술 완성도가 높아졌고 실생활에 실제 도움을 주는 기능이 대거 추가됐다. CES는 1967년부터 시작된 세계 3대 정보기술(IT) 전시회 중 하나로, 매년 1월에 열린다.

이번 행사에는 전 세계 4400여 개 기업이 참여해 주력 제품과 기술을 전시했는데 인공지능(AI)과 로봇, 뉴 모빌리티 등에 초점이 맞춰졌다.


1│일상으로 들어온 인공지능과 로봇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AI 기능이 쏟아졌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테니스공 모양의 로봇 ‘볼리’는 AI 기능을 바탕으로 사용자의 명령에 따라 집 안 곳곳을 모니터링하고 스마트폰, TV 등의 기기와 연동해 기능을 수행한다. 또 삼성전자는 AI 보조 요리사 ‘삼성봇 셰프’가 요리를 돕는 것도 시연했다. 이와 함께 인조인간 프로젝트 ‘네온’을 소개해 이목을 끌었다. 감정, 표정, 생각 등을 스스로 표현하는 AI로 향후 뉴스 아나운서, 대변인, 강사 등의 영역에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는 ‘LG 씽큐 존’을 대규모로 조성하고 ‘클로이 테이블’ 전시 존을 마련해 고객들이 식당에서 경험할 수 있는 로봇 서비스를 선보였다.

음성 AI 기술도 진일보했다. 구글은 AI 비서 ‘구글 어시스턴트’에 ‘리드 잇(Read it)’ 기능을 추가했다. 이는 영어 텍스트를 힌디어, 독일어 등 42개의 언어로 실시간 번역한다. 특정 시간에 명령을 이행하도록 하는 예약 명령 기능도 추가했다. 예컨대 “내일 오전 6시에 커피머신 켜 줘”라고 말하면 다음 날 아침 6시에 커피가 자동으로 내려지게 하는 것. 이를 위해 구글은 LG전자, 필립스, 레노버, 하이센스, TCL 등 여러 제조사와 협업해 10억 개 이상의 기기에 AI를 탑재했다고 밝혔다.

보쉬가 출품한 AI 기반 선바이저는 인텔리전트 알고리즘을 통해 차량 내 투명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가 수집한 운전자 눈 위치 정보를 분석해 차량 전면 유리창에서 눈을 부시게 하는 부분만 어둡게 조정한다.


이방카 트럼프가 CES 2020에 참석해 정부 정책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이방카 트럼프가 CES 2020에 참석해 정부 정책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2│뉴 모빌리티 시대 활짝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등 미래형 모빌리티의 진화도 두드러졌다. 아우디는 자율주행차 ‘AI: ME’를 통해 자동차가 제3의 생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운전대가 없고 고급스러운 카페나 사무실 같은 인테리어를 갖췄다.

포드는 성능을 개선한 전기차 머스탱 매치 e 퍼포먼스 모델을 내놨고, 혼다는 운전자가 바꿔 앉지 않아도 교대할 수 있도록 운전대 위치가 바뀌는 차를 소개했다. 닛산은 순수 전기차와 함께 자율주행 시스템을 적용해 퍼팅하면 자동으로 홀컵으로 들어가는 골프공을 보여줬다.

새로운 형태의 모빌리티도 화제였다. 현대차는 우버와 협력해 개발한 개인용 비행체(PAV)의 실물 크기 콘셉트 ‘S-A1’을 전시해 관람객의 큰 관심을 끌었다. S-A1은 공중에 매달려서 로터가 돌아가는 모습을 연출했다. 헬리콥터 제조사 벨도 우버는 에어택시용 항공기 ‘넥서스 4E’를 전시했다. 세그웨이는 S-팟이라는 이름의 주행 의자를 선보였다. 바퀴가 2개 달린 의자 모양의 기기는 탑승자가 편하게 앉아 있는 상태에서 좌석 오른쪽에 있는 작은 조이스틱을 사용해 차량을 제어할 수 있다. 최고 속도는 시속 약 38㎞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제임스 캐머런 감독 영화 ‘아바타’에서 영감을 얻은 자율주행 콘셉트카 ‘비전 AVTR’ 쇼카를 전시해 이목을 끌었다. 쭉 뻗은 ‘활’ 같은 모습에 실내가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한 외관, 뒷면에 파충류 비늘을 연상시키는 33개의 표면 요소 등이 특징이다. 센터 콘솔에 손을 올리면 차량이 에너지를 전달받은 듯 작동하기 시작한다.


메르세데스-벤츠는자율주행 콘셉트카 ‘비전 AVTR’ 쇼카를 선보였다. 사진 연합뉴스
메르세데스-벤츠는자율주행 콘셉트카 ‘비전 AVTR’ 쇼카를 선보였다. 사진 연합뉴스

3│스마트 헬스케어의 진화

올해 CES의 또 다른 특징은 디지털 헬스케어 관련 기업의 참가가 지난해보다 20% 증가했다는 점이다.

국내 기업이 CES 혁신상을 받는 등 활약이 두드러졌다. 국내 기업 엑소시스템즈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솔루션 ‘엑소리햅’을 내놨다. 이 제품을 무릎 등 관절에 붙이면 근육을 강화시켜 고령화 근감소증을 방지한다. 올리브헬스케어는 복부에 갖다 대면 수초 안에 지방을 측정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상태를 알려주는 복부지방측정기 ‘벨로’를 출품했고, 아이콘 에이아이(ICON.AI)는 피부 분석부터 증강현실(AR) 메이크업 등이 가능한 기기를 선보였다. 베개 높낮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코골이 전용 베개 ‘모션 필로우’를 개발한 한국 스타트업 텐마인즈는 CES 2020 혁신상을 받았다. 삼성전자의 사내 벤처 육성 프로그램 ‘C랩 인사이드’ 우수 과제로 꼽힌 △두피 케어와 탈모 예방 홈케어 솔루션 ‘비컨’ △자외선의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해주는 센서와 서비스 ‘울트라브이’ 등도 소개됐다.

이 밖에도 스마트 소변 분석기(Bisu Body Coach), 천식 환자를 위한 공기 질 추적 센서(Brilliant Company), 당 수치 모니터링 웨어러블 기기(Glutrac) 등 다양한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이 등장해 관심을 모았다.


4│사라지는 중국 업체…이방카 논란

중국 업체들의 탈CES 행렬이 더욱 심화됐다. 2018년까지만 해도 메인 부스에 대규모 부스를 세우고 기조연설에 참여했던 중국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은 지난해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고, 올해 CES에서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해까지 참여했던 알리바바그룹이 불참했고, 중국 통신장비 업체 ZTE는 지난해에 이어 정식 전시장 없이 미국 지사를 통한 소규모 부스만 열었고, 화웨이도 전시 규모를 대폭 축소했다. 샤오미 역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불참했다. 거의 매년 CES의 기조연설 명단을 채우던 중국 업체가 2년 연속 자취를 감췄다. 중국이 CES에 소극적으로 나오는 데에는 미·중 무역전쟁 장기화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행사 기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가 CES 기조연설자로 등장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CES를 주최하는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는 IT 업계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외면받고 있다는 이유로 이방카를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이방카는 직업 교육과 인력 개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정부의 노력에 관해 이야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1월 7일 이방카보다 IT 분야에서 더 훌륭한 업적을 쌓고 자격을 갖춘 사람이 많은데 이방카를 무대에 세운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방카가 CES에 참가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난 연말부터 트위터 등에는 #보이콧CES(#boycottCES) 해시태그가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