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귀금속 매장에서 직원이 금괴를 진열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태국의 귀금속 매장에서 직원이 금괴를 진열하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2018년 ‘황금 개띠 해’를 맞아 금값이 상승하고 있다. 국제 금 시세는 뉴욕상품거래소에서 지난해 12월 중순 1온스(31.1g)당 1240달러선에 거래됐지만, 이후 상승하며 2월 21일엔 1330달러를 기록했다. 2016년 8월 초 이후 1년 6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국제 금 시세 상승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금은 역사적으로 실물 화폐로 통용돼 왔고 대체재 성격을 갖고 있다. 그래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 금의 가치는 높아진다. 또 금은 반지, 목걸이 등 장식품으로 가공할 수 있어 다른 원자재처럼 상품의 특성도 가진다. 금을 가공하기 위해 매수하는 수요가 늘어나면 가격이 오른다. 중국의 금 수요를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설 연휴를 앞둔 2월 1일 중국 상하이의 저우다푸 매장에서 고객이 금 장신구를 고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설 연휴를 앞둔 2월 1일 중국 상하이의 저우다푸 매장에서 고객이 금 장신구를 고르고 있다. <사진 : 블룸버그>

금리와 금값 동반 상승

금은 안전자산이기 때문에 금리가 상승할 때 약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금리가 인상되면 달러화 가치가 올라가기 때문에 달러로 표시되는 금값은 하락한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금리가 급상승한 이후 금 가격이 오히려 금리와 함께 상승했다.

최근 금값이 오르는 큰 원인은 금리 인상기인데도 달러화가 약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금 가격 상승을 이끈 직접적 변수는 달러화 가치 하락”이라며 “달러인덱스(유로·엔·파운드·캐나다달러·스웨덴크로네·스위스프랑 등 주요 6개국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지수)가 1개월 동안 약 5% 하락하며 금을 포함한 원자재 가격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렸다”라고 했다.

금과 마찬가지로 달러가 약세를 보일 때 투자자들이 몰리는 일본 엔화 가치도 상승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금과 엔화값이 계속 오르는 것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공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면서 “단기적으로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2월 28일 미국 의회에 출석해 발언할 때까지 현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미국에서 금리가 오르면 달러화 가치가 상승한다. 그러나 지금은 금리와 달러화 가치가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 10년간 금리가 통화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억제돼 왔기 때문에 시장에서 금리와 달러화 가치가 이론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BNP파리바는 “각국 중앙은행의 양적완화와 중국의 자본통제가 실시되는 상황에서 금리는 환율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국제 금값은 지난해 가장 낮았을 때와 비교해 10% 이상 상승했지만, 여전히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김 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지금까지 9년간의 국제 금 시세를 볼 때 아직도 금값은 저점에 가깝다”며 “금리 상승이 귀금속 가격을 압박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지금은 예외적으로 시장의 투자심리가 강한 시기여서 금리가 상승해도 금 가격이 오를 것”이라고 했다. 안전자산인 금은 일반적으로 증시가 상승할 때 약세를 보이지만, 2005년과 2006년의 골디락스(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장세에선 주식, 원자재, 부동산과 함께 금값도 상승했다.


중국인, 금 사서 자녀에게 선물

상품으로서의 금을 매입하려는 수요도 늘 것으로 보인다. 금을 사려는 큰손 중의 하나는 중국이다. 2월 12일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춘절(설) 연휴를 앞두고 중국 내 금 소비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최대 귀금속 업체인 저우다푸(周大福)의 베이징 한 매장은 설 연휴 전 금 장신구를 사려는 손님들로 붐볐다. 금 팔찌 2개를 6000위안(약 102만원)에 산 한 여성은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드리는 선물”이라면서 “의미 있는 선물로 금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매장에서 금 장신구 판매는 3개월 전보다 30%쯤 늘었다.

중국의 금융결제 업체 유니온페이에 따르면 올해 1월 중국의 금 소비는 전달보다 20.4% 증가했다. 베이징황금교역센터의 저우잉하오 애널리스트는 “많은 소비자들은 가족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금 장신구를 살 뿐만 아니라, 밸런타인데이에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도 산다”라며 “저장성과 광둥성의 결혼 시즌이 다가오는 것도 금 수요가 증가한 원인”이라고 했다.

또 많은 중국인은 금을 장기적인 투자 대상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금 수요가 늘어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한 은행 관계자는 글로벌타임스에 “많은 고객들이 금을 사서 자녀들에게 준다”고 말했다. 귀금속 전문 매체 킷코뉴스에 따르면 ANZ의 다니엘 하인즈 수석상품전략가는 “지난 연말부터 금 가격이 상승했고, 2018년 내내 이런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며 “지난 1월 중국에서 설을 앞두고 금을 사려는 수요가 강하게 나타났고, 올해 큰 폭의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고 했다.

금 수요 증가를 부채질하는 다른 요인은 일본이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내년 4월 30일 퇴위하고 다음 날인 5월 1일 아들인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즉위할 예정이다. 일왕의 양위는 금 수요를 늘려 가격이 상승하는 원인이 된다. 일본 조폐국에 따르면 최근 50년간 일본은 총 15번 금화를 발행했다. 나가노 동계올림픽, 2002년 월드컵을 기념해서도 금화가 발행됐지만, 대부분의 금화는 일왕과 관련해 발행됐다. 1989년 현 일왕이 즉위한 것을 기념하는 금화는 200만개 발행됐다. 게다가 일본은 2020년 도쿄 올림픽도 개최한다. 수량은 적지만 올림픽 개최를 기념한 금화도 발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콩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하이퉁국제증권의 로 초얀(盧楚仁) 수석부사장은 “일본의 전통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19년 새로운 일왕의 즉위를 기념하기 위해 금화를 발행할 것이고, 2020년 도쿄 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한 금화도 발행할 것”이라면서 “국제 금 시장은 일본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금 매입을 시작할 것으로 보고 있고, 이 예측이 금 가격을 상승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 연말까지 국제 금값은 1온스당 1450달러까지 오르고, 내년엔 1550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