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잠실의 한 시중은행에 대출 상품 안내문이 걸려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서울 잠실의 한 시중은행에 대출 상품 안내문이 걸려 있다. 사진 조선일보 DB

신한금융지주의 올해 상반기 전체 이익 규모는 5조760억원이다. 이 중 이자이익은 4조1800억원으로 82.3%를 차지했다. 수수료나 유가증권 투자 및 외환‧파생상품 판매 등으로 거둬들인 비이자이익은 8960억원에 그쳤다.

신한금융처럼 국내 대형 금융사들의 이자이익은 전체 이익에서 압도적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KB금융(77.8%)과 하나금융(72.8%) 등 다른 금융지주사들도 이자이익 비율이 70%를 훌쩍 넘겼다. 대부분 이익을 가계와 기업에 대출해준 이자 장사로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지나치게 보호받고 안주하면서 이자 따먹기에 너무 골몰하는 것”(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이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국내 금융회사들은 왜 이자이익 중심의 영업을 하는지 그 이유를 세 가지로 추려봤다.


1│1500조원 가계부채에 기대는 국내 은행

국내 금융회사들이 이익의 70~80%를 대출이자에서 얻고 있는 것은 일본·미국 등 주요국 금융사들과 현저히 다른 현상이다. 일본 최대 금융사인 미쓰비시UFJ파이낸셜그룹의 경우 전체 이익에서 이자이익이 차지하는 비율은 51%에 그친다. 나머지 49%가 유가증권 투자나 수수료, 외환‧파생상품 중개 등 비이자이익에서 나온다. 미국의 경우 이자이익과 비이자이익 비율이 6:4 정도의 균형(2014년 말 기준 미 상업은행의 평균 비이자이익 비율 37%)을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한국 금융사들이 대출이자 중심의 영업을 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로 1500조원(상반기 1493조원‧한국은행)의 가계부채를 지목한다. 국제결제은행(BIS)이 선진 12개국과 신흥 14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84%(2014년 말 기준)로 신흥국 중 가장 높았다. 국내 가계부채 비율은 신흥국 평균(30%)의 2.5배였다. 한국의 가계부채 비율은 선진국 평균(73%)보다도 높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말 1203조992억원이던 가계부채는 2년 6개월만인 올해 상반기 290조563억원(24.1%) 급증한 1493조1555억원까지 불었다. 단기간에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불어났으므로 은행들이 이자로 거둬들이는 돈도 따라서 급증했다. 금융사로서는 이런 안정적이고 거대한 수익원을 외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2│4~5개 은행 독과점 구조

국내 금융사들이 이자 장사 중심의 영업을 하는 원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대형 은행 중심의 독과점 구조다. 주요 금융지주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또 4~5개 금융지주사 계열의 은행들이 대출 시장을 대부분 선점하고 있기 때문에 은행 간 서비스 경쟁을 제대로 하지 않아도 소비자를 빼앗기지 않는 상황이다.

신용평가회사 한국신용평가(KIS)가 국내 은행 전체의 대출금 시장 점유율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KB국민(13.9%), 우리(13.3%), KEB하나(12.6%), 신한(12.4%) 등 4대 시중은행이 전체의 52.2%(2015년 말 기준)를 차지했다. 반면 SC, 씨티 등 외국계 은행은 물론 부산, 대구 등 주요 지방 은행들도 2% 이하의 점유율만을 보였다.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이 지난해부터 영업을 시작했지만 대출 시장에서 주요 은행의 경쟁 상대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반면에 미국은 상업은행 수만 5338개(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달한다. 다양한 신탁이나 자문 서비스를 개발하지 않으면 바로 고객을 잃어버리는 철저한 경쟁 시장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일본에는 미쓰비시UFJ금융그룹, 미즈호 파이낸셜그룹, 미쓰이스미토모 파이낸셜 등 대형 메가뱅크가 있지만 지방 은행을 포함하면 100개가 넘는 은행(113개·2016년 말 기준)이 영업하고 있다. 전국에 있는 은행 지점도 1만1192개에 달해 국내 은행(6400여 개)의 두 배가량이다.


3│규제에 가로막힌 신 금융 서비스

금융사들이 은행부문의 대출 영업에 집중하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영역에 대한 규제 벽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것은 신탁업에 대한 규제다.

신탁은 재산권을 수탁자에게 맡겨 이익 또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관리‧처분하도록 하는 서비스인데, 은행 등 금융회사들이 고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면서 수수료의 주요 원천이 된다. 문제는 국내 통합자본시장법은 은행 등 금융사가 할 수 있는 신탁의 종류를 금전, 증권 등 7가지 재산으로 제한하고 금융사가 신탁자의 재산을 자율적으로 투자 운용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아놨다. 반면 유럽, 미국, 일본 등은 금융 소비자가 신탁할 수 있는 재산권의 제한을 두지 않고 금융사가 계약에 따라 자유롭게 신탁 자산을 운용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허용한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서비스에 대한 규제가 결국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금융사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탁업 규제를 좀 더 완화해 은행의 부가 서비스를 강화하려는 노력을 정부에서 해왔지만 현재는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상태”라고 했다.

Plus Point

日 은행, 수익성 떨어지자 에어비앤비와 손잡아

일본 도쿄 시내의 미즈호 은행 지점. 이 은행은 숙박시설 투자‧융자사업을 위해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앤비와 업무제휴를 맺었다. 사진 블룸버그
일본 도쿄 시내의 미즈호 은행 지점. 이 은행은 숙박시설 투자‧융자사업을 위해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앤비와 업무제휴를 맺었다. 사진 블룸버그

미쓰비시UFJ, 미즈호 등 일본 5대 은행의 지난해 회계연도 상반기(4~9월) 결산 결과를 보면 영업이익이 1조1146억엔(약 10조6900억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같은 기간보다 28%가 급감했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하면서 예대마진 축소가 영향을 미쳤다.

미즈호은행의 경우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이익률(ROE‧자기 자본에 대한 이익 비율)이 2013년 15%대까지 올라 호황을 누렸지만, 2015년에는 7%대로 반 토막 났고, 현재도 수익성 악화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에 미즈호는 지난해 6월 블루 랩(Blue Lab)이라는 핀테크 회사를 설립해 신사업을 통한 수익 창출을 노리고 있다. 블루 랩은 주로 4차 산업혁명 분야의 디지털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인데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대비해 숙박공유 업체 에어비앤비(Airbnb)와 업무 제휴를 하고 숙박시설 관련 투자·융자를 추진한다. 숙박 사업자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핀테크 기술을 갖춘 자회사를 설립한 셈이다. 국내 금융사들은 경기 불황에도 사상 최대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일본 금융사의 이 같은 노력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불황이 대출채권의 부실화로 이어지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아지지 않으면 대출이자를 내지 못하는 채권자가 많아져 금융사의 수익성이 급락하는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