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12월 13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사진 연합뉴스
검찰은 12월 13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섰다. 사진 연합뉴스

검찰이 12월 13일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압수수색에 나서며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금융 당국이 지난달 “2015년 말 회계 결산에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고의적인 분식회계를 했다”며 삼바를 고발한 데 따른 것이다. 삼바는 2011~2014년까지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던 회사다. 그런데 2015년 말 회계 기준을 변경하며 1조9049억원의 흑자기업으로 돌아섰고, 이를 두고 4조5000억원 규모로 이익을 부풀렸단 지적이 나왔다.

삼바 이전에도 대우조선해양, 한국항공우주산업 등 굵직한 기업들의 분식회계 전례가 있었다. 그럼에도 분식회계는 최근에야 심각한 범죄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기업의 회계 처리가 적법하게 이뤄졌는지 감사하는 회계법인은 오히려 분식회계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로 함께 처벌받았다. 삼바의 2012~2015년 외부감사를 맡았던 삼정회계법인은 △과징금 1억7000만원 △삼바에 대한 감사업무 5년간 제한 △회계사 4명 직무정지 등 징계를 받았다.

기업의 회계 처리를 감사해야 할 회계법인이 오히려 부실한 회계의 조력자로 밝혀지면서 전문성·독립성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런 지적에 따라 개정된 외부감사법(신외감법)이 지난 11월부터 시행되면서, 보수적인 회계 산업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법 시행에 따라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회계사들의 업무량이 늘어나고, 외부감사 대상 기업이 증가할 전망이다. 일선 회계사들은 “외감법 시행 한달 차, 권한이 늘어난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갑을 관계’ 개선, 회계사 연봉 인상

우선 실무 회계사들이 현업에서 허탈함을 느꼈던 원인 중 하나인 감사 대상 회사와의 ‘갑을 관계’가 개선되는 추세다. 국내 대형 회계법인의 5년 차 회계사 박현정(30)씨는 외감법 시행 이후 한결 일하기 수월해졌다고 했다. 그는 “외감법을 근거로 고객사의 부당한 요청을 거절할 근거가 생겨서 마음이 편하다”면서 “이전에는 재무제표 주석을 우리(회계법인)가 작성해 준다든지, 회계 처리 사항에서 틀린 내용이 있을 경우 조용히 알려준다든지 하는 것들은 전부 불법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눈감아 줘야 해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예전에는 회계 감사를 맡기는 기업들로부터 ‘까다롭다’는 불만이 발생하면 자칫 거래처를 잃을 수도 있어 상사들도 ‘해달라는 대로 해주라’고 눈치를 줬다”고 귀띔했다. 익명을 요구한 삼일회계법인 출신 전직 회계사는 “분식회계가 발각되면 자료를 제출한 회사는 멀쩡한데 그 자료를 토대로 감사한 회계사들만 처벌받는다는 공감대가 팽배했다”면서 “책임은 큰 데 비해 권한은 별로 없고 보상도 적어 감사 부서 기피 현상이 심했다”고 말했다.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한 회계법인 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신외감법에 따라 회계법인에 대한 처벌규정이 강력해지면서 회계사 개인의 실수가 회계법인에 치명적인 문제로 작용할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4대 대형회계법인은 높은 업무 강도 때문에 3~8년차 경력을 가진 회계사가 일반 기업체로 이직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창 일할 연차의 탄탄한 실무 능력을 갖춘 회계사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다. 이 같은 인력 이탈을 막기 위해 회계법인들은 회계사들의 연봉을 올려주겠다고 공표했다.

업계 1위 삼일회계법인을 선두로 회계사들의 처우를 개선하는 작업이 이미 시작됐다. 삼일회계법인은 지난달 6~8년차 회계사들의 기본급을 8280만~8880만원으로 이전 대비 10~15%(약 1000만원)씩 올렸다. 이에 질세라 인력 이탈을 우려한 나머지 대형 회계법인들(삼정·안진·한영)도 삼일회계법인 수준의 기본급 인상을 잇달아 약속했다.


중소회계법인‘몸집 키우기’ 나서

이와 더불어 신외감법에 담긴 감사인 등록제에 대비한 중소회계 법인들의 합종연횡도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감사인 등록제란 2020년 회계연도부터 회계사가 40명 이상인 회계법인만 상장사 감사업무를 맡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소회계법인들은 ‘우리는 죽으라는 것이냐’며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물밑에서는 분주하게 합병으로 몸집을 키울 준비를 하고 있다.

최근 중소회계법인 가운데 한 곳인 한길회계법인은 두레회계법인과 합병을 마쳤고, 성신회계법인과도 합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계법인의 분할·분할합병이 가능하도록 하는 공인회계사법 일부개정법률안도 이달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단, 회계법인 차원의 개선 노력에 더해 감사 대상인 기업들이 회계 투명성에 대한 수요를 갖고 있어야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회계 품질 개선은 감사인(회계법인)뿐 아니라 감사 대상인 기업들이 회계 투명성을 통해 기업 가치의 진면목을 시장에 알리고 싶어 하는지에 달려 있다”면서 “회사의 경영진과 이사진이 회계를 지금처럼 준법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Plus Point

[Interview]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이제 ‘시키는 대로 했다’는 변명 통하지 않는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의 자문 기구인 감리위 위원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의 분식회계 건을 직접 심의했다.

그는 증선위가 삼바에 대해 ‘고의적 분식회계’라고 지난달 결론을 내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너무나 명명백백한 고의에 의한 분식회계”였다고 감리위원으로서의 소회를 밝혔다. ‘이코노미조선’은 13일 그에게 ‘분식회계 사례로 배울 점’에 대해 질문했다.


앞선 분식회계 사례들에 등장하는 회계법인들을 보며 느꼈던 감정은.
“자본시장에서 회계 투명성을 지켜내는 ‘문지기’가 돼야 할 회계법인들이 회사가 요구하는 부실 회계의 조력자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며 슬펐다.”

한국 회계 산업의 현실은.
“큰 법적 책임에 비해 감사 보수는 적고, 업무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삼바가 지급한 2012년 감사 보수가 3000만원 이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이렇게 적은 보수에 제대로 감사가 이뤄졌을까. 최근 감사 보수가 오르는 추세가 되면서 삼바의 감사 보수가 4억원을 넘긴 것으로 안다. 회계법인은 큰 법적 책임을 지는 회사다. 이를 감내할 수 있을 만한 감사 보수를 받아야 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감사 업무를 진행해야 회계 품질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회계법인이 회계사들에게 돈을 더 주는 것 외에도 개선해야 할 점은.
“실무 회계사가 현장에서 ‘아니오’라고 말하지 못하는 문화를 손대야 한다. 강화된 신외감법하에서는 더 이상 ‘우리는 을이라서 시키는 대로 했다’는 회계법인들의 무책임한 변명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회계법인은 감사 대상인 회사와의 ‘갑을 관계’ 문제만 반복하지 말고, 감사 대상인 회사가 협조하지 않을 땐 회사의 감사위원회 제도를 적극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감사위원회는 회계와 업무에 대한 감독 및 이사회에서 위임한 사항을 심의·결의하는 기구다.”

미국 엔론의 분식이 밝혀진 후 감사인이었던 아더앤더슨은 해체됐다. 이에 비해 이번 삼바 사태에서 회계법인 징계가 다소 약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정부가 안진회계법인에 이어 또 하나의 대형 회계법인이 큰 충격을 받을 경우 감사 시장에 생길 영향도 감안해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회계 투명성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회계 투명성이 담보되면 혁신 산업이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회계 정보는 자본시장에서 계약의 결정을 판단하는 근간이다. 안정적인 산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은행과 달리, 자본시장은 모험자본이 혁신산업에 투자하는 무대다. 모험자본이 자본시장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베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면 투자 판단의 근간이 되는 투명한 회계 정보가 담보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