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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수 메리츠증권리서치센터장현 한국은행 외환자산 운용위원회 외부위원,투자전략 부문 최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
이경수 메리츠증권리서치센터장현 한국은행 외환자산 운용위원회 외부위원,투자전략 부문 최다 베스트 애널리스트 수상

6월 10일 발표된 미국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 세계 금융시장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전년 대비 8.3% 전후의 상승세를 기록할 것이라는 시장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5월 소비자물가는 국제유가와 곡물 가격 상승 영향으로 8.6%를 기록했다. 지난 3월 8.5%를 정점으로 물가 상승 압력이 완화할 것이란 시장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더욱이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핵심물가도 내용적인 측면에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더욱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통해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억제해야 할 명분을 부여했다. 코로나19와 무관한 수요 측 물가 압력과 주거비 상승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이제 금융시장은 오는 9월까지 연방기금금리(기준금리)가 중립 금리로 인식되는 2.50%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여기서 금리 인상이 끝나지 않으리라는 점이다. 오는 9월이 돼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6%를 상회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 얼마나 길어질지,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간에 타협이 원만히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공급 측 물가 압력은 언제라도 터질 수 있는 통제 불가능한 잠재 폭탄이다. 그나마 낙관적인 9월에 6%대라는 물가 상승률도 연준이 생각하는 적정 수준인 2.5% 전후의 상승률과 여전히 차이가 있다. 

따라서 경기를 꺼뜨리지 않는 중립 수준을 넘어선 영역까지 연방기금금리가 인상돼야 제대로 물가가 잡힐 수 있다는 전망이 타당하다. 우리는 연방기금금리가 올해 말 3.00%, 내년 상반기 말에는 3.25%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는데, 이들 수준은 중립을 넘어선 ‘긴축’을 의미한다. 즉, 경기하강을 대가로 인플레이션을 잡는 것이다.

1994년 ‘채권 대학살’에 준하는 연내 275bp (1bp=0.01%포인트) 인상이 뒤따른 이후에는, 아무리 지금의 미국 내수 체력이 양호하다 할지라도 결국 침체가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6월 13일 장중 미국 2년물 국채금리는 10년물 금리를, 5년물 금리는 30년물 금리를 다시 넘어서기 시작했다.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블랙록은 내년 경기침체 진입 확률을 이제 50%까지 높여 잡았다. 침체 공포가 다시금 반영되는 구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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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적 금리 인상 뒤에 침체 피해 간 세 번의 사례

역사적 경험에 따라서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공격적 금리 인상 끝에 침체가 찾아온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확률적으로는 맞을 수 있다. 1954년 이후 금융위기 직전까지 총 11번의 사례 중 8번은 경기침체를 경험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침체를 기정사실화하고 투자에 임해야 할 것인가.

11번 중 침체를 절묘하게 피해 갔던 나머지 세 번에 오히려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바로 1967년, 1984년, 1995년의 경험이다. 금리 인상 끝에 경기침체를 피해 갔던 이 사례들에는 연준이 금리 인상을 마무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경기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정책 금리를 다시 인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경기침체 예방 목적으로 금리 인하를 했다고 해서 이를 ‘예방적 금리 인하(preventive cut)’라 한다. 1984년과 1995년은 마지막 금리 인상 시점으로부터 5개월이, 1967년은 15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예방적 인하로 경기침체를 방어할 수 있던 건 아니었다. 두 가지 사항이 추가로 전제돼야 한다. 첫째는 금리 인상 시작 시점에 미국 내수가 강한 성장을 보였다는 것이다. 당시 경기선행지수 증가율이 전년 대비 10%를 넘는 시점에서 금리 인상이 시작됐고, 금리 인상과 함께 경기가 하강했다. 둘째는 물가안정이다. 예방적 금리 인하가 결정됐던 당시를 보면, 1967년과 1984년은 물가 상승세가 빨라지다가 둔화했던 시기였다. 1995년에는 물가 압력이 높지 않았다. 대조적인 사례는 1969년이다. 당시는 금리 인상과 더불어 경기하강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빨라지던 탓에, 연준은 고금리를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기는 침체로 진입하게 됐다. 

이를 현재에 대입해 보자. 금리 인상이 최초로 단행됐던 올해 3월 경기선행지수는 전년 대비 6.1% 높은 상태에 있다. 과거 인상 착수 시점에 비해서는 낮지만, 노동시장 내 구인 건수가 실업자 수 대비 1.94배에 달해 내수 체력은 확보돼 있는 상태로 판단된다. 물가 상승률이 관건이나, 금리 인상과 공급 측 압력이 점진적으로 완화해 올해 2분기를 정점으로 완만히 둔화하는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예방적 금리 인하를 통해 침체를 방어할 수 있는가’라는 관점에서의 조건은 대체로 충족된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추가적인 의문이 드는 건, 과연 ‘연준이 침체를 의도적으로 유발했는가’이다. 침체가 발생한 이후 금리를 빠르게 인하했다는 점에서 의도된 침체일 가능성은 작다. 오히려 연준이 의도하지 않은 실책일 공산이 크다. 전문가 집단으로 구성된 연준의 빈번한 실책은 통화정책 효과의 불확실성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한다.


과거보다 똑똑한 데이터 가진 연준

우리는 연준이 데이터에 의존(data dependent)한 의사결정을 한다고 알고 있다. 여기에서의 데이터란, 연준 통화정책회의(FOMC) 직전까지 입수된 정보의 집합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과거 데이터이며, 연준은 이에 기반해 경제가 높은 금리 수준을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금리를 올린다. 그런데 금리 인상 이후 가계와 기업의 의사결정은 높아진 금리를 보면서 다시 이뤄진다. 소비와 투자를 추가로 할지 여부에 관한 의사결정 시차와 그 의사결정 값이 데이터로 모아져 연준에 전달되는 때까지는 추가적인 시차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만약 연준의 당초 의도와 달리 경제활동이 얼어붙고 있다면 연준이 이를 알아차리는 데는 수개월에서 수 분기가 소요될 수 있다. 즉, 연준이 경기침체 위험을 파악했을 때는 손을 쓰고 싶어도 이미 늦어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침체를 막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연준이 그들의 통화정책 효과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지에 달려 있다. 과거에는 어려웠지만, 현재 시점에 조속한 판단이 가능한 이유는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보편화된 ‘잦은 빈도로 발표되는 데이터(high-frequency data)’에 있다. 뉴욕 연방은행이 실업수당 청구 건수, 연방정부 세금 원천징수, 매일 전화로 조사되는 소비심리, 임시·계약 근로 현황 등을 기반으로 집계하는 주간 경제활동 지수(Weekly Economic Index)가 대표적이다. 

이 지표에 주목하는 이유는 2020년 3월 금리 인하 경험 때문이다. 2020년 2월까지의 경제지표는 양호했기에 전통적인 과거 데이터에 의존한 연준 결정이었다면 그날의 금리 인하는 설명될 수 없다. 그런데 3월 첫째 주 주간 경제활동 지수가 크게 악화했고, 이는 연준의 기민한 대응을 불러왔다. 이를 2019년 금리 인하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당시 미국 경제는 무역분쟁으로 제조업 부진이 심화하는 등 경기 악화 일로에 있었다. 7월 주간 경제활동 지수가 연준의 잠재성장률 전망치 1.8%를 하회하고 장단기 금리 역전이 발생하자 연준이 기민한 대응에 나선 것이다.

이런 장치가 마련된 한, 경기하강이 나타날지언정 연준이 경기 급랭 징후를 뒤늦게 알아차려 침체를 유발하는 실수는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역사적으로는 낮은 확률이지만 경기침체라는 대가를 치르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안정화할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다. 연준이 과거보다 똑똑한 데이터를 손에 쥐고 있음을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