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 유통, 택배, 병원용 자재 납품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 중인 아마존이 금융 상품 개발에 나서면서 관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식품 유통, 택배, 병원용 자재 납품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 중인 아마존이 금융 상품 개발에 나서면서 관련 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아마존이 금융 서비스업에 진출하면 미국의 가장 큰 은행인 JP모건과 뱅크오브아메리카를 합친 가치를 능가할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올해 3월 아마존이 금융 상품 개발을 준비 중이라는 내용을 보도하면서 아마존의 미래 가치를 전망한 말이다. WSJ는 소식통을 인용해 아마존이 자사 고객에게 온라인 쇼핑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은행 계좌 등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JP모건, 캐피털원 등과 초기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아마존의 구상은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가 없는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출생자)를 겨냥해 신용카드 없이도 쇼핑할 수 있는 새로운 결제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현재 미국 가구의 25%가 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지 않다.

협상은 초기 단계로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관련 업계는 아마존이 추진 중인 은행 계좌 서비스가 현실화하면 대출, 모기지, 자산관리, 보험 등으로 금융 서비스 범위를 확장하는 것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아마존은 자체 계좌를 개설함으로써 기존에 비자·마스터카드 등 신용카드 회사에 지급해온 결제 수수료를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존이 신용카드 회사에 지급하는 수수료는 연간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 수준이다.

아마존은 지난해 4월 ‘아마존 캐시(Amazon Cash)’로 미국 내 결제 시스템 변화를 꾀한 바 있다. 아마존 캐시는 오프라인에서 금액을 충전해 아마존 온라인 웹사이트에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디지털 화폐다. 웹사이트에서 아마존 캐시를 신청해 바코드를 받으면, 그 바코드를 오프라인 매장에 보여주고 최소 15달러(약 1만7000원)에서 최대 500달러(약 56만원)까지 충전할 수 있다. 아마존 캐시가 있으면 신용카드나 직불카드가 없어도 아마존의 상품을 살 수 있다.

식품 유통, 택배, 병원용 자재 납품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인 아마존이 이제는 금융 상품 개발까지 추진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련 업계는 긴장하는 모양새다. 관련 전문가는 금융 상품 개발이 아마존이 금융업에 진출하는 것과는 무관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미국 금융 업계에는 중국 IT 회사인 알리바바가 알리페이로 기존 금융업의 영역을 잠식해가고 있는 현상이 미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베인앤드컴퍼니는 “아마존이 금융업에 진출할 경우 대규모 플랫폼과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향후 5년 안에 7000만 명 이상의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미국 3위 은행인 웰스파고에 버금가는 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베인앤드컴퍼니가 지난 9월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위기감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베인앤드컴퍼니가 미국인 2만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소비자들이 은행 계좌 개설을 검토 중인 아마존에 준 순추천 지수(Net Promoter Score)는 47점으로 지역은행 평균 점수인 31점이나 전국 단위 은행의 평균 점수 18점을 훨씬 웃돌았다. 기존 금융권에 대한 신뢰도보다 새롭게 금융 서비스 분야를 개발 중인 아마존에 대한 신뢰도가 훨씬 높게 나타난 것이다. 순추천 지수는 베인앤드컴퍼니가 개발한 충성도 지표로 숫자가 높을수록 해당 기업을 지인이나 가족에게 추천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조사 결과는 아마존이 그동안 구축해온 탄탄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한다. 베인앤드컴퍼니가 올해 초 미국 및 영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예치금 관리에 대한 신뢰도 측면에서 아마존이 기존 은행과 거의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회원 65% 아마존 계좌 이용할 것”

아마존 유료 회원(아마존 프라임 회원)이 아마존의 잠재적인 금융 서비스 이용 대상자가 될 수 있다는 점도 기존 금융권엔 위협 요인이다. 미국 인구 3억2600만 명 중 43%인 1억4000만명가량이 아마존 프라임 회원이다. 베인앤드컴퍼니 조사 결과, 아마존 프라임 회원의 65%가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무료 온라인 은행 계좌를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프라임 회원이 아닌 아마존 고객 중 이용 의사를 밝힌 비율은 43%, 아마존을 이용해본 적 없는 소비자 중 이용 의사를 밝힌 비율은 37%였다. 아마존 프라임 회원제는 갱신율이 90% 이상일 정도로 만족도가 높다. 업계는 아마존이 탄탄한 회원 충성도를 기반으로 금융 상품 이용률을 높여나갈 것으로 본다.

또한 아마존이 지난해 인수한 홀푸드마켓도 아마존의 금융 서비스 확장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베인앤드컴퍼니는 보고서에서 “아마존은 홀푸드마켓 네트워크를 이용해 오프라인 지점을 운영할 가능성이 있다”며 “오프라인 지점에 은행자동화기(ATM) 등이 배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만약 밀레니얼 세대가 아마존의 은행 계좌를 선택한다면 신규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존 은행의 위기는 더욱 심화될 수 있다. 문영배 디지털금융연구소장은 “중국의 IT 대기업인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 알리페이 선불 계좌에 수억 명의 고객이 가입돼 있을 정도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며 “아마존의 금융업 진출이 현실화하면 기존 은행권에 큰 위협이 될 것이고, 아주 무서운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Plus Point

전통 은행, 서비스 간소화와 디지털화로 고객 확보해야

베인앤드컴퍼니의 설문 조사에서 아마존은 지역은행, 전국 단위 은행의 순추천 지수는 능가했지만 미국 종합 금융 서비스 회사인 USAA를 뛰어넘진 못했다. USAA는 1922년 고위험군으로 간주돼 자동차보험 가입이 어려웠던 군인을 대상으로 자동차보험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후 고객을 전·현직 군인과 직계 가족으로 한정하고 이들에게 은행·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 금융 서비스 회사로 컸다. 군대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고 집·자동차와 관련된 대출·보험 상품, 서비스를 제공해 1200만 명이 넘는 고객을 확보했다.

고객 충성도 측면에서 오랫동안 선두를 지키고 있는 USAA의 순추천 지수는 79점으로, 아마존의 47점보다 훨씬 높다. 상품군 및 가입 절차 등을 간소화하고 웹 연동 앱 서비스 등을 제공해 고객 만족도를 높였다. 앱 기반 은행 서비스를 선호하며 디지털 활용 능력이 뛰어난 고객층, 보다 경쟁력 있는 금리 및 수수료를 원하는 고객층을 인터넷 전문은행을 통해 공략해 성공했다.

하지만 USAA도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다. 아마존, 알리바바와 같은 IT 업체는 이미 우수한 고객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고객의 신뢰 기반을 확보했고, 결제 수단 출시 등 기존 금융권에 위협이 될 만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다. 아마존은 은행 서비스 사업에 진출함으로써 수수료 등으로 지출하는 비용을 절감하는 것은 물론 고객의 재정 지출에 관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미국 내 고액 자산가를 프라임 회원으로 이미 확보하고 있는 아마존의 입장에서 은행 계좌는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서비스를 위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아마존 회원의 자산 총합은 미국 내 가계 자산의 75%를, 프라임 회원의 자산 총합은 45%를 차지한다. 기존 금융 업체에 남겨진 숙제는 지점 중심 영업으로 낭비되는 악성 비용을 줄이고 고객 서비스를 간소화·디지털화해 아마존 등 IT 업체에 대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