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은행 영업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의 은행 영업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주부 최모(65)씨는 2015년 9월 유럽 여행을 위해 유로화로 환전할 돈 100만원을 자신 명의의 타 은행 계좌로 송금했다. 그런데 실수로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해 엉뚱한 사람에게 돈이 입금됐다. 공교롭게 수취인은 미국인으로 한국에서 잠시 영어교사로 일하다 출국한 사람이었다. 최씨가 법원에 부당이득금반환신청을 접수했지만 수취인의 종적을 알 수 없는 상태여서 반환신청이 진행될 수가 없었다. 결국 최씨는 아직도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예금보험공사 본사에는 하루에도 몇 통씩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금융위원회)와 정치권, 예금보험공사가 2019년부터는 착오로 잘못 보낸 돈의 80%까지는 바로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면서, 최씨처럼 돈을 잘못 보낸 후 되돌려 받지 못한 사람들이 언제쯤 정부의 계획이 시행되는지를 묻고 있다. 정부가 내놓은 착오송금 개선안은 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정부출연금(세금)과 은행 출연금으로 기금을 모아 착오송금자의 착오송금(채권)을 매입하고 이를 추후에 소송 등의 방법으로 수취인에게 환수하는 방법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착오송금 돌려주기 정책의 진행 상황과 문제점을 알아봤다.


1│법 개정에 발목 잡힌 제도개선

정부와 정치권이 착오송금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구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지난해 9월. 당시 정부는 연간 약 5만2000건(1115억원·2017년 은행권 기준)의 착오송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며 온라인과 모바일 뱅킹이 증가하면서 이런 피해가 계속 늘고 있다고 했다. 이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착오송금을 예금보험공사가 돌려주고 추후에 수취인을 상대로 소송 등을 통해 회수하겠다는 개선안을 내놓았다.

개선안에 따르면 예금보험공사는 기금(정부·은행 출연금)으로 착오송금을 80%의 가격으로 송금자에게 매입한다. 예를 들어 500만원을 잘못 보냈다면 이 착오송금을 400만원까지 되돌려 주겠다는 것이다. 송금자 입장에서는 착오송금액의 80%를 돌려받는 셈이다. 단 착오송금을 한 지 1년 이내이고 송금액이 최소 5만원, 최대 1000만원까지만 구제신청을 받아준다.

정부는 이 정책을 2019년부터 시행하겠다고 했고 이를 위해 예금보험공사가 착오송금구제기금을 정부와 은행에서 출연받기 위해 예금자보호법도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2019년부터 착오송금을 바로 돌려주겠다던 정부와 정치권이 법 개정안을 발의(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한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9월에 시스템 개선을 약속했지만 3개월간 아무런 후속작업 없이 시간을 끌다 해가 바뀌기 직전에 법 개정안을 내놓은 셈이다. 법이 2019년에 통과돼도 최소 6개월 정도 준비과정을 거쳐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들이 착오송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시기는 빨라야 2020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법안 개정이 늦어진 이유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여야 의원들의 이견(異見)이 없는 민생법안인데 법안을 제출할 때 정부와 국회의원들이 함께 꼼꼼하게 법안 문구를 살펴보다 보니 발의가 좀 늦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정부기관인 예금보험공사가 착오송금을 돌려주는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이견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예금보험공사가 왜 착오송금 업무까지 해야 하는지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수”라고 했다.


2│세금으로 채우는 구제계정

이렇게 법안 발의가 늦어지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있는 이유는 예금보험공사의 구제기금에 세금이 투입되기 때문이다.

구제기금을 설립하는 법안에는 예금보험공사가 ‘착오송금 구제계정’을 신설하고 이 계정에서 착오송금된 돈을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해놨다. 문제는 착오송금 구제계정을 위한 기금을 세금(정부 출연금)과 은행 등 금융회사의 출연금에서 충당하도록 한 데 있다. 개인의 실수인 착오송금의 피해를 전 국민의 세금과 대출자들의 이자로 거둔 은행 돈으로 보상해주겠다는 것이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은행들이 수취인에게 적극적으로 알려 돈을 돌려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과정이 모두 생략된 채 법을 새로 만들어 세금과 은행 출연금으로 기금을 만들어 돌려주겠다는 것은 법의 남발”이라고 했다.

법안에서 착오송금 구제를 위해 출연금을 내야 하는 곳으로 지목된 은행들도 당혹스럽다. 은행연합회 관계자는 “아직 은행들이 돈을 내야 한다는 정부의 입장만을 알 뿐 얼마나 돈을 내야 할지에 대해서는 전혀 들은 것이 없는 상태”라고 했다. 돈을 내야 할 주체인 은행들에 출연 규모조차 알려주지 않은 채 법안이 발의된 셈이다.


3│채권 회수도 쉽지 않을 전망

정부가 추진하는 착오송금 구제안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세금과 은행 돈을 거둬 송금인에게 돌려준 후 수취인에게 돈을 회수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연락이 닿지 않는 수취인이거나 수취인의 계좌가 이미 다른 채권자에 의해 가압류당한 계좌일 경우 등 소송으로도 착오송금을 되찾아오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송금인과 수취인이 짜고 돈을 보낸 후에 착오송금을 주장하는 경우 예금보험공사가 이를 사전에 알기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부가 착오송금을 구제하기 위해 내세우는 논리는 착오송금을 ‘부채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일종의 채권)’로 보고 이를 송금자에게 사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주장이다. 또 개인의 실수인 착오송금을 세금으로 지원한 후 회수 가능성이 낮은 소송을 하겠다는 것도 비판의 여지가 많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착오송금을 채권으로 보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데 이 채권을 일반 채권처럼 평가해서 80%의 가격으로 매입한다는 것은 더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착오송금채권의 적당한 매입가격 비율을 정할 수 있는 전문가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인의 실수로 생긴 사적인 문제를 정부가 나서서 입법절차를 거쳐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정부가 개인의 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하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과도한 영합주의(포퓰리즘)”라고 했다.


Plus Point

착오송금 되찾는 소송법

만약 거액의 돈을 잘못 보낸 경우라면 정부가 법을 개정하기 전에라도 소송을 통해 돈을 되찾을 수 있다. 실수로 돈이 잘못 들어오면 수취인은 법적(민법)으로 부당이득(잘못 받은 돈)에 대한 반환의무가 생긴다. 반환하지 않을 경우 송금인은 부당이득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소송은 수취인이 착오송금이 들어왔다는 것을 안 시점부터 10년 이내(소멸시효)에 제기해야 한다. 만약 수취인이 잘못 들어온 돈인 줄 알면서도 이를 써버릴 경우에는 형사적으로 횡령죄(2010년 12월 대법원판결)가 성립하기 때문에 형사소송도 진행할 수 있다. 다만 1000만원 이하의 소액을 잘못 보낸 경우라면 변호사비 등 소송비용이 더 들어갈 수 있고 수취인의 소재를 파악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소송 자체를 진행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