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려묘 주인이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와 대화하고 있다.
한 반려묘 주인이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와 대화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에 사는 직장인 김모(41)씨는 1월 말 기르던 고양이 몸에서 본인의 새끼손톱보다 작은 종기를 발견하고 집 근처 고양이 전문 A동물병원(구로구 소재)에서 상담을 받았다. 그는 의사로부터 고양이가 유방암 초기 증상을 보인다는 진단을 받고 즉시 종양 제거 수술을 맡긴 후 5일간 고양이를 입원시켰다. 김씨는 이후 2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청구 금액을 보고 놀랐다. 동물병원은 표준 진료비 기준이 없어 사실상 ‘부르는 게 값’인 데다 사람과 달리 반려동물은 공적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동물을 위한 사적의료보험인 펫보험에도 따로 가입하지 않았다. A동물병원 관계자는 “고객 중 고양이 펫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로 아직은 인식이 부족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반려동물 보유 가구가 증가하면서 펫보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 유일하게 고양이 펫보험을 판매하고 있는 롯데손해보험이 시장에 매물로 나오면서 고양이 펫보험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손해보험사들은 제도상 미비를 이유로 고양이 펫보험 출시를 꺼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동물병원 표준 진료비 체계를 마련하고, 반려동물 등록제 실효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해보험협회 집계에 따르면 2017년 말 현재 국내 전체 가구의 28.1%인 593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다. 반려동물 보유 가구 비중은 2012년 말 17.9%에서 2015년 말 21.8%로 커지는 추세다. 이런 추세라면 세 가구 중 한 가구꼴로 반려동물을 키우게 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손해보험사의 펫보험 계약 건수도 2015년 1826건에서 2017년 2638건으로 2년 새 44.5% 증가했다. 이 같은 현상은 반려동물이 ‘또 하나의 가족’으로 자리 잡는 사회적 분위기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펫보험’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반려견만 가입할 수 있는 펫보험이 대부분이다. 반려묘가 가입할 수 있는 펫보험을 판매하는 손보사는 롯데손보가 유일하다. 롯데손보는 지난해 12월 ‘마이펫보험’ 상품 개정을 통해 신규 담보를 추가했다. 장례비용 담보를 신설해 반려동물이 사망하면 가입 금액을 지급하고, 배상책임손해 담보를 신설해 반려동물이 타인의 신체 또는 타인 소유의 반려동물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실제 부담한 진료비를 지급한다. 이 보험은 ‘수술입원형’ 상품 가입 시 수술 1회당 최고 150만원, 입원 1일당 최고 10만원까지 보장하며, ‘종합형’ 상품 가입 시 ‘수술입원형’ 보장에 더해 통원 1일당 최고 10만원까지 보장한다. 고양이에 대한 보험료는 수술입원형 기준 1세 이하는 연 9만원, 5세 이하는 연 19만원 수준이다. 이 보험은 반려견의 경우 사진과 동물등록증 제출 시 가입이 가능하며 반려묘의 경우 별도의 등록증과 진단서 없이 사진 제출만으로도 가입할 수 있다. 반려묘는 정부의 동물등록제가 시범 운영되는 중이라는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문제는 롯데그룹이 지난해 말 롯데손보와 롯데카드 등 금융계열사를 매각한다는 방침을 밝혔다는 사실이다. 이미 올해 1월 30일 마감한 롯데손보 예비입찰에 사모펀드 MBK파트너스 등이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고양이 펫보험의 존치 여부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관련법에 따라 펫보험을 포함한 모든 보험 계약은 회사가 매각돼도 회사를 인수하는 주체에 전부 이전되기는 한다. 펫보험은 자동차보험처럼 주로 1년 단위로 계약하는 상품이다.

그러나 향후 롯데손보를 인수한 회사가 고양이 펫보험을 계속 판매할 것인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손보업계의 관측이다. 한 손보업계 고위 관계자는 “인수 주체가 상품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타사에 인수된 후 판매 수당을 없애는 방식으로 사실상 고양이 펫보험 판매를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대해상 등 이미 반려견 펫보험을 판매 중인 손보사들은 반려묘 펫보험 시장에 대한 진출 의사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보험사들이 고양이 펫보험을 기피하는 이유는 미등록 반려견에 비해 미등록 반려묘가 압도적으로 많은 탓에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 발생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은 사람이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생김새가 비슷한 경우가 많다. 펫보험에 가입하고 미등록 반려동물 여러 마리를 진료하거나 동물병원이 보험금을 중복 청구할 가능성이 있다. 대형 손보사 관계자들은 “도덕적 해이에 따른 보험금 누수 가능성이 커 반려묘 보험 출시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손보업계에서는 동물병원마다 제각각인 진료비 표준화, 미등록 반려동물 문제 해결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손해율(보험사가 고객으로부터 받은 보험료 대비 보험사가 고객에게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 상승으로 펫보험 상품 판매를 중단했던 과거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펫보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 이민아 기자
반려동물을 위한 펫보험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진 이민아 기자

반려동물 등록제 10년째 흐지부지

전문가들은 펫보험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해 우선 정부가 동물병원에 대한 표준 진료수가(진료비)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당장 동물병원의 반발로 ‘표준 진료수가제’ 도입이 어렵다면 동물병원의 주요 진료행위 비용을 동물병원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는 ‘진료수가 공시제도’라도 의무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료수가 공시제도란 대략 어떤 질병에는 얼마의 진료비를 받는지를 동물병원이 고객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 손보 업계 관계자는 “진료비 표준화나 공시제도 도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펫보험 상품을 제대로 설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정부가 반려동물 등록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펫보험은 2008년 정부의 반려동물 등록제 도입으로 확대되는 듯했으나 실제 등록이 거의 이뤄지지 않으면서 대부분의 손보사가 펫보험에서 등을 돌렸던 바 있다. 등록제가 실효성을 잃어 똑같은 종류의 반려동물 여러 마리를 키우는 주인이 의사나 보험사가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어려운 점을 악용해 한 마리만 보험에 들고 나머지 동물들은 하나의 보험으로 치료받는 경우가 적지 않은 실정이다. 주인들이 펫보험 동물 가입 제한 연령(5~7세 이하)에 맞추기 위해 반려동물 나이를 실제보다 낮춰 가입하는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보험사들이 미등록이 대부분인 고양이에 대한 보험 도입을 꺼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손보업계는 반려동물 등록제의 실효성을 강화하기 위해 7㎜ 크기의 내장형 전자칩 삽입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손보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존 인식표 등에 비해 동물 보호 및 유기·유실동물 방지에 가장 효과적인 내장형 전자칩으로 의무 등록제 방식을 일원화하고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표준 진료수가제를 도입하거나 반려동물 몸에 내장칩을 심는 게 동물병원과 반려동물 주인의 반발로 어렵다면, 손보사들이 동물병원이나 펫숍과 협업, 보장 범위와 가격 구조 차별화, 펫푸드 등 연관 산업과 제휴 등 다양한 접근 전략을 통해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