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 라인 사장(왼쪽)과 오카베 도시쓰구(岡部俊胤) 미즈호 파이낸셜그룹 부사장이 라인과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의 합작 은행 설립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 라인 사장(왼쪽)과 오카베 도시쓰구(岡部俊胤) 미즈호 파이낸셜그룹 부사장이 라인과 미즈호 파이낸셜그룹의 합작 은행 설립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1월 23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대회의실에서는 금융권 안팎의 인사 약 140명이 모여 금융 당국의 발표에 귀를 기울였다. 이날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인터넷전문은행 인가 심사 설명회’를 열고 향후 일정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는 주요 시중은행을 비롯한 금융사와 인터파크, 다우기술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등 55개 업체 관계자가 참석했다. 그러나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 유력 후보로 손꼽혔던 네이버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네이버 관계자는 ‘이코노미조선’과 통화에서 “한국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네이버의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 큰 관심을 보였던 금융권의 낙담한 기색이 엿보인다. 앞서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에 이은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에 도전장을 내려던 금융사들은 네이버에 물밑에서 ‘러브콜’을 보냈다. 시중은행 등 금융사가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ICT 기업과 손잡고 컨소시엄을 구성해야 하는데, 네이버와 다른 ICT 기업의 수준 차이가 크다고 금융사들은 판단하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9월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 제한) 완화 특례법(이하 특례법)’은 입법 예고 등을 거쳐 올해 1월 17일 시행됐다. 특례법에선 ICT 자산이 50%를 넘는 ICT 주력 기업(그룹)에 한해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최대 34% 보유할 수 있도록 했다.

한 대형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특례법에 따르면 ICT 비중 기준에 걸려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인터넷전문은행을 할 수 없다”며 “손을 잡을 만한 곳이 네이버밖에 없었는데, 허탈한 상황”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네이버가 발을 빼면서 진통 끝에 국회를 통과한 특례법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네이버는 왜 이런 결정을 했을까.


포인트 1│국내 플랫폼 기반 미약

우선 네이버가 지분 73.68%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자회사 ‘라인’을 통해 일본을 비롯한 해외 메신저 플랫폼 시장에서는 성공을 거뒀지만,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미미한 성과를 거두는 데 그쳤다는 사실을 꼽을 수 있다.

라인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현재 일본·태국·대만·인도네시아 등 4개국의 라인 이용자(한 달에 한 번 이상 접속한 사람 수 기준)는 총 1억6500만 명이다. 라인의 자체 추산에 따르면, 일본·태국·대만에서는 라인이 메신저 플랫폼 시장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국내 메신저 플랫폼 시장에는 압도적인 1위 회사인 카카오가 있다. 카카오는 강력한 메신저 플랫폼을 바탕으로 2017년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를 만들었다. 카카오뱅크는 카카오톡과 연계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카카오 관계자는 “국내 카카오톡 이용자는 현재 약 4300만 명으로 총인구의 83%가량이 이를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라인 관계자는 “국내 라인 이용자 수를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한 관련 업계 관계자는 “메신저 사업자들이 이용자 수를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결국 경쟁사인 카카오에 비해 이용자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라인이 공개를 꺼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인트 2│선발 주자도 수익 못 내

인터넷전문은행 선발 주자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여전히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네이버가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풀이된다. 각사 공시에 따르면 2017년 출범한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누적 순익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카카오뱅크가 1204억원 적자, 케이뱅크가 1676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 은행들은 기존 은행처럼 예대마진(예금이자와 대출이자의 차이에 따라 금융사가 거두는 이익)에 기댄 영업을 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각각 자사 모바일애플리케이션(앱) 개선에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므로 사실상 영업점이 있고(시중은행), 없고(인터넷전문은행)의 차이일 뿐이다. 젊은 세대가 주 타깃인 인터넷전문은행은 장기 성장 가능성은 크지만, 갑자기 많은 이익을 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서영수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으려는 정부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때문에 인터넷전문은행의 주력 상품인 신용대출 확대가 어려워졌다”며 “부동산 시장 침체로 올해 신규 대출 수요도 크게 둔화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DSR이란 개인이 진 모든 부채의 원리금 상환 능력을 따지는 대출 규제다. 담보만 있으면 그만큼 대출이 가능했던 과거와 달리, 소득이 부족하면 대출도 차단된다.

네이버 관계자는 “(인터넷전문은행 진출 시) 네이버만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한 끝에 불참을 결정했다”고 했다.


포인트 3│높은 은산분리 규제 장벽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한국의 높은 규제 장벽이 거론된다. 라인은 지난해 말부터 일본·대만·태국에서는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라인은 지난해 11월 27일 자회사 ‘라인 파이낸셜’을 통해 일본 미즈호 파이낸셜그룹과 ‘라인 뱅크 설립 준비 주식회사’ 설립에 합의했다. 라인은 일본 내 이용자가 7800만 명에 달하는 ‘국민 메신저’ 라인 이용자 기반에 미즈호그룹의 은행 업무 노하우를 접목해 사용하기 쉬운 ‘스마트폰 은행’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라인은 다른 자회사 ‘라인 파이낸셜 타이완’을 통해 대만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라인은 지난해 11월 20일 “대만 현지의 두 통신사가 라인 파이낸셜 타이완이 설립을 추진 중인 인터넷전문은행 컨소시엄에 합류했다”고 발표했다. 두 통신사는 ‘파 이지톤 텔레커뮤니케이션스’와 ‘타이완 모바일’로 앞서 컨소시엄에 참여한 ‘타이베이 푸본 커머셜 은행’ ‘CTBC 은행’ ‘타이완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타이완 유니언은행’ 등 4개 은행과 한배를 탔다. 향후 설립될 인터넷전문은행은 라인 파이낸셜 타이완이 지분 49.9%를 보유해 최대주주가 될 예정이다. 4개 은행은 지분 40.1%를 보유하고 2개 통신사는 지분 10%를 각각 보유하게 된다. 라인은 지난해 12월 태국에서도 현지 은행과 협력해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작업에 착수했다.

이처럼 네이버가 국내와 해외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진출에 대한 극명한 입장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한국의 은산분리 규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의 경우 특례법에 따라 ICT 기업이 인터넷전문은행 지분을 34%까지만 보유할 수 있다. 이는 물론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를 사실상 금지했던 기존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한 것이기는 하지만, ICT 기업이 뜻대로 사업하기엔 부족하다. 실제로 일본에서 라인 파이낸셜과 미즈호는 각각 51%와 49%의 지분을 가지고 자본금 20억엔(약 204억원)의 합작 회사를 만들 예정이다. 복잡한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것에 비해 양사의 이견만 조율하면 보다 자유롭게 사업을 할 수 있는 셈이다.

한 통신기술(IT)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한국에서 여러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아무래도 독자적으로 의사 결정하고 사업을 진행하는 데 걸림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일본은 지난 2005년 은산분리 규제를 과감히 풀어 산업자본이 은행 지분을 100%를 소유할 수 있게 했다”며 “이후 일본 인터넷전문은행 산업 규모는 급성장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금융 당국은 올해 3월 예비인가 신청을 받고 5월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내주겠다는 방침이지만, 획기적인 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는 한 ICT 업계의 참여가 저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