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전 한화증권 투자분석 팀장, ‘주식의 시대,투자의 자세’ 저자

“한양에서 10리 안에 살아라.” 1810년 다산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다. 조선의 한양이나 지금의 서울이나 비슷하다. 사람이 몰리면서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비싸졌다. 풀린 돈이 주택 시장으로 유입되면서 2020년과 2021년 중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각각 13.1%, 16.4%였다. 직전 과거 5년의 연평균 가격 상승률이 6.3%였던 것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이다. 증시도 좋았지만, 부동산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풀린 돈이 회수되자 증시는 흔들리고 주택 거래도 줄고 있다. 최근에 거래된 아파트 가격이 직전에 비해 수억원씩 하락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주식이든 주택이든 위험 회피 심리가 만연하다. 자산 시장 냉각의 출발점이었던 가파른 금리 상승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주택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현시점에서 무리하게 빚을 내어 집을 사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또 올해 들어서는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감으로 금리 상승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주택 매수 심리가 크게 위축됐다. 게다가 건축 자재와 인건비 상승, 높아진 전세 자금 대출 금리로 인해 주택 시장의 수급 여건이 크게 악화했다.


부동산 시장 위축은 금융 시장에도 영향

부동산 시장은 경기와 금융 시장 환경에 큰 영향을 준다. 건설 경기는 자체적인 고용유발효과가 크고 주택 경기는 가계 소비 여건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경기가 침체할 경우 건설 투자를 늘리는 방식으로 경기 회복을 도모해왔다. 일반적으로 주택 가격이 상승하고 거래가 활발해지면 이사, 인테리어 등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업자의 수익이 늘어날 뿐 아니라 가계 소비가 증가하는 ‘자산 효과’가 있다. 반면 요즘처럼 부동산 경기가 냉각되면 건설 관련 사업이 일차적으로 타격을 받고 부(負)의 자산효과가 발생하면서 가계소비가 위축된다. 

부동산 경기와 건설 업종은 직접 연결돼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금융 당국이 대폭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정책을 펼치기가 부담스러운 이유는 한국의 높은 가계부채 때문이다. 지난 3월 말 기준 국내 총가계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90%에 달한다. 최근 3년간 가계부채 규모는 320조원(21%)이나 급증했다. 저금리 상황에서 대규모 유동성이 자산 시장으로 유입되고, 개인은 ‘영끌’과 ‘빚투’를 통해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늘려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 상황은 정반대가 됐다. 금리는 급등하고 자산 가격은 조정 양상을 보이면서 확대된 부채 부담이 위협 요인이 됐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에 이어 한국은행의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이 예고되어 있는데, 만약 향후 가계대출 금리가 1%포인트 추가로 상승한다면 가계 차주의 이자 부담은 30% 이상 증가하게 된다. 그간 누적된 부채 부담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는 부동산 가격 조정을 감내할 수 없고, 결국 부동산 경착륙이 증시 및 자산 시장을 시스템적 위기에 봉착시킬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부채 디플레이션’ 혹은 ‘대차대조표 침체’란 용어가 재소환됐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증시에 1차 충격을 주었고, 이제 부동산으로 인한 부채 위기가 2차 증시 충격으로 연결될 거란 위기론이 팽배하다. 이는 은행, 증권 등 금융 회사 부실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는 종말론이다. 


그렇다고 우려에 잠식당하지는 말자

 

다만 과도한 우려는 큰 문제다. 민간 부채가 높은 상황에서 금융권의 신용위기가 출현하느냐 여부는 금융 회사들이 얼마나 위기에 대응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금리가 상승하고 부채 부담이 증가한다고 해서 당장 금융권 부실이 확대되고 금융 시스템 안정성이 위협받는 것은 아니다. 금융기관은 충격과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은행권의 자기자본비율(BIS비율) 등 자본력과 안전장치를 확보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냉각의 실질적인 위험도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보다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일례로 현재 은행권의 평균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40%대로 낮은 상황이며, LTV 60% 이상의 대출 비중은 10%이고, LTV 70% 이상의 비중은 1%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동산 가격이 30% 조정을 받더라도 은행권 전체 주택담보대출 가운데 부실이 발생하는 비율은 1%밖에 되지 않는다. 제2금융권(상호금융)의 경우 LTV 70% 이상 대출 비중이 15%로 은행에 비해 높지만, 아직 본격적인 주택 가격 하락이 나타나고 있지 않았고, 30% 이상의 주택 가격 조정이 나타난 시기는 과거에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제외하면 없었다. 따라서 최근 부동산 시장 조정을 금융권 부실 혹은 금융 시장 전반의 우려 요인으로 과도하게 확대 해석할 필요는 없다.

물론 부동산 시장 침체가 이어질 경우 금융기관의 수익 확보에 부정적 영향은 불가피하다. 은행권의 가계대출은 70%가량이 주택담보대출로 구성돼 있어 주택 경기는 은행의 매출과 직결된다. 게다가 증권사 및 보험사도 최근 수년간 부동산 시장 호황을 고수익 확보 기회로 활용하면서 대출, 지분 투자, 펀드 등 다양한 형태로 국내외 부동산 노출액이 늘었다. 최근 대구 등 국내 일부 지역에서 미분양이 증가하고 해외 부동산 투자 물건에서 부실 우려가 발생하는 등 금융권 전반의 부동산 투자와 관련한 위험 관리 필요성이 높아진 상태다. 하지만 이 또한 우려보다는 세부적인 위험 요소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가운데 주거용 부동산은 높아진 분양가로 일부 미분양이 발생했지만 이는 일부 지역에 국한됐다. 과거와 비교하면 아직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LTV에 여유가 있는 데다 분양 대금 관련 중도금대출에는 정부가 보증을 서고 있어 금융권의 최종 손실 인식 가능성은 작다.

오피스텔과 산업단지(물류센터, 지식산업센터) 등 금리와 경기 변화에 민감한 상업용 부동산은 부지 개발 단계부터 분양 및 입주까지 긴 프로젝트 과정에 거쳐 금융권과 기관투자자의 자금이 투입되기 때문에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로 칭한다. 최근 금리가 급등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부동산 PF의 사업성이 저하됨에 따라 신규 사업이 중단되거나 기존 PF에서 부실 발생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부동산 PF에 참여한 금융기관이 실제로 대규모 손실을 인식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부동산 PF의 사업성은 결국 분양률에 의존하게 되는데, 투자자로 참여한 금융기관은 대출금을 안전하게 상환받을 수 있는 최소한의 분양률을 따로 설정하여 PF 참여 여부를 결정한다. 통상 60~ 70%를 넘지 않는 수준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일정 부분 미분양이 발생한다고 해서 금융기관이 무조건 손실을 보는 구조가 아니다. 부동산 PF에 가장 적극적인 위험을 인수하는 주체가 증권사로 알려져 있는데, 증권사들 역시 일시적인 유동성만 제공하거나 충분한 담보 가치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만약 부동산 시장에 큰 충격이 와서 주택 가격이 급격히 하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더라도 과거 금융 위기 시기같이 금융 시스템이 무너질 가능성은 작다. 따라서 최근 부정적인 부동산 시장 환경을 주식 시장의 커다란 악재로 해석한다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주식처럼 부동산도 당분간 조정을 이어 갈 것이다. 하지만 그 폭이 부채 위기를 불러올 만큼 깊어지진 않을 것이다. 특히 하반기 들어 국내외 기준금리 상승 흐름은 이어지고 있지만 시장금리(국채금리)는 조정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상반기 같은 급격한 금리 변동성만 축소된다면 향후 부동산과 주식 시장 모두 우려가 완화될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투기가 아닌 투자를 원한다면, 두 자산은 유사하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좋은 주식이나 입지 좋은 부동산은 주변 상황이 악화할 때만 좋은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화폐 가치가 이전 같지 않을 때 화폐 가치 하락을 방어하는 수단만으로도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투자 자산으로서의 매력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