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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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엄여진 쿼드자산운용 PEF운용본부 매니저 연세대 경영학, 전 신영증권 제약· 바이오 애널리스트

 정치권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논란으로 뜨거운 가운데 금융권 분위기는 ‘바상완박(바이오 상장 완전 박탈)’으로 얼어붙었다. 상장에 도전한 바이오 기업이 기술성 평가와 상장 예비 심사에서 줄줄이 낙방하자 시장에서는 바이오 투자 심리가 역대 최악에 이르렀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바이오 기업의 상장 통로였던 ‘기술 특례 상장 제도’가 오는 8월 대대적으로 바뀔 것으로 예정돼 있어 바이오 기업의 상장 가능성을 가늠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올해 상장을 목표로 달려오던 바이오 기업들 일정에도 일제히 제동이 걸렸다. 실제 올 1분기 기준 상장 예비 심사 단계에서 청구를 철회한 곳은 파인메딕스와 한국의약연구소, 퓨쳐메디신 등 세 곳에 이른다. ‘유니콘 특례상장 1호’로 기대를 모았던 보로노이는 상장 예비 심사 문턱은 넘었지만,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 실패해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오는 8월에 기술 특례 상장 심사 기준이 깐깐해진다고 예고만 한 상태다. 어떻게 심사 기준이 바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어서 시장은 일단 제도 윤곽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보자는 분위기다. 대입 전형이 바뀌기 전 손놓고 기다리기만 하는 수험생처럼 말이다.

2005년부터 시작된 기술 특례 상장 제도는 상장 요건을 충족시킬 정도의 실적은 나오지 않지만, 기술력이 높은 유망 기업에 자본을 공급하는 취지로 상장을 시켜주는 제도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 동안 기술 특례 상장 기업은 15곳에 불과했으나 2015년 전문기술평가가 대대적으로 개편되고, 2016년 성장성 추천제도가 도입되며 기술 특례 상장 제도는 활성화됐다. 이에 따라 작년까지 기술 특례 상장 제도를 통해 코스닥시장에 입성한 기업이 143곳에 이른다. 이 중에서 93곳이 바이오 기업이었다. 연구개발(R&D) 기간이 길고 매출 발생이 어려운 바이오 사업 특성상 기술 특례 상장 제도는 코스닥시장에 상장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가 돼왔기에, 기술 특례 상장 제도 개편은 바이오 업계의 투자 심리에 직격탄을 가했다.

거래소에 따르면 오는 8월에 예정된 기술 특례 상장 제도의 개선 사항 주요 골자는 표준 전문평가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표준 전문평가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거래소는 연초에 용역 입찰도 진행했다. 바이오, 신약, 진단, 인공지능(AI) 등 업종을 특화해 업종별 평가 기준을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임상전문의와 약학 전문가 풀을 확대하거나 의무적으로 투입해서 심사 전문성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 추측해보면 거래소는 바이오 기업이 개발하고 있는 신약 물질이 실제로 상용화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려고 한다. 아울러 해당 기업의 기술은 어느 정도 가치가 있는지 등에 관해서도 꼼꼼하게 확인하고자 하는 게 제도 개선의 목적으로 보인다. 이런 취지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이처럼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미리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임을 우리는 경험상 이미 알고 있다. 미리 안 될 걸 알면서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자는 없을 것이다. 또는 전문가의 높은 기대치에 비해 허무하게 실패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평가 기준을 아무리 세분화하고 복잡하게 만든다고 하더라도 현재 상태를 보여주는 자료만으로 미래의 성공을 가늠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거래소는 인정해야 한다.


바이오 상장 기업 사태 책임은 어디에

그렇다면 최근 있었던 바이오 상장 기업 일부 사태는 누가 책임져야 하는 것일까. 연초부터 오스템임플란트는 사상 초유의 횡령 사태를 겪었다. 셀트리온은 분식회계 의혹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쳤고, 신라젠은 대표 파이프라인의 임상시험 중단과 전 대표를 비롯한 전직 횡령 배임 혐의로 상장적격성 실질 심사 사유가 발생해 2020년 5월부터 주식 거래가 정지됐다. 이처럼 공시 의무를 소홀히 해서 주가를 조작하거나 경영진의 부도덕한 주식 매도 행태와 관련해서는 미리 알 수 없었다는 이유로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증시를 둘러싼 유관기관의 본연 기능을 생각해보면, 거래소만이 아니라 금융감독원이나 검찰도 책임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식시장에서 위법행위가 있을 때 감독기관과 수사기관에서 전문성이 부족해서 관련 분야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상장 기업 관리에 소홀했던 것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한국증권선물거래소법에 따르면 거래소의 설립 목적은 유가증권의 매매 및 선물 거래의 안정성과 효율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애초에 부실기업을 상장시키면 안 되겠지만 시장 진입 문턱을 높인다고 해서 바이오 분야의 주식시장이 안정되진 않을 것이다.

선진국은 어떨까. 진입은 쉽고 퇴출도 자유롭다. 국내에서는 한 번 상장하면 어지간해서는 퇴출하기 어려운데 선진국을 보면 상장은 쉽게 시켜주되 퇴출 사유가 발생하면 가차 없이 퇴출한다. 부적격 상장 기업이 퇴출당할 수 있으려면 법에 정해져 있는 상장 기업의 책임도 더 엄격해져야 하고 감독 기관도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투자자 보호라는 목적을 생각해보면 사후약방문식으로 부적격 상장 기업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상장 기업을 엄격하게 관리해 불법행위를 미리 막는 것이 우선이다.

국내의 경우 바이오 기업이 증시 투자 심리를 이끄는 성장주 주역으로 각광받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한미약품이 사노피의 기록적인 기술 수출에 성공하며 바이오 기업 투자 열풍이 시작된 것이 2015년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진통을 겪어왔지만 이를 통해 상장 기업도, 투자자도 모두 학습 효과를 겪었다. 그만큼 시장도 성숙하는 과정에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거래소는 완벽한 시장을 만들기 위해 과중한 책임을 스스로 지고 나설 필요가 없다. 주식시장은 관료주의보다는 시장 논리가 주식시장을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바이오 기업 육성 의지와는 반대되는 시장 상황

일부 기업의 잘못된 일탈 행위로 인한 책임을 시장에 돌린다면 바이오산업을 망가뜨릴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은 이런 바이오 투자심리 악화가 단순히 투자 기업이 줄어들고 바이오 기업의 상장이 늦춰지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후폭풍은 3~5년 뒤 바이오 생태계에 닥칠 것이다. 투자 심리 악화는 비상장 기업의 투자 심리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벤처캐피털(VC)에서는 상장을 통한 회수가 까다로운 바이오 기업에 투자를 꺼리게 되고 결국 바이오 벤처기업에 자본 공급이 잘 안 될 것이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창업이나 연구개발에 소극적인 분위기가 형성된다.

오는 5월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바이오산업을 ‘5대 메가 테크’로 꼽으며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러나 증시 분위기는 반대로 가는 형국이다. 장기간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산업은 일관성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연구만 하는 과학자가 3년 뒤 상장 관련 정책까지 연구할 수는 없다. 유난히 금융 관련 정책은 변화무쌍했다. 언제는 사모펀드를 활성화한다고 했다가 사모펀드 사태가 터지자 5년도 안 돼서 사모펀드 자체를 일제히 규제하지 않았는가. 바이오 기업 입장에서는 더욱 막막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금융 정책과 거래소 방침까지도 연구하기에는 과학자들이 할 게 너무 많다. 과학자가 연구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바이오산업 육성책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