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마커스 페이스북 부사장이 7월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AFP 연합
데이비드 마커스 페이스북 부사장이 7월 16일 워싱턴에서 열린 미 금융위원회 청문회에 출석,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AFP 연합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손에 성냥갑을 쥔 것처럼, 페이스북은 집을 몇 번이고 태우고 그걸 학습 경험이라고 부른다.”

7월 16일(현지시각) 열린 미 금융위원회 청문회. 미 상원의원들은 암호화폐(가상화폐) ‘리브라(Libra)’ 개발을 주도한 페이스북의 데이비드 마커스 부사장을 불러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세러드 브라운 민주당 의원은 페이스북의 화폐 발행을 갓난아이의 위험한 장난에 비유하며 맹공격했다.

도대체 ‘리브라’가 뭐길래, 금융 당국부터 정치권까지 경고와 쓴소리,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는 걸까. 확실한 것은 제도권이 금융·통화 시장과 정책을 송두리째 흔들 리브라의 잠재력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리브라의 구조, 비트코인과 차이, 페이스북의 전략을 하나씩 파헤쳐 봤다.


1│수십억 명 사용자를 거느린 글로벌 금융 인프라

6월 18일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크 업체 페이스북이 암호화폐 리브라의 운용 방식과 향후 계획이 담긴 백서를 공개했다. 페이스북은 1년 넘게 암호화폐 사업을 준비했다. 리브라 백서에는 간편 결제 및 송금을 통한 전 세계 금융 인프라 구축이라는 페이스북의 야망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리브라라는 화폐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간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페이스북 사용자는 24억 명, 왓츠앱은 15억 명, 인스타그램은 10억 명에 달한다. 리브라의 잠재적 사용자가 수십억 명인 셈이다. 현재 국제 송금에는 스위프트(SWIFT) 국제금융통신망을 이용하는 수수료 외에도 여러 중개 기관을 거치며 전신료, 중개수수료, 수취수수료 등이 붙는다. 1억원을 해외에 보내려면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 정도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낮은 송금 수수료를 내세운 리브라는 매력적이다.


2│관리자가 분명한 허가형 블록체인…비트코인과 달라

리브라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과 같이 블록체인(분산 장부) 기술을 쓴다. 하지만 누구나 검증 작업에 참여할 수 있는 비허가형 블록체인(퍼블릭 블록체인)인 비트코인과 달리, 리브라는 인증받은 회원사만 운용 시스템을 관리할 수 있는 허가형 블록체인(프라이빗 블록체인)이다. 비트코인은 관리 운영 주체가 없고, 리브라는 뚜렷하다.

페이스북은 리브라의 운영 주체로 스위스에 본사를 둔 비영리 조직인 리브라협회를 내세운다. 페이스북을 둘러싼 여론 상황이 최악이기 때문에 비영리법인을 내세워 공공성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협회는 내년 리브라를 정식 발행할 예정이며 회원사를 100개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밝혔다. 페이스북은 100개가 넘는 회원사 중 1개 회원사일 뿐이라는 것이다. 허가형 블록체인은 소수의 컴퓨터(서버·노드)에서 장부를 분산 처리하면 되기 때문에 비허가형 블록체인보다 거래 처리 속도가 빠르다. 비트코인은 초당 7건 이하만 처리할 수 있지만, 리브라는 초당 1000건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중앙 서버에서 일괄 처리하는 비자 결제 네트워크의 속도(초당 6만5000건)에는 크게 못 미친다. 거래 처리 속도는 해결되지 않은 블록체인의 숙제 중 하나다.


3│준비금으로 가격 변동 최소화한 스테이블 코인

눈에 띄는 점은 리브라가 은행 예금, 미국 국채 등 실물자산과 연동해 가치를 보장하는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이라는 점이다. 비트코인의 경우, 가치를 담보할 자산이 없다. 반면 리브라는 가치를 연동할 실물자산인 준비금(reserve)을 마련해 가격을 안정화한다. 간단하게 말해 ‘1달러=1리브라’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준비금은 회원사들이 각각 1000만달러(약 118억5000만원)씩 출자해 만들 계획이다. 화폐는 가격이 안정돼 있어야 결제 수단으로 널리 쓰인다. 하루에도 큰 폭으로 가격이 널뛰는 화폐로 결제하는 것은 부담스럽다. 비트코인으로 커피값을 계산한다면, 오늘 마신 커피값은 5000원인데, 내일 커피값은 9000원이 될 수 있다.

만약 페이스북 사용자 24억 명이 자신의 은행 예금 10%를 리브라로 대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국 금융위원회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이 경우 리브라 적립금은 2조달러를 초과하게 된다. 리브라의 성공은 은행을 통한 송금·예금·대출 수요를 감소시켜 은행의 수익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또 자국민이 자국 화폐 대신 리브라를 포함해 다른 화폐를 손쉽게 가질 수 있다면, 중앙은행의 환율 등 통화 정책의 효과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베네수엘라와 같이 법정 화폐에 대한 신뢰가 낮은 나라 국민은 자국 화폐보다 자신의 자산을 보호할 수 있는 암호화폐를 선호할 것이다. 정치권과 금융 수장들은 은행을 통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자금 세탁이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한다.


4│“우리가 안 하면 남이 한다”…페이스북의 의회 설득 포인트

페이스북은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2016년 미 대선 당시 영국의 데이터 분석 업체가 페이스북 이용자 8700만 명의 개인 정보를 도용, 선거에 활용한 사건)’로 뭇매를 맞고 있다. 조만간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사상 최대인 50억달러(5조9000억원)의 벌금을 물릴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페이스북의 ‘화폐 발행 선언’은 의회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청문회에서는 “페이스북은 정치 담론과 저널리즘을 붕괴시켰고 우리 민주주의의 기반을 무너뜨리려고 한다”(브라운 의원), “리브라는 9·11 테러 공격보다 미국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릴 것”(브래드 셔먼 민주당 의원), “정부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거대한 경제 권력을 (페이스북이) 거머쥘 수 있다”(맥신 워터스 민주당 의원) 등의 극단적인 거부 반응이 나왔다. 페이스북의 목표가 장기적으로 국가 통제를 받지 않는 디지털 화폐 발행이라면, 그것도 수십억 명이 사용하는 화폐라면, 리브라는 ‘달러화 패권’의 지위를 위협할 수도 있다.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가 되면서 금(金) 태환을 중지한 것과 같이 리브라 역시 디지털 기축통화가 되면 준비금을 통한 가치 보장을 중지할 가능성도 있다(7월 8일 자 금융위 분석자료). 페이스북은 논란이 커지자 상원 청문회를 하루 앞두고 리브라의 발행 계획을 무기한 연기하며 자세를 낮췄다. 하지만 청문회장의 마커스 부사장은 청문회 질문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미국이 혁신을 시도하지 않으면 우리와 아주 다른 가치관을 가진 누군가가 통제하는 디지털 화폐를 보게 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한편 리브라의 준비금에 달러화를 꾸준히 담을 경우 달러화 패권이 오히려 연장될 것이라는 일각의 의견도 있다.

류현정 조선비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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