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일본 정부는 11월 19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침체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 정책을 발표했다. 18세 이하의 청소년 약 1800만 명에게는 1인당 10만엔(약 100만원)을 지급하는 등 파격적인 현금성 지원책이 눈에 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이끄는 집권 자민당은 4년 만에 치러진 총선에서 단독 과반 의석 확보에 성공했다. 단독 과반 확보가 불투명하다고 전망됐으나 접전 끝에 결국 안정적인 정권 유지 기반을 마련했고, 이를 추진력으로 대담한 지원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저자는 이런 현금성 지원 정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자본주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며 시장을 왜곡하는 보조금이 아닌 경제 개발을 위한 구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10월 초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이 10월 31일 치러진 제49회 중의원 총선에서 선전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다. 사진 AP연합
10월 초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이 10월 31일 치러진 제49회 중의원 총선에서 선전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다. 사진 AP연합
이토 다카토시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학 및 공공정책학 교수 전 일본 재무성 차관보
이토 다카토시 미국 컬럼비아대 국제학 및 공공정책학 교수 전 일본 재무성 차관보

10월 초 출범한 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내각이 10월 31일 몇 주 만에 치러진 내각의 신임을 묻는 제49회 중의원(의회 하원) 총선에서 선전하면서 정권을 유지했다. 이번 총선에서 집권 자민당은 선거 직전인 중의원 해산 시점의 의석(276석)보다 15석을 덜 얻었다. 그러나 전체 465석 가운데 ‘절대 안정 다수’ 의석 기준인 261석을 확보하면서 기대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자민당과 맞섰던 제1야당 입헌민주당은 96석을 획득하는 데 그쳐, 중의원 해산 직전(109석)보다 13석이 줄면서 자민당과 비교했을 때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입헌민주당은 야 4당과 후보 단일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보다 낮은 성적표를 받았다.

가장 큰 승리를 거둔 정당은 ② 일본유신회뿐이다. 일본유신회는 기존 11석에서 30석을 추가한 41석을 이번 선거에서 획득하며 자민당과 입헌민주당에 이어 중의원 제3당 자리에 올라섰다. 이는 자민당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에 실망했으나 선거 운동 기간에  일본공산당과 손잡은 입헌민주당을 지지하는 데 주저하는 유권자들이 일본유신회에 표를 던진 결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에게는 코로나19 신규 감염자 발생 감소에 따른 운이 일부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그의 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지난 8월 넷째 주 일본은 일주일간 평균 코로나19 감염자 발생 건수가 2만5000명을 넘어서는 등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코로나19 발발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9월 초 스가 전 총리는 사임을 표명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신규 감염 발생 건수는 눈에 띄게 줄었고, 일주일 평균 감염 발생 건수 역시 투표 당일까지 270명 선으로 크게 떨어지면서 호전됐다. 전문가들은 이런 극적인 변화를 야기한 요인에 대해 아직 명확한 설명을 내놓지는 못하고 있지만, 최근 2개월간 백신 접종률이 40%에서 70%까지 높아진 것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기시다 총리가 운이 좋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기시다 총리의 이번 승리에는 그가 이전보다 더 왼쪽으로 기운 경제 공약을 내세운 것 역시 한몫했다. 실제로 선거 운동 기간에 그는 임금 재분배를 강조하며, 일본 사회에 만연한 ‘신자유주의’를 그가 ③ ‘새로운 자본주의’라 부르는 체제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공약은 과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이끌었던 자민당이 임금 격차를 키웠다는 입헌민주당의 주장을 흔들었다. 반면 일본유신회는 기시다 총리의 임금 재분배 정책을 비판하는 동시에 국가에 정말 필요한 건 성장률 견인을 위한 구조 개혁임을 강조하면서 중도우파 세력의 공백을 채울 수 있었다.


기시다 후미오의 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일본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자 결국 지난 9월 초 사임을 표명했다. 사진 블룸버그
기시다 후미오의 전임자인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는 일본 코로나19 감염자가 급증하자 결국 지난 9월 초 사임을 표명했다. 사진 블룸버그

문제 근본적 해결 못 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현금성 지원 정책

기시다 총리와 자민당이 승리한 가운데 이젠 ‘새로운 자본주의’가 실제 어떻게 실현될지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현재 초기 징후는 좋지 않다. 초기 기시다 총리의 정책 구상은 18세 이하 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10만엔(약 100만원)의 지원금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정부 보조금 신청자의 가구 소득 가운데 자산을 조사 평가하는 조항이 포함됐음에도 상한선이 높았기에 일본 국민의 약 90%가 보조금을 받을 자격 조건을 충족할 수 있었다. 현금 지원이 가구 소비 대신 저축을 늘릴 것이라는 충분히 예상 가능한 비판에 대해 기시다 총리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그는 지원금의 절반이 쇼핑 쿠폰 형태로 지급될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구 소비 증가를 확실하게 보장할 수 없었다. 쿠폰 역시 현금처럼 단순 저축의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p>

기시다 총리의 맞벌이 부부 지원 방침 등은 박수받을 만하나, 여전히 (보조금 지급 중심의) 그의 경제 정책 방식은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는다. 더 최악인 건 현재 고려 중인 또 다른 정책이 특정 조건에서 임금을 인상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환급 방식의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안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인센티브 정책은 임금을 조정하고 고용을 확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목표 달성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접근은 아니다.

그보다 합리적인 접근은 노동 시장 내 노동자의 이동 가능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는 종신 퇴직금 인상 같은 임금 후불 구조와 종신 장기고용체제를 폐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단, 중간 경력의 노동자에게 재교육을 위한 재정 지원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 또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산성과 임금 수준을 높이는 최고의 방법은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STEM 과목(과학, 기술, 공학, 수학) 비중을 늘리고, 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때 대학 전공을 결정해야 하는 시스템을 없애는 것이다.

기시다 정부가 내놓은 또 다른 아이디어는 석유 소매 가격이 1L당 약 170엔(약 1700원)이라는 특정 기준에 도달할 때 석유 도매상에게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비판해 온 연료 보조금 정책처럼 들린다. 이 같은 정책은 보통 저소득 가구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개발도상국에서 진행된다. 한 번 도입된 정책은 아무리 비효율적이더라도 다시 되돌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위험해 어렵다. 오히려 교과서적인 접근이 나을 수도 있다. 직접적인 대상이 되는 저소득 가구와 필수 산업에 지원하는 것이다.

초기 경제 지표들은 기시다 총리의 ‘새로운 자본주의’ 구상이 사실상 구식 사회주의와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자본주의’는 일본에 도움을 줄 수 없다. 시장을 왜곡하는 보조금이 아니라 경제 개발을 위한 구조 개혁이 필요한 시점이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2021년 10월 4일 취임한 일본 총리로 국내에선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일본 외무상으로 합의를 주도한 인물로 알려졌다. 합의 전날까지도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는 기술에 최종 승인을 주저하던 아베 전 총리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2012년 12월 아베 2차 내각 출범 당시부터 4년 8개월 동안 외무장관을 역임했다.

일본 우익 성향의 정당으로 2010년 만들어졌다. 보수적 성향의 유권자가 많은 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국방, 안보, 한·일 역사 문제 등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일본 ‘위안부’ 제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필요했다고 주장하며, 일본이 다른 나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방위를 행사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이 담긴 평화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분배 강화 구상을 담은 새 경제 정책 기조다. 핵심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다. 금융 완화 정책, 기동적인 재정 정책, 성장 전략 등 아베노믹스의 3대 축을 유지하되 양극화를 완화하고 기업의 성장 과실이 개별 국민에게 돌아가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소연 기자, 김혜빈 인턴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