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강의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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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렬 법무법인 태평양 외국변호사 서울대 공법학 학사, 행정고시 35회, 미국 미시간대 로스쿨, 전 강원도 경제부지사, 전 기획재정부 장기전략국 국장
우병렬 법무법인 태평양 외국변호사
서울대 공법학 학사, 행정고시 35회, 미국 미시간대 로스쿨, 전 강원도 경제부지사, 전 기획재정부 장기전략국 국장

‘벚꽃 엔딩’이란 노래가 있다. 이 낭만적인 노래 제목이 대학가에서는 ‘벚꽃 피는 순서에 따라 사립대학들이 문을 닫게 될 것’이라는 비극적 의미가 된 지 오래다. 학령 인구가 급격하게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학령 인구 감소로 ‘벚꽃 엔딩’ 시작

정부가 대학 정원을 계속 줄이고 있지만, 학령 인구 감소 속도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 2020년에 이미 학령 인구가 대학 정원을 밑돌기 시작했고, 2040년에는 대학 정원의 절반이 미달할 것이 예상된다. 대학 수를 줄이지 않고 정원만 줄이는 대책은 한계가 있다. 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인구 비중이 커지고 있음을 고려하면 가장 큰 충격은 지방 사립대가 받을 것이 분명하다. ‘벚꽃 엔딩’이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는 2005년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만들어서 인구 감소에 맞서 왔지만, 합계출산율(우리나라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005년 1.085에서 2020년 0.837로 추락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심지어 정부는 2011년, 2016년의 인구추계에서 2040년까지 합계출산율이 계속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합계출산율은 우리나라가 198개국 중 198위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는 1보다 아래인 나라가 없다.

인구 감소로 노후에 국민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았고, 이 정부 역시 5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방치했다. 인구 감소로 직격탄을 맞을 대학에 대해서도 근심만 있을 뿐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2019년에는 범정부 인구 정책 태스크포스(TF)가 출범했는데, 이 TF는 인구 감소를 막아보자는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여기에 사회가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필자는 당시 기획재정부의 담당 국장이었다). 올해 7월에 발표된 TF의 과제 중에는 ‘축소사회 대응’이라는 이름 아래 한계대학의 구조개혁을 지원하고 회생이 어려운 경우 폐교·청산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의 정부 대책은 사립대학이 폐교하는 경우에 컨설팅이나 융자를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고, 자발적 구조조정을 끌어내는 방안은 없다. 현행법상 학교법인의 설립자, 출연자는 해산·합병 시 어떠한 보상도 받을 수 없고 잔여 재산은 모두 국고에 귀속되거나 다른 학교법인으로 이전된다. 그렇다면 한계대학이라도 유지하는 것이 나은데 자발적 구조조정을 기대할 수 있을까.


‘폐교 쇼크’ 최소화 위해 퇴로 열어줘야

다음 정부가 5년간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그다음 정부 5년간은 지방 사립대의 연쇄적인 몰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특히 대도시에 있는 대학보다 중소도시에 있는 대학이 먼저 문을 닫을 것이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신입생 감소 → 경영 악화 → 교직원 감축, 임금 체불 → 교육의 질 저하 → 신입생 더욱 감소’다. 이에 따라 ‘준비되지 않은 폐교 → 학생의 교육권 침해 → 교직원 실직 → 주변 상권 붕괴 → 지역 경제, 여론 악화’로 시나리오는 이어질 것이다. 최근 문을 닫은 서남대, 동부산대 등의 경우에도 지역사회에 심각한 타격을 가져왔다. 2000년 이후 10개 학교법인이 해산 또는 파산했으나, 청산 완료 법인은 1개뿐이고, 9개 미청산 법인의 교직원 체불임금 등 채무액은 660억원에 달하고 있다.

‘폐교 쇼크’를 최소화하려면 질서 있는 퇴장의 길을 열어줘야 한다. 고등학교 이하의 학교는 학생 감소로 해산하는 경우에 설립자 등에게 잔여 재산을 분배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해산장려금도 지급하는 특례가 있지만, 사립대학의 경우 자발적 퇴장을 유도할 아무런 유인이 없다. 합병이나 해산으로 경영에서 물러나는 설립자 등에게 장려금을 지급하거나 잔여 재산 일부를 분배해서라도 한계대학의 자발적 구조조정을 유도해야 한다.

물론 설립자 등에게 재산을 분배하는 것이 옳지 않다는 비판에도 일리가 있다. 설립자는 잔여 재산 분배를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재산을 출연했고, 설립자와 그 가족은 이미 이사장·총장 등의 직위와 명예를 누리고 급여를 받는 등 경제적 이익을 얻었으며, 대학의 발전에 국가·지자체의 인프라 투자나 학생·학부모의 등록금이 기여한 바가 크다는 지적들이 타당하다. 그러나 강제적 구조조정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다른 마땅한 대안이 보이지 않는다. 최악의 결과를 희망하는 것이 아니라면 차선, 아니 차악의 대안에라도 의지해야 한다.

부작용을 완전히 없애기는 어렵지만,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다. 설립자 등에게 잔여 재산을 분배하는 경우에 대상을 설립자·출연자 및 고액기부자 등 최소한으로 인정하되, 비리 연루자는 제외해야 한다. 분배 금액도 설립자 기여분과 공적 기여분을 추정해 적정 한도를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독립적 심의기구에서 대상 및 금액을 공정하게 심사하면 된다. 이러한 특례는 다음 정부에서 마련하여 5년 내지 10년 정도 한시적으로 허용하고 철저하게 관리해야 한다.


‘사립대학구조조정특별법’ 이렇게 만들자

한시적으로 시행할 사립대학구조조정특별법 제정을 제안한다. 한계대학의 구조조정이 대형 사고로 이어지지 않고 연착륙하려면 특별법 제정이 필수다. 특별법에 포함돼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계대학을 판정하는 객관적이고 엄격한 기준을 마련한다. 한계대학에 대해서는 시정조치와 구조조정 명령을 할 수 있도록 하되,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둘째, 구조조정을 심의할 독립적인 위원회를 설치한다. 위원회가 엄격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구조조정 대상을 결정하고 구조조정 계획의 타당성을 심사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는 이해관계자의 폭넓은 참여와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 셋째, 구조조정을 위한 학교 재산의 매입·관리·처분 전담기구도 필요하다. 기존의 사학진흥재단 같은 기구를 전담기구로 지정해도 좋다. 넷째, 학생 및 교직원 보호를 위한 대책을 포함해야 한다. 학생에 대해서는 다른 대학에 편입학할 수 있도록 하고, 교직원에 대해서는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다른 대학에 채용될 수 있도록 알선, 지원해야 한다. 다섯째, 설립자 등에게 잔여 재산을 분배할 근거와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잔여 재산을 분배받을 이해관계인(설립자, 출연자 등)의 범위와 선정 기준을 마련하고, 분배 대상이 되는 재산의 한도도 정해야 한다. 그리고 구조조정 심의위원회에서 구체적인 대상 및 분배 금액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심사해야 한다.

대선 후보로 나섰던 윤희숙 전 의원은 공약에서 “학교 재산을 설립자에게 되돌려줄 수 없다는 실용적이지 못한 고집”을 비판하면서 “잔여 재산 처분을 용이하게 하고, 설립자에게도 일부 귀속을 허용해 퇴로를 열어주겠다”고 했다. 김동연 후보도 “질서 있는 퇴출 구조를 만들기 위해 사학재단이 청산할 경우 잔여 재산이 전부 국고로 귀속되는 제도를 바꿔 재단에서 일부 가져갈 수 있도록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주요 대선 후보들이 사립대학의 위기에 대처할 공약을 밝히고 집권 초기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 다음 정부가 사립대학 구조조정의 마지막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