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 한국외국어대, 전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한국외국어대, 전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지금 많은 이에게 모토롤라는 몰락한 스마트폰 회사 정도로 회자된다. 하지만 그것은 1980~90년대 반도체 시장을 이끌었던 최유력 진영이었다. 모토롤라는 통신, 스마트폰을 넘어 우주에까지 닿아 있는 확고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던 매력적인 기업이었다. 특히 우주 분야와 관련해서는 로켓을 통해 위성을 하늘로 쏘아올려 글로벌 이동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있었다. 원소 번호 77, 전하를 띠지 않은 상태에서 일흔일곱 개의 전자를 가진 이리듐 원소의 모습처럼 77개의 통신위성을 띄워 지구 전체를 커버하는 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것. 이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 시대’를 보낸 이들은 기억하고 있을 이리듐 프로젝트 이야기다.

하지만 이동통신 인프라의 성공적인 보급과 3G·4G 시대 전환 앞에 이리듐과 같은 위성통신 진영은 완벽히 패배하고 말았다. 결국 위성통신은 통신망 구축이 어려운 산간, 해상의 이용자들이나 군사, 연구적 목적에 활용되는 특수 통신 수단에 머무르게 됐다. 모토롤라가 주축이 되어 운영되던 이리듐 컨소시엄은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이후 새로운 주인이 등장하며 이리듐 서비스는 한동안 계속됐지만, 10년 정도로 설계된 위성의 한계 수명이 도래하는 시점이 다가오면서 대부분의 사람은 이리듐의 미래를 믿지 않았다. 이리듐 프로젝트의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갔다.

이리듐의 이야기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건 2017년쯤으로 기억한다. 이리듐이 살아남아 2세대 위성을 쏘게 된 것인데, 총 75대의 2세대 이리듐 넥스트 위성이 궤도에 오르고, 시한부 환자 같던 이리듐은 새 생명을 얻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이 2세대의 이리듐 위성을 궤도로 올려준 주체다. 바로 많은 사람에게는 전기차 혹은 테슬라라는 단어로 기억되는 일론 머스크. 정확히는 그의 우주 항공 분야 사업체인 스페이스X다.


우주·항공을 민간의 영역으로 가져온 스페이스X

로켓은 여러 단계의 추친체를 만들어서 가장 큰 단계 부터 연료를 모두 소진하면 추친체를 떨어뜨려 무게를 줄이고 다시 다음 단계 추진체를 점화하는 형식으로 중력을 벗어나 우주공간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때 남게 되는 추진체가 낙하하며 피해를 낼 수 있기 때문에 보통은 해상으로 떨어뜨리게 된다. 스페이스X의 핵심 경쟁력은 이때 이 추진체를 다시 회수해 재사용함으로써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머스크가 밝힌 목표는 현재의 10분의 1 수준까지 발사 비용을 줄이는 것인데, 이 기술을 통해 스페이스X는 미국 항공우주국(나사)의 국제우주정거장 화물운송 계약을 시작으로 주요 프로젝트 수주를 따내며 수익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앞서 이야기한 이리듐 프로젝트는 스페이스X가 만들어가고 있는 수익 모델의 좋은 예가 되는데, 스페이스X는 통신위성을 대신 쏴주는 것을 넘어 한발 더 나아가 스스로 위성통신 업체가 되어 시장에 뛰어들었다.

스페이스X의 위성통신 서비스, 스타링크는 서비스의 품질이나 규모 면에서 이리듐을 비롯한 기성 위성통신 업체와 비교해 확연한 차별점이 있다. 나름 전통을 가진 최유력 진영으로 평가받는 이리듐과 비교해도 통신 품질이 우수하다. 이 같은 차이를 만드는 여러 가지 이유 중 주목되는 것은 스타링크가 보유한 통신위성의 수다.

이리듐이 100개 미만의 위성으로 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반해 스타링크는 이미 1000개 이상의 위성을 통해 서비스하고 있다. 압도적인 위성 수는 그 자체로 압도적인 속도와 낮은 지연 시간을 의미한다. 이리듐이 아직도 초당 킬로비트대의 통신속도를 제공하는 데 반해 베타 서비스 중인 스타링크는 이미 초당 수십 메가비트 속도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미 1500여 개의 위성을 쏘아올린 스타링크의 목표는 총 4만여 개의 위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2020년대 중반까지 1만2000여 개를 쏘아 올릴 계획이고 이미 미국 연방통신 위원회(FCC)의 허가도 받은 상황이다. 꾸준히 한 달에 한 번꼴로 회당 60개의 위성을 쏘아 올리는 중이다.

TV 앞에 둘러 앉아 숨죽이고 지켜 봐야 했던 로켓 발사를 매달 무리 없이 해내고, 매번 60개의 위성을 하늘로 쏘아 올리는 진영의 등장. 스타링크의 이야기는 그동안 국가 혹은 관련 기관의 영역이었던 우주 항공 분야가 조금씩 민간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보여준다.


스페이스X가 발사해 궤도에 안착한 이리듐의 2세대 위성, 이리듐 넥스트. 사진 이리듐
스페이스X가 발사해 궤도에 안착한 이리듐의 2세대 위성, 이리듐 넥스트. 사진 이리듐

머스크의 더 큰 꿈을 품을 용기 주목

스페이스X의 요체를 이루는 로켓 회수에 대한 아이디어는 사실 온전히 머스크 스스로 고안한 개념은 아니다. 이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의 머릿속을 적어도 한두 번쯤은 머물다 갔던 아이디어고, 공상 과학 소설에도 간혹 등장하는 개념이다. 실제로 머스크도 즐겨 읽던 소설 한 편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스페이스X의 의미는 전혀 퇴색되지 않는다. 이들은 누군가의 머릿속에 머물던 이야기를 현실로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이 로켓 회수 기술이나 스타링크에 대한 이야기는 머스크가 그리고 있는 거대한 이야기의 아주 작은 챕터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스타링크와 스페이스X라는 단어를 두고 몇 번이고 곱씹어봐야 할 이유다.

지금은 모두 일론 머스크를 두고 전기차와 자율주행이란 단어를 떠올리지만, 그가 그리고 있는 비전의 끝에는 성간 여행, 화성 개척이라는 엄청난 계획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 나누는 수많은 이야기는 그 거대한 계획을 위한 준비물이다. 테슬라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스페이스X의 로켓인 팰컨과 우주선 드래곤을 통해 개발되고 있는 기술이 우주여행을 위해 준비되고 있는 스페이스X의 우주선 스타십의 탄생을 위한 전초 기술이라면 테슬라의 태양광, 자율주행 그리고 배터리 관련 역량은 스타십을 완성시킬 핵심 기술이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어느새 우주여행과 화성 개척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들의 입에서 회자될 때 쯤 위성통신인 스타링크는 그 모든 것을 연결할 우주시대 기반 통신망으로 다시 부상할 것이다.

머스크의 자율주행차를 두고 그를 사기꾼으로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모두 입을 다물고, 이제는 그가 열어 가고 있는 전기차 시대를 찬양하고 있다. 오늘날 우주여행과 화성 개척에 대한 이야기 앞에 서면 또 한번 왠지 모를 의문이 앞서고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기술에 대해 그토록 열광하는 우리는 정작 그 기술로 만들어갈 미래를 그리는 것보다는 단련된 현실 감각으로 오늘의 기술을 평가하는 데 익숙해 있다.

하지만 그것이 왜 안 되는지를 두고 각자의 평가를 내세우기 전, 누군가는 우리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조금씩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기술로 만들 더 멋진 미래에 대해 꿈꾸는 법을 잊어버린 우리에게 머스크의 이야기가 주는 교훈이다. 담대한 꿈을 현실로 옮기는 그의 리더십이 주목받는다.

‘국민학교 시대’를 보낸 이들이 우리별 1호의 로켓 발사 카운트다운을 함께 세던 그때, 우리는 마침내 위성을 발사했노라 자축하면서 한편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로켓을 발사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 먼 미래의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 손으로 우주 시대를 개척하겠노라 다짐하던 시간들도 기억한다.

그동안 우리의 꿈은 얼마나 이루어졌을까. 그렇게 30년이 훌쩍 흐르고 난 지금, 또다시 그들에게는 벅차지만 우리에겐 안타까운 우주 시대로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