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대형 테크 기업이 급속히 몸집을불리고 있다. 애플·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MS)·알파벳(구글 모회사)·페이스북 등 5개 대형 테크 기업의 시가 총액은 10월 16일(현지시각) 기준 7조1875억달러(약 8143조원)다. 한국(1조6463억달러)과 일본(5조818억달러)의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금액보다 많고, 미국 GDP(21조4277억달러)의 3분의 1에 달한다. 올해 들어 주가가 최소 14.5%에서 최대 72.4%까지 뛰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업들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역대 최고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미국·유럽 등에서는 소수의 대형 테크 기업의 독주를 우려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 10월 초 미 하원은 “대형 테크 기업이 과거 석유·철도 회사처럼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고 있다”며 449쪽짜리 보고서를 냈다. 유럽연합(EU) 역시 대형 테크 기업에 대해 강력한 규제 시행을 검토 중이다. 필자는 이번 칼럼에서 “더는 방관할 여유가 없다”며 대형 테크 기업을 규제할 디지털 거버넌스를 마련하는 데 각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디지털 경제에 적합한 거버넌스 모델, 새로운 경제 전반의 거버넌스 모델,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 계약 방법론을 제시한다.
왼쪽부터 테일러 오웬(Taylor Owen) 캐나다 맥길대 미디어·기술·민주주의 센터장, 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디지털 미디어 및 글로벌 담당 조교수오스카 존슨(Oscar Jonsson) 스페인 IE대학 변화 거버넌스 센터장, 전 스톡홀름 자유세계포럼 이사
왼쪽부터
테일러 오웬(Taylor Owen) 캐나다 맥길대 미디어·기술·민주주의 센터장, 전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디지털 미디어 및 글로벌 담당 조교수
오스카 존슨(Oscar Jonsson) 스페인 IE대학 변화 거버넌스 센터장, 전 스톡홀름 자유세계포럼 이사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사회·경제 생활의 많은 부분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디지털과 물리적 영역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통합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디지털 세계의 힘을 통제할 수 있는 거버넌스와 규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코로나19는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 위기를 촉발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이던 기술 변화의 속도를 높였다. 가장 주목할 점은 대형 테크 기업의 몸집이 더욱더 커졌다는 것이다. 테크 기업 덕에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올해 들어 30% 가까이 올랐다. 그 결과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이조스의 개인 자산은 코로나19 이전보다 68%, 700억달러(약 79조원) 불었다.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의 순자산도 300억달러(약 34조원) 늘어 878억달러(약 99조원)에 육박한다.

몇몇 글로벌 테크 기업으로 부와 권력이 집중되는 현상은 팬데믹 이후 국내외 정치 지형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 기업들은 노동력·재화·서비스 등 유형 자산보다 데이터·알고리즘·지식재산과 같은 무형 자산을 활용해 이윤을 내고 있으며, 디지털 거버넌스가 허술하다는 점을 이용해 세금과 사회보장기금 납부를 회피하고 있다. 현재의 글로벌 거버넌스 시스템은 유형의 세계에 맞춰 만들어진 것이며, 디지털 공정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법과 규제 도입은 늦어지고 있다.

불평등 심화, 중산층 침식 등으로 알 수 있듯 ① 디지털 경제의 승자와 패자 간 격차는 더욱더 커지고 있는데, 팬데믹은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다. 정치적으로도 좌파와 우파를 막론하고 극단주의 정당 지지층이 넓어지면서 중간 지대가 좁아졌다. 유럽이든 미국이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과 언론에 대한 신뢰는 떨어지고 있다. 한 설문 조사에서 미국 밀레니얼 세대(1981~96년 출생) 중 30%만이 ‘반드시 민주 국가에서 살아야 한다’고 답했다. 편협한 포퓰리스트의 등장으로 이러한 경향성은 더욱더 짙어질 위험이 있다.

한편, 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데이터와 디지털 거인을 통제하기 위한 기술 주권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② 일부 유럽 국가는 애플과 구글의 견제 탓에 자체적으로 개발하던 코로나19 접촉 추적 프로토콜을 운영하지 못했다. 사실상 두 기업이 팬데믹과 싸우기 위해 전 세계 32억 대에 이르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 셈이다. 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당장 받아들여야 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스페인 IE대학의 변화 거버넌스 센터는 ‘새로운 디지털 영역’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정책 입안자들에게 아래의 세 가지 필수 사항을 조언했다.

첫째는 디지털 경제를 위한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의 분산된 글로벌 데이터 거버넌스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국제적 조율 과정도 필요하다. 중국의 국가 중심적 접근 방식과 미국의 기업 중심적 접근법은 모두 정보 주체가 개인 정보를 통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유럽연합(EU)의 개인 정보 보호 규정(GDPR)은 정보 주체가 개인 정보를 통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세 개 지역의 접근 방식을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느 테크 기업이나 규정도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적일 수 없다. 세 지역의 규정을 동시에 준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미국의 대형 테크 기업 4곳의 최고경영자(CEO)가 7월 2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하원 레이번빌딩에서 화상통화 형식으로 열린 반독점 청문회에 나와 선서를 하고 있다. 윗줄 오른쪽 두 번째부터 시계방향으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진 AP연합
미국의 대형 테크 기업 4곳의 최고경영자(CEO)가 7월 29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 하원 레이번빌딩에서 화상통화 형식으로 열린 반독점 청문회에 나와 선서를 하고 있다. 윗줄 오른쪽 두 번째부터 시계방향으로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 사진 AP연합

둘째는 새로운 경제 거버넌스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경제는 독점 기술이 주도하며, 태생적으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시장 선도자)와 ③ 집적 경제를 선호한다. 각국 정부는 혁신을 주도하는 이와 그를 따르는 모두를 위한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만들고, 전통 산업 분야에서 기술적 파괴로 인한 악영향을 완화하기 위해 현명하고 민첩하게 규제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긱 이코노미(gig economy·비정규 임시, 계약직의 프리랜서 근로 형태) 노동자를 보호하고 그들이 일반적인 노동자가 누리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권익을 보장받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셋째는 정치·사회적 파탄과 양극화를 종식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 계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과 같이 세금을 내지 않고 규제도 받지 않는 디지털 경제는 더는 지속할 수 없다. 대기업에 세금을 부과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공공재 제공 능력이 제약받을 수 있다. 또한, 다국적 기업의 세금 아비트리지(tax arbitrage·세율이 낮은 쪽의 매출과 순이익을 최대한 늘려 세율이 높은 나라의 세금 부담을 줄이는 것)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글로벌 수준의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디지털 영역에서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플랫폼이나 데이터 거버넌스에 대한 전체적인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 각국 정책 입안자들은 너무 오랫동안 기술 거버넌스와 관련해서 손을 놓고 있었다. 더는 방관할 여유가 없다.


Tip

디지털 기술의 혁신적 발전과 더불어 새롭게 창출되는 디지털 상품 및 서비스가 전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경제를 말한다. 또 한편으로는 기존의 모든 경제 활동이 디지털화한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추적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에 나선 영국 정부는 지난 6월 블루투스 기반 중앙집중형 추적 모델에서 애플과 구글이 제시한 분산형 추적 모델로 개발 방식을 변경한다고 밝혔다. 앞서 영국 공공의료 서비스인 국민보건서비스(NHS)는 4월 블루투스 기반 ‘접촉 추적(Contact Tracing)’ 앱을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NHS가 코로나19 치료와 연구를 위해 앱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NHS는 시범 운영을 거치면서 애플 아이폰에서 문제를 발견했다. 사용자 간 블루투스 거리 인식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해결책으로 애플과 구글이 제안한 방식이 제시됐다. 애플과 구글이 코로나19 확진자 추적을 위해 내놓은 앱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앱 개발을 돕는 기초 소스 코드)는 분산형을 지향한다.

경제 주체가 특정 공간에 밀집해 얻게 되는 긍정적 외부 효과를 의미한다. 집적 경제가 있는 산업의 경우 기업이 인접한 기업과 상호작용해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어서 여러 기업이 공간적으로 집중하게 되고,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