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의 당면한 위기는 대응이 쉽지 않다.
국내 기업의 당면한 위기는 대응이 쉽지 않다.

국내 기업에 위기의 삼각파도가 덮치고 있다. 디지털 기술 확산에 따른 사업구조 혁신, 미·중 무역전쟁으로 상징되는 국제 무역 질서 격변, 기업 관련 제도 변화의 동시적 도전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외부 충격에 따른 단발적 성격이었다면 이번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질서로 이행하는 문명적 전환기에 고령화와 인구 감소 등 국내 문제가 겹친 복합적 만성질환의 징후가 짙다.

실제로 수출·고용·물가 등 발표되는 경기지표가 지속해서 하락하고 기업 현장에서 체감하는 경기는 더욱더 어렵다. 그러나 거시적 환경 악화라는 변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당면한 위기의 본질을 직시하고 시간적 지평을 넓혀서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100년 역사를 자랑하는 글로벌 대기업의 국적은 대부분 미국·영국·독일·프랑스·일본이다. 기타 국가의 기업 연륜은 길지 않다. 독일의 지멘스(1847)·벤츠(1886)·보쉬(1886), 프랑스의 푸조(1896)·르노(1899), 일본의 미쓰비시(1871)·미쓰이(1876)·도요타(1902) 등은 20세기 전반기 2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다. 영국은 본토에서 적국의 지상군과 전투를 벌이지 않았지만, 공습을 피할 수 없었다.

이들은 국토가 폐허가 되는 최악의 위기를 겪으면서 살아남았다. 전쟁 이후에도 냉전과 오일쇼크 등의 어려움을 헤쳐나온 글로벌 장수기업은 극단적 상황에서도 사업기반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이들 기업에서 위험의 개념은 우리와는 범위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다.

국내 기업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후 60년간 부침도 있었지만, 한·미 동맹에 기반한 안전보장과 자유무역 확대, 경제성장 지속으로 기업경영의 기본 환경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하지만 최근 국내외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글로벌 장수기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1997년 IMF 구제금융이 ‘성장통’이었다면 이제는 ‘성인식’에 비유할 수 있다. 기업은 앞으로 위험 개념의 시공간적 범위를 확장하고 이에 대응해야 한다. 핵심은 디지털 혁신의 방향 정립과 글로벌 전략의 근본적 재검토다.

디지털 혁신은 이제 업종을 불문하고 선택이 아닌 필수의 단계로 들어섰다. 미디어·통신·유통 부문에서 출발해 대중교통·숙박업으로 확장해 음식료·의류·화학 등 전 부문으로 퍼지고 있다.

글로벌 전략 재검토의 핵심은 동북아 공급체인망의 급변이다. 국내 언론에서 소위 미·중 무역전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본질은 미국의 중국 징벌이다. 중국은 세계 무역 체제 편입에 따른 경제 성장을 사회 발전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공산당 지배 강화와 시장경제 후퇴로 퇴행하면서 한계 상황에 도달했다. 나아가 중국이 한국의 미사일 방어무기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빌미로 자행하는 각종 불공정한 정책은 그 실체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도 중국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다면, 허상이다. 미국은 중국을 글로벌 공급체인에서 배제하고 있고 이는 현재 구축된 동북아 분업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국내 기업에는 위기이자 기회다.

1960년대 산업화가 시작된 이후 60년 동안 국내 기업이 전제해 왔던 기본 조건이 모두 변화하고 있다. 당면한 위기는 복합적인 만큼 대응이 쉽지 않다. 그러나 위기에서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 어려울수록 기본으로 돌아가서 활로를 모색해야 방향이 보인다. 디지털 대응과 글로벌 전략 재편이라는 관점에서 현실에 근거한 합리적 대응책을 세워야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