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아베 내각은 반도체 부품 소재에 대한 수출 관리 조치를 시작으로 최근에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향후 더 강화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이 있다. 이러한 일본의 도발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한 ‘필살의 일격’이 아니라, 대일 외교와 관련된 우리 정부의 방향 전환을 촉구하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간보기’라는 점이다.

우리 정부는 일본의 도발을 ‘경제 침략 전쟁’이라고 규정하며, 이 전쟁에서의 ‘승리’를 다짐한다. 과연 이것을 ‘전쟁’이라고까지 불러야 하는지 의문이다. 그러나 일단 정부와 대다수 언론이 이것을 전쟁이라고 명명한 이상, 이것이 과연 어떤 성격의 전쟁인지 그리고 우리가 바라는 승리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하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양쪽이 바라는 승리가 서로에게 경제적 치명타를 입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도 일본과 국교를 단절함으로써 양국관계를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이전 상태로 돌리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당장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쟁이라 규정하면서,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 모르는 먼 훗날 우리 경제가 일본 경제를 압도해 승리할 것이라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우리가 바라는 승리는 문재인 정부와 아베 내각 사이의 갈등을 최소비용으로 봉합하고 7월 4일 일본의 무역관리 조치 이전으로 돌리는 것이다. 우리의 승리를 이렇게 정의한다면, 이번 전쟁의 성격도 한국 국민과 일본 국민 사이의 경제 전쟁이라기보다는 문재인 정부와 일본 아베 내각 사이의 ‘외교전’임이 분명해진다.

아울러 승리를 위해서는 상대를 자극하는 강 대 강 전략보다는 상대로 하여금 물러설 수 있게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보복조치가 아니라고 항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강제 징용 배상 문제를 대화의 선결 조건으로 흘린다. 우리의 국민 정서에 반할 뿐 아니라 그 뒤에 어떤 카드가 또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대신 대응안 제시(counter offer)로 판을 한 번 크게 흔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내려진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일본 기업에 배상금을 지불토록 강제하느냐, 아니면 다른 기금 등이 대신 지불토록 하느냐의 금전적인 부분만 남았다. 이것을 우리가 떠안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재합의나 새로운 협정을 요구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우리가 한·일 청구권 협정문을 준수하는 형태로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떠안는 대신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함으로써 양국 모두 과거사 문제를 봉합하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수립해 갈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아킬레스건이고, 양국이 조속한 시일 내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다. 물론 일본이 일괄타결 방식을 바로 수용할지는 의문이지만, 협상안과 대응안 제시를 반복하면서 양국 정부가 윈윈(win-win)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일괄타결은 미국의 중재를 유도하는 데 있어서도 효과적이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한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의 압력하에서 한·일 양국이 서명한 위안부 합의문은 양국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이면 조항이 있었고, 국회 비준을 받지 않은 미봉책에 불과했다는 점을 강조하자.

이를 대신해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하에 한국과 일본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와 위안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면, 한·미·일 공조체제를 공고히 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을 부각할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자. 위안부 문제는 멜라니아 여사나 이방카 백악관 선임 고문을 움직이기에도 적절한 이슈다.

한국 정부는 최근 ‘방사능 이슈화’를 공격카드로 꺼낸 듯하다. 이는 협상 카드가 아니라, 별개로 다뤄야 할 이슈다. 상대를 자극할 뿐이다. 이보다는 상대로 하여금 한발 물러설 수 있게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심승규 아오야마가쿠인대 국제정치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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