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김조한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 공학과, SK브로드밴드 미디어 전략 담당,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플랫폼 전쟁’ 저자

미국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는 최근 올해 1분기 기업설명회(IR)를 열고 전 세계 모바일 다운스트림(영상을 보기 위해 전송받는 것) 트래픽 총량 중 넷플릭스 점유율은 2.44%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최고경영자(CEO)는 이에 따라 넷플릭스가 더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가 발표한 자료에는 캐나다 광대역 네트워크 솔루션 기업인 샌드바인(Sandvine)에서 만든 통계 데이터가 추가돼 있는데 이 데이터에서 개인적으로 놀라운 회사를 발견했다.

이 회사는 한국에서는 정식 서비스되지 않아서 자주 잊게 되지만 언론에서 미국 10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종종 소개한 ‘스냅챗’이다. 스냅챗은 사진과 동영상 공유에 특화된 모바일 메신저다. 전 세계 모바일 트래픽을 세 번째로 많이 쓰는 앱 서비스 중 하나가 스냅챗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필자는 놀랐다.

페이스북은 불과 2년 전만 해도 시장조사 기관에서 인스타그램과 더불어 구글의 트래픽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던 회사다. 올해 2월 말 현재 페이스북(8.37%)과 스냅챗(8.29%)의 트래픽 점유율 차이는 0.8%포인트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인스타그램, 왓츠앱, 페이스북 비디오는 모두 페이스북 서비스이며, 이들을 다 합칠 경우 페이스북의 점유율은 20%를 넘는다. 구글은 39%로 두 배 수준이다. 스냅챗은 페이스북보다 점유율이 0.08% 낮지만, 인스타그램(5.71%)보다는 2.58% 높다.

그렇다면 스냅챗은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서비스일까. 독일 통계 사이트 스태티스타(Statista) 자료에 따르면, 스냅챗은 미국(월간 사용자 9300만 명), 프랑스(1800만5000명), 영국(1700만1500명), 사우디아라비아(1300만6500명)에서 비교적 많이 쓰고 있다. 인도·멕시코·독일·브라질·캐나다·호주에도 사용자가 있다. 전 세계 10여 개국을 제외하면 사용되지 않는 서비스인데 어떻게 이렇게 높은 트래픽 점유율을 기록한다는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글로벌 서비스다.

작년까지만 해도 스냅챗이 어렵다는 기사가 많았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스냅챗 주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고, 기업공개(IPO) 시 공모가는 예상치보다 두 배 이상 많은 12.29달러를 기록했다. 회사 가치는 18조원 정도다. 스냅챗은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 최근 스냅챗이 발표한 올해 1분기 실적을 살펴보면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39%, 전 분기 대비로는 36% 증가했다. DAU(Daily Active User·매일 들어오는 사용자) 수는 1억9000만 명으로 전년 대비 2% 증가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매일 들어오는 사용자가 다시 늘어나 작년 1분기 수준을 회복했다는 점이다.

이 같은 반등의 비결은 뭘까. 스냅챗은 사용자는 줄고 있지만, 영상을 시청하는 시청 시간은 세 배까지 증가했다고 한다. CBS, Viacom, NFL, NBA와 같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는 시청자가 스냅챗을 떠나지 않았는데, 그 영상들은 오직 세로로만 구성돼 있다. 여기서 세로란 스마트폰을 옆으로 돌리지 않은 상태에서 볼 수 있는 길쭉한 영상을 뜻한다.

특히 3000만 명이 매일 세로로 제작된 NBC 뉴스를 시청했는데, 67%는 NBC 뉴스 자체를 처음 보는 시청자였다고 한다. ESPN 스포츠센터의 경우 시청자의 60%가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들어와서 시청했다고 한다. 영상 콘텐츠가 스냅챗을 지탱하고 있다.

스냅챗은 10~20대가 공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다면, 그들만의 모바일 HBO(Home Box Office·가정 극장)를 만들어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스냅챗은 지난해 가을에 총 12편의 오리지널 영화를 공개했는데, 결과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위에서 언급한 데이터가 이를 증명한다. 스냅챗 콘텐츠 성공 요인은 세 가지다. 이는 전체 화면(full screen), 압도적인 영상미(hyper visual), 세로 화면(vertical)이다. 그리고 서비스의 타깃 연령인 13~24세를 위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성공을 바탕으로 스냅챗은 앞으로 콘텐츠에 두 배 이상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가을 시즌과 마찬가지로 5월부터 새로운 시즌을 시작할 예정이며, 데드 걸 디텍티브 에이전시, 엔드리스 서머, 딥 크릭과 같은 큰 성공을 거둔 전편은 후속 시즌을 제작할 방침이다. 새로운 프로그램도 대량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스냅챗에서 공개할 예정인 오리지널 콘텐츠 ‘데드 걸’. 사진 스냅챗
스냅챗에서 공개할 예정인 오리지널 콘텐츠 ‘데드 걸’. 사진 스냅챗

모바일의 새로운 TV 꿈꾸는 ‘퀴비’

스냅챗의 이러한 행보와 발맞춰 비슷한 시기에 모바일의 HBO를 만들겠다고 밝힌 사람이 있다. 드림웍스 창업자인 제프리 캐천버그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스냅챗이 새로운 오리지널 영상을 제작하고 있을 시점에 유료화한 모바일 HBO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새로운 TV(New TV)’의 탄생을 기대하는 콘텐츠 제작사들이 총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가 넘는 돈을 투자했다. 거기엔 최근 플랫폼 전쟁에 뛰어든 디즈니, NBC 유니버설, 워너 미디어 그리고 중국의 알리바바 등이 포함됐다.

캐천버그는 분당 제작비 1억원이 넘는 ‘프리미엄 숏폼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 제작비가 편당(60분 기준) 6억~7억원이라고 볼 때, 6분짜리 드라마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캐천버그는 앞으로 6년간 1조2000억원을 숏폼 콘텐츠 제작에 힘쓰겠다고 했으며, 드라마의 경우 분당 1억5000만원, 예능의 경우 분당 7000만원을 쓰겠다고 밝혔다. 새로운 플랫폼의 이름은 ‘퀴비(Quibi)’이며, 올해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이다. 구독료는 광고가 일부 들어간 서비스는 월 4.99달러, 광고 없는 서비스는 월 7.99달러다.

퀴비는 스냅챗의 유료 모델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4월 초에 캐천버그는 퀴비 콘텐츠를 시청하는 틀을 책임질 제품 책임자로 스냅챗의 프로덕트(제품) 책임자였던 톰 코나드를 CPO(최고 제품 책임자)로 임명했다. 세로로 콘텐츠를 시청하는 경험을 이식한, 그래서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의 90% 이상이 시청하게 한 경험을 퀴비에 이식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캐천버그는 그 틀에서 20분 내외의 콘텐츠를 보여주려 한다. 퀴비는 마블과 달리 다소 고전하고 있는 DC 유니버스 영화와 드라마를 책임졌던 DC와 워너 브라더스의 다이엔 넬슨 전 대표도 고용한 바 있다. 짧다고 무시하지 말라. 마블 영화 ‘블랙 팬서’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퀴비의 오리지널 드라마에 출연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 ‘피치 퍼펙트’의 스타 안나 켄드릭도 퀴비 오리지널 콘텐츠인 ‘더미(Dummy)’에 출연하기로 했다. ‘워킹데드’ 감독으로도 유명한 트리샤 브록도 참여하는 프로젝트다. 캐천버그는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서 “아직 모바일 오리지널 콘텐츠 시대는 열리지 않았다”고 했다. 넷플릭스가 모바일로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지만 그들이 이야기한 것처럼, 모바일로 시청을 시도하다가 결국은 대부분 TV를 통해 시청한다는 것이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기존 TV에서 보는 긴 콘텐츠가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모바일에 적합한 세로형 시청 경험도 제공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콘텐츠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가로로 잡고 시청하는 게 적합한 형태다.

일각에서는 유튜브를 떠올리지만, 프리미엄 콘텐츠는 아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콘텐츠는 맞지만 제작사들이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모바일에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면, 기회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는 프리미엄화한 오리지널 숏폼 콘텐츠의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북미를 중심으로 진짜 숏폼 오리지널 콘텐츠 시대가 이제 막 문을 연 것이다. 숏폼 오리지널 콘텐츠 시대가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