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유럽연합(EU)이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비상에 걸렸다. 반(反)유럽 정서가 어느 때보다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EU의 입법부인 유럽의회를 구성하는 의원 선거를 한다. 이들은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의 수장인 집행위원장을 선출한다. 선거 결과에 따라 향후 5년간 EU의 권력 지도가 결정되는 것이다. 유럽 대륙은 현재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포퓰리즘의 약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영국은 3월 29일 최종 탈퇴를 앞두고 있지만, 의회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조차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EU와 영국이 이대로 갈라서는 ‘노딜’ 브렉시트 현실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설적인 억만장자 투자자이자 사회운동가인 조지 소로스는 이번 칼럼에서 하나의 유럽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런던 정경대 철학 석사, 퀀텀 펀드·오픈 소사이어티 펀드 설립자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런던 정경대 철학 석사, 퀀텀 펀드·오픈 소사이어티 펀드 설립자

유럽이 ① 몽유병에 걸려 망각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유럽인이 깨어나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EU는 ② 1991년 소련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지도자나 일반 시민 그 누구도 지금이 혁명적인 순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불확실성도 크다.

사람들은 보통 미래가 현재와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길고 다사다난했던 지난 세월 동안, 나는 이른바 ‘급진적 불안정(radical disequilibrium)’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기를 수차례 거쳤다.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다.

다음 변곡점은 5월에 있을 유럽의회 선거다. 불행히도 반(反)유럽 세력이 이 투표에서 경쟁 우위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대부분 유럽 국가에 구태의연한 정당 체제가 만연해 있다는 점, EU 조약을 변경하는 게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EU 원칙을 위배하는 회원국을 제재할 만한 법적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 등이다. EU는 회원국에 ‘아퀴 코뮈노테(acquis communautaire·EU 출범 이후 축적된 조약과 관행, 법체계)’를 적용하고 있지만, 각국 상황상 이를 강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낡은 정당 시스템은 EU 출범 초기 세워진 가치를 보존하려는 노력을 방해하는 동시에 이를 대체하려는 급진적인 움직임에 도움을 준다. 개별 국가는 물론 유럽 전체에서 이런 힘을 발휘하고 있다.

19세기와 20세기 각국 정당 체제는 당시 가장 중요한 문제였던 노동과 자본의 갈등을 반영했다. 그런데 지금은 친(親)유럽, 반(反)유럽 세력 간 분열을 반영하고 있다.

현재 EU 주요국인 독일의 집권 여당은 ③ 기민·기사연합(CDU·CSU)인데, 최근 이 둘의 관계가 지속되기 어려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두 연합의 동맹 관계는 바이에른주 내에서 기사당(CSU)보다 우파 성향인 정당이 없을 경우에만 유효하다. 그런데 최근 ④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하 독일대안당)’이 떠올랐다. 이 극우 정당의 등장으로 지난해 9월 총선에서 기사당은 60년 만에 최악의 성적표를 받았다. 독일대안당이 처음으로 바이에른 의회에 입성한 것이다.

독일대안당의 부상은 기민·기사연합의 관계를 위협하고 있다. 일단 양당 관계는 ‘독일은 물론 전 유럽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선거 결과’ 같은 계기 없이는 완전히 깨지기 어렵다. 하지만 독일대안당이 선전 중인 지금 상황에서 집권 여당이 견고한 친유럽 정책을 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다만 상황이 아주 절망적이지는 않다. 녹색당이 독일 유일의 일관성 있는 친유럽 정당으로 부상해 각종 여론조사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독일대안당 지지율은 이미 고점을 찍고 내려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낡은 정당 체제는 자신의 의견을 적절히 표현하려는 대중의 의지를 막고 있다. 노동당과 보수당 모두 내부적으로 분열돼 있는 상황에서 양당 지도자인 제러미 코빈과 테리사 메이가 현실성 있는 브렉시트를 위한 ⑤ 협력을 다짐했다. 상황 자체가 매우 복잡한 탓에 많은 영국 국민은 이 문제를 단순하게 끝내려고 한다. 향후 수십 년 영국의 미래를 결정 짓는 중요한 문제임에도 말이다.


1월 31일 영국 런던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국인들 모습.
1월 31일 영국 런던에 있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브렉시트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영국인들 모습.

최근 코빈과 메이의 협력은 양측 모두에서 반대파의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동당은 내란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코빈과 메이가 만난 다음 날, 메이는 영국 북부에 있는 저소득층 노동당 선거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발표했는데, 코빈은 노동당 내부에서는 반역자로 몰리고 있다. 그는 지난해 노동당 연례 전당대회에서 조기총선과 제2 국민투표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래도 브렉시트가 현실화하면 끔찍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대중의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메이의 합의안이 ⑥ 2월 14일 의회에서 통과되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⑦ 영국의 리스본 조약 50조 발동 철회로 이어질 수 있다.

이탈리아도 곤경에 처했다. EU는 2017년 ⑧ 더블린 조약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이 영향으로 난민이 처음 입국하게 되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의 부담이 커진 것이다. 그 결과 2018년 친유럽·친이민 성향의 많은 사람이 오성운동을 비롯한 반유럽 성향 정당으로 돌아섰다. 그 결과 민주당이 혼란에 빠졌고, 친유럽 성향의 수많은 유권자가 투표할 정당이 없어졌다. 다만 최근에는 이들을 하나로 묶는 정당을 조직하려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프랑스, 폴란드, 스웨덴 등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사안을 범유럽으로 확대해 보면 상황은 더 나쁘다. 범유럽 동맹이 지도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되고 있다. 단연 유럽국민당(EPP)이 최악이다. 범죄자 집단 같다. 이들은 거의 모든 원칙을 무시하는데, 최근 소속 정당인 헝가리의 ⑨ 피데스당에 제재를 가하지 않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피데스당이 계속 소속 정당으로 있으면, EPP는 유럽의회 내 다수당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 EPP에 비하면 반유럽 세력이 낫다고 본다. 반유럽파들이 역겹긴 하지만, 최소한의 원칙은 있다.

친유럽 정당이 유럽인 모두의 이익을 앞세우지 않는다면 오는 5월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EU 지도부는 소련 해체 시절 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들은 소련이 망하는지조차 모른 채 효력 없는 명령을 내렸다.

유럽을 대내외적 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위험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둘째, 잠자는 친유럽파를 깨워 EU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통합 유럽의 꿈은 21세기의 악몽이 될 수도 있다.


Tip

영국의 석학 크리스토퍼 클라크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제1차 세계대전 100주년을 다룬 역사서 이름도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이다. 적극적으로 전쟁을 계획한 나라가 없었지만, 상호 신뢰가 없던 각국 지도부가 인류 최악의 비극을 빚어냈다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망상에 사로잡힌 채 앞으로 초래할 거대한 사건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 때문에 사람이 죽고 다쳤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소비에트연방은 1991년 붕괴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속한 기독교민주연합(CDU)은 중도우파 성향의 정당이다. 바이에른주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는 대신, 바이에른에서만 활동하는 자매당 기독교사회연합(CSU)과 함께 활동한다. 두 당은 모두 유럽의회의 유럽국민당 소속이다.

반(反)이민·극우 성향 독일 내 제3당이다. 이들은 “억압적인 동독 시절조차 ‘형편은 좋지 않았지만 모든 게 질서 있고 안정적이었다’ ‘최소한 무슬림에게 국경을 열진 않았다’”라고 국민 정서를 자극한다.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테리사 메이 총리의 브렉시트 협상안을 조건부로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영국의 EU 관세동맹 잔류 △EU 단일 시장과 긴밀한 관계 △권리·보호 관련 영국의 기준이 EU에 밀리지 않도록 하는 것 △영국의 EU 기관과 기금 프로그램 참여 △미래 안보협정에 대한 명확한 합의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 조건은 담지 않았다.

실제로 합의안은 의회에서 부결됐다. 이 칼럼은 2월 11일에 나왔다.

영국은 2017년 3월 EU 탈퇴 규정을 담은 리스본 조약 50조를 발동시켰다. 이 조약 발동 2년 후인 3월 말이 되면 영국은 자동으로 EU를 탈퇴하게 된다.

1990년 만들어진 더블린 조약은 난민이 처음 입국한 EU 국가에서만 망명 자격 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난민의 해상 이동 경로인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이탈리아와 그리스가 난민 입국 관문으로 통한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이끄는 피데스당은 반이민·극우 성향 정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