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3월 22일 미국이 연 500억달러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면서 시작된 미·중 무역전쟁이 8개월째 진행되고 있다. 3월 첫 관세 부과 이후 양국은 네 차례 협상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이런 가운데 11월 30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렸다. 세계의 눈은 이 회의에 참석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입에 쏠렸다. 이 두 사람의 담판이 미·중 무역전쟁의 확전과 휴전을 가르는 고비가 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번 칼럼은 ‘자본주의 4.0’의 저자인 아나톨 칼레츠키 게이브컬 드래그노믹스 회장이 G20 정상회의를 나흘 앞두고 쓴 것이다. 칼레츠키 회장은 미·중 무역전쟁의 긴장감이 이번 양국 회담을 기점으로 이완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방의 긴장감을 최고조로 높인 후, 결정적 순간에 뒤로 빠지는 특유의 ‘협상술’을 중국에도 사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칼레츠키 회장의 칼럼과 G20 정상회의에서 도출된 결과를 대조해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 하버드 케네디 경영대학 석사, 타임·파이낸셜타임스 경제 칼럼니스트, ‘자본주의 4.0’ 저자
아나톨 칼레츠키(Anatole Kaletsky)
하버드 케네디 경영대학 석사, 타임·파이낸셜타임스 경제 칼럼니스트, ‘자본주의 4.0’ 저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마주한다.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의 이목이 두 정상의 만남에 집중됐다. 이 만남이 미·중 무역전쟁의 확전과 휴전을 가르는 고비가 될 것이라고 예상해서다. 그러나 나는 두 정상의 회담 결과와 무관하게, 미국과 중국을 둘러싼 긴장감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중국 공포증(Sinophobia)’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미국에서 미·중 무역전쟁은 미국의 ‘일자리’보다 중국에 대한 공포에 초점을 두기 시작했다. 중국이 미국의 첨단기술을 훔치는 약탈자이며, 이 기술을 바탕으로 미국의 글로벌 헤게모니에 도전한다는 중국 공포증이 득세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 대 국가의 대결 구도가 된 상황에서, 중국 지도자인 시진핑은 이 전쟁에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게 됐다.

더욱이 중국은 미국 관세 정책의 피해를 최소화할 다양한 정책 도구를 갖고 있다. 중국은 내수를 자극해 수출 감소분을 어느 정도 상쇄하는 것이 가능하다. 사실 올해 중국 경제가 주춤한 것은 내부 단속의 영향이 컸다. 중국 중앙정부는 은행 시스템을 정비하고, 지방정부 부채와 설비 투자를 줄이고, 부동산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통화 긴축을 단행했다.

이 같은 중국 정부의 긴축적 정책 기조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① 중국 중앙정부 고위 관료들은 ‘내년에 경기가 침체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시장은 이 발언을 ‘중국 정부가 내년부터는 긴축 정책에서 경기 부양책으로 선회할 것’이라는 의미로 읽었다. 중국 정부가 경기 활성화를 위해 예산 적자를 감내하고라도 통화 긴축 정책을 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지금 중국은 미국과 전쟁 중이다. 부채 대비 GDP 비율이나 은행 대차대조표는 치열한 전투 상황에서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두 번째는 트럼프의 ‘정치 셈법’이다. ② 지난주 중국 정부가 경기 침체에서 벗어날 능력과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상황에서 트럼프의 정치 셈법은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는 2020년 11월 미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에서 미·중 무역전쟁을 이슈로 활용하려면 시진핑과 협상에 속도를 내야 한다. 지금까지 트럼프는 중국에서 수입되는 모든 물품의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리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트럼프는 유권자를 잃고 미국 경제도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트럼프는 대(對)중국 관세 정책에 대해, 중국 수출 업자에게 걷은 세금으로 미국 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는 경기 침체 시기에나 통하는 이야기다. 지금 미국 경제는 완전 고용 상태다. 그리고 저렴한 중국산 수입품을 대체할 내수 제품은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관세를 인상하면, 물가와 금리만 밀려올라가고 결국 미국 소비자와 수입 업자만 힘들어진다.

세 번째는 트럼프의 최근 외교 협상 스타일이다. 북한 핵무기, 멕시코 국경, 북미 자유무역 협정 개정 등 모든 외교 안보 협상에서 트럼프는 긴장을 고조시킨 다음, 예기치 않은 순간에 뒤로 물러서는 식으로 경제적 실리를 챙겼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가 넘는 것을 막기 위해 ③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완화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 이후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11월 30일부터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만났다. 사진 블룸버그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 이후 악수하고 있다. 두 정상은 11월 30일부터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만났다. 사진 블룸버그

하지만 지금까지 트럼프의 협상술은 성공적이었다. 미국 유권자의 표심을 잃을 만한 군사·경제적 결단은 하지 않으면서도, ‘미국을 다시 부강하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자극적인 발언으로 자신의 주력 지지층인 급진적 민족주의자를 만족시켰다.

G20 정상회의 이후의 협상 패턴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확대한 다음, 몇 달 혹은 몇 주 후에 미·중 정상회담을 열고, 합의를 이끌어낼 것이다. 1940년 6월 영국 ④ 덩케르크 철수작전을 떠올려보라.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패전이 아니라 위대한 승리로 기억된다.

네 번째는 트럼프가 시진핑의 사정도 헤아려야 한다는 점이다. 전쟁에는 승전과 패전만 있는 게 아니다. 휴전도 있다. 트럼프는 시진핑이 받아들일 만한 협상 카드를 건네는 것으로 무역전쟁을 휴전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양국의 무역 불균형 축소, 지식재산권 관련 제도 정비, 미국 기업에 대한 중국 시장 추가 개방 등을 요구하면, 시진핑은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일 수 있다.

⑤ 미국 정부는 중국에 142개의 요구안을 제시했다. 중국은 이 가운데 40%는 즉시 수용할 수 있고, 40%는 협상 가능하다고 답변했다. 나머지 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는 20%가 기술 이전, 사업 보조금과 관련한 것이다. 이 20%가 ‘중국 공포증’과 관련해 민감한 사안인 것은 맞다. 중국이 미국의 군사·기술적 헤게모니에 도전하는 빌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먼 미래의 이야기다. 나는 트럼프가 2050년 이후의 일까지 고민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트럼프가 2020년 미 대선에 더 관심이 많다고 가정한다면, 트럼프는 중국과 대결을 더 이상 길게 끌 이유가 없다.


Tip

11월 이후 중국 고위 관료를 중심으로 중국 경기 둔화를 인정하고 앞으로 시장 개방에 속도를 내겠다는 공식 입장이 쏟아지고 있다. 11월 15일 시진핑 주석은 인민대회당에서 자유무역항 구축 등을 언급했다. 앞서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6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함께한 자리에서 “중국 경제 성장이 하방 압력을 받고 있다”며 “적극적 재정 정책과 함께 은행, 펀드, 증권, 선물 등 금융시장을 더 많이 개방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중국은 G20 회담을 일주일 앞둔 11월 23일 자유무역시험구 추가 개혁 개방 조치를 발표했다. 또 중국 지도부는 11월 1일 최고 지도부 절반 이상이 참석하는 고위급 민영기업좌담회를 열었다. 중국 최고지도부가 민영기업의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한 것은 시진핑 국가주석 취임 후 처음이다.

올해 8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대이란 제재 재개를 발표하면서 석유를 포함한 2단계 제재를 11월 5일부터 적용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면 석유 공급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로 국제 유가는 두 달 동안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80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미국은 이란에 대한 원유 제재를 복원하면서도 한국, 중국, 인도, 터키, 일본, 대만 등 8개국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했다. 이후 유가는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제2차세계대전 초기인 1940년 5월, 유럽 대륙에 파견된 영국군 22만6000명과 프랑스·벨기에 연합군 11만2000명을 프랑스 북부 해안에서 영국 본토로 철수시킨 작전이다. 당시 영국군은 전투에서 패했지만, 훗날 군대를 재정비해 반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이 때문에 덩케르크 철수작전은 ‘패했지만 승리한 전투’라는 평가를 받았다. 철수작전에는 민간인 요트와 어선까지 자발적으로 나섰는데, 이 이야기는 2017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에 잘 담겨 있다.

미국은 11월 중국산 수입품 관세 부과와 관련한 무역협상안으로 중국에 142개 요구 사항을 보냈으며, 중국은 그에 대한 응답으로 양보안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6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더 많은 양보를 요구했다. 중국이 미국에 제시한 협상안에는 미국 천연가스 구매,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미국 기업에 대한 시장 개방 확대,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