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 장악했다. 주요 7개국(G7) 정상은 8월 24일(이하 현지시각) 이 문제를 안건으로 화상 회의를 열었다. G7은 자국민의 대피 시한 연장과 관련해서는 당초 정한 철수 시한(8월 31일)을 고수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반대로 합의 도출에 실패했지만, 탈레반 압박 의사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G7 정상은 공동 성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어떤 미래 정부도 테러 방지와 인권 보호에 대한 국제적 의무와 약속을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아프간 정부의 정당성은 탈레반이 국제적 의무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접근 방식을 취하느냐에 달렸다”며 “아프간 정당들을 말이 아닌 행동으로 판단하겠다”라고도 했다. 필자는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통제하에 있더라도 이들을 강압적으로 억눌러서는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 미국식 무력 제재가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며, 경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아프가니스탄 개발 계획을 수립하라고 조언한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 세력 탈레반이 8월 19일(현지시각) 탈레반 기를 꽂은 차를 타고 카불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 세력 탈레반이 8월 19일(현지시각) 탈레반 기를 꽂은 차를 타고 카불 시내를 순찰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현 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센터 디렉터, 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대표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현 컬럼비아대 지속가능개발센터 디렉터, 현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 대표

주요 7개국(G7) 정상이 아프가니스탄 사태를 의논하기 위해 모였다. G7의 존재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또 다른 유혈 사태, 대규모 난민 유입 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G7 논의는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가 움직이기에 앞서 7개국의 정책을 조율하는 목적으로 활용돼야 한다. 또 중국과 러시아의 참여 없이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일관된 접근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G7은 아프가니스탄을 고립시키거나 굶기면 안 된다. 탈레반 통제하에 있더라도 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이는 아프가니스탄에 거주 중인 서양인과 아프가니스탄 국민의 탈출을 돕는 단기적 전술로 중요할 뿐 아니라 유혈 사태, 인도주의의 위기, 난민 급증과 같은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미국과 G7 동맹국은 아프가니스탄의 외환 보유고를 동결하고, 개발 원조를 끊고, 미국(또는 UN)의 제재를 강화하고 싶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난 20년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임무가 실패했듯이, ① 이런 식의 접근은 성공할 수 없다. 미국은 다른 국가를 벌하는 행위에는 능숙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다.

이번에 미국은 큰 굴욕을 당했다. 미국 정치권에서는 탈레반을 처벌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우리는 미국과 나토를 40년간 혼란에 빠뜨린 미국 정치인과 전략가들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개입이 2001년이 아닌 1979년에 시작됐다는 걸 기억하자). 이들은 후에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된 무자헤딘에 대한 미국의 초기 지원을 옹호했던 사람들이다. 또 2001년 미국의 지속적인 아프가니스탄 개입을 주장했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는 병력 증가의 효과를 믿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탈레반 정권이 적에 대한 복수·살인과 여성에 대한 잔인한 탄압을 자제한다면, G7과 유엔 산하 기구,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은 아프가니스탄에 재정적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이 경우 미국 보수주의는 경악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배반자로 낙인찍을 것이다. 미국 보수주의는 모든 해외 원조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보수주의는 저개발국의 발전을 돕기보다 그들을 정복하기를 원한다.

G7이 해야 할 일은 더 있다. 우선, 2001년부터 2020년까지 개발 프로그램이 가동됐음에도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의 정권 재탈환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안정화하지 못한 이유를 독자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야 한다. 힌트를 주자면, 개발보다는 안보에 치우친 지출, 만성적으로 불충분한 사회 인프라와 계획 자금, 전략이 결여된 접근법, 아프가니스탄과 미국 건설 업체의 부패, 명확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의 부재 등이 있겠다.

둘째, G7은 아프가니스탄 내 유엔 관계자들의 정기적인 보고를 듣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경제적이고 지속 가능한 아프가니스탄 개발 계획을 요구해야 한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여학생을 포함한 아이들과 교사가 학교에 있는지, 병원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 마을의 수도와 전기 공급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등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이는 유엔 SDGs(지속가능개발목표)의 일환이다. 나토의 지원을 받는 정부에 SDGs가 적용되는 것처럼, 탈레반 정부가 이끄는 아프가니스탄에도 SDGs는 적용돼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24일(현지시각) 화상으로 열린 G7 회의에 참석한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월 24일(현지시각) 화상으로 열린 G7 회의에 참석한 뒤 발언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안타깝게도 그간 나토는 SDGs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9년 기준 아프가니스탄 교육 프로그램을 향한 기부금은 3억1200만달러(약 3643억원)에 불과했다. 1500만 명의 학생(5~19세)이 누린 혜택이 일 일인당 20달러(약 2만원)에 그쳤다는 말이다. 미국이 매년 수천 명의 군인을 ②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하면서 쓴 돈은 일인당 100만달러(약 12억원)에 달한다.

얼마 안 되는 교육비 가운데 정부 예산으로 지원된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모든 지원금은 비정부기구(NGO)를 비롯해 외부인이 가동한 프로젝트의 형태로 마련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프가니스탄 국민이 그들의 정부를 무시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교육이나 그 외의 사회 핵심 분야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기부자들도 안전을 제공하는 것 외에 어떠한 도움도 제공하지 않은 셈이다.

미국의 일부 정치인은 협상 테이블에서 탈레반을 압박하기 위해 탈레반에 맞설 만한 새로운 반란 세력을 지원하길 원할지 모른다. 이는 ③ 미국의 전형적인 대응 방식인데, 틀림없이 전면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다행인 건 미국이 이런 부류의 반란을 지원할 물류 수단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또 이런 뻔한 접근에 중국과 러시아가 찬성할 리 만무하다.

저항 세력에 대한 지원이 제한될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G7은 탈레반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아프가니스탄의 외환 보유고를 동결하고, IMF·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의 신규 자금 조달을 보류하는 법적 기반으로 활용될 수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은 더욱 강한 경제적·인도주의적 위기를 조성할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위해? 미국의 제재가 이란과 북한, 베네수엘라에서 실패하는 걸 보지 않았나.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서도 (탈레반) 정부를 몰아낼 가능성은 거의 없다.

G7은 아프가니스탄 사태 해결을 위한 핵심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교민과 아프가니스탄 국민을 탈출시키는 것, 아프가니스탄의 40년 내리막을 끝내기 위해 중국·러시아 등 다른 국가들과 건설적으로 협력하는 것 등으로 말이다. 파괴는 충분히 이뤄졌다. 이제부터는 새롭게 건설해야 한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제프리 삭스 교수는 8월 17일 신디케이트에 쓴 또 다른 칼럼에서 개발도상국에 대한 거의 모든 미군의 개입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1960~70년대 미국은 인도차이나와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에서 싸웠는데, 남은 건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대학살뿐이었다고 삭스 교수는 말한다.

아프가니스탄 재건 특별감찰관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01~2021년 아프가니스탄에 9460억달러(약 1104조원)를 쏟아부었다. 이 중 86%인 8160억달러(약 953조원)가 군사 지출에 쓰였다. 나머지 14%의 대부분도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 중인 미국 기관과 마약 차단 활동 등에 사용됐다.

삭스 교수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979년 지미 카터 미국 행정부가 소련의 지원을 받는 세력에 맞서기 위해 이슬람 지하드를 은밀히 지원하면서 시작됐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이 아프가니스탄을 40년 동안 폭력과 유혈 사태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는 게 삭스 교수의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