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중국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이 전쟁 준비에 초점을 맞춘 국방 개혁을 주문했다. 시 국가주석은 9월 21일(이하 현지시각) 베이징에서 열린 국방 및 군대 개혁 세미나에서 “개혁 성공 경험을 진지하게 정리하고 운용해 새로운 형세와 임무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며 “전쟁 준비에 초점을 맞춰 용감하게 개혁하고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이 제기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지난 7월 빌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중국의 대만 침공은 기정사실”이라며 “다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지켜본 중국이 침공 시점에 대해 조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예상치 못한 전쟁 장기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반년간 러시아가 투입한 전쟁 비용만 1600억달러(약 225조6000억원)가 넘는다. 전쟁 초기에는 러시아 군대가 일주일 이내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점령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렸지만, 우크라이나 군과 국민의 거센 항전으로 종전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전 세계적으로 비난 여론이 거세지면서, 우방국이라 믿었던 중국과 인도마저 러시아와 ‘거리 두기’에 나서고 있다. 9월 15일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상하이협력기구(SCO) 정상회의에서 시 국가주석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전쟁을 중단하라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냈다. 이러한 국제 정세를 토대로 필자는 러시아의 실패를 지켜본 중국이 대만 침공을 실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3연임을 앞둔 시 국가주석이 내부 결속을 위해 전쟁 준비를 외치지만, 결국에는 러시아의 실패를 교훈 삼아 ‘전쟁 카드’를 꺼내 들지 못할 것이라는 얘기다.
우즈베키스탄에서 9월 15일(현지시각)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시진핑(앞 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 두 정상의 대면회동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이다. 사진 AP연합
우즈베키스탄에서 9월 15일(현지시각) 열린 상하이협력기구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시진핑(앞 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대통령. 두 정상의 대면회동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처음이다. 사진 AP연합
낸시 첸미국 노스웨스턴대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현 노스웨스턴 차이나 랩 이사, 현 켈로그 경제 개발이니셔티브 운영자
낸시 첸미국 노스웨스턴대켈로그경영대학원 교수 현 노스웨스턴 차이나 랩 이사, 현 켈로그 경제 개발이니셔티브 운영자

10월에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3연임을 결정하는 제20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가 열린다. 많은 이가 중국의 대만 공격 가능성 등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래를 점치기 위해 유리구슬을 들여다볼 필요는 없다. 중국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0년간 중국은 러시아와 역사적 궤적을 함께했다. 20세기 초반 두 나라는 전쟁, 부패, 불평등 그리고 가난에서 자국민을 보호할 수 없는 구식 제도를 가진 큰 제국이었다. 1900년 러시아의 1인당 소득은 미국의 3분의 1 정도였고, 중국 소득은 러시아의 절반에 불과했다. 

1949년 출범한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소련을 모델로 했다. 중국은 소련을 모방해 계획경제를 통해 자유시장을 대체했고, 국민 삶의 모든 것을 정부가 관여했다. 

계획경제에도 불구하고, 중국과 소련은 농작물 생산력을 유지하는 데 애를 먹었다. 노동에 대한 보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1932년부터 1933년까지 소련에서는 7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굶어 죽었고, 1959년부터 1961년까지 중국에서도 4500만 명의 사람이 아사(餓死)했다. 경제적 기근에 따른 엄청난 규모의 사망자 발생은 중국과 소련 정권에 심각한 정치적 위협이 됐다. 결국 소련과 중국 공산당은 자국민에게 자율권을 보장하고 경제적 번영을 가져올 현대화한 국가가 되는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 

소련이 먼저 그 길을 밟았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러시아는 중국에 있어 닮지 말아야 할 모델이 됐다. 1989년부터 1996년 사이 러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은 50%나 급감했고, 이후 10년간 경기가 회복하지 않았다. 부패와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났고, 실업률은 1991년 5%에서 1998년 13%로 급등했다. 알코올 의존증 등 사회적인 문제도 많이 생겼다. 1993년 1인당 알코올 소비량은 14.4L로 (소련 붕괴 이전인) 1989년(11.7L) 대비 23% 증가했다. 1994년에는 10만 명당 47명이 알코올과 연관된 원인으로 사망했다. 이는 당시 미국보다 세 배 더 높은 수치였다. 

중국 공산당은 러시아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자유화를 더욱 신중하게 추구했다. 러시아의 급속한 정치적 자유화가 공산당 권력을 몰락시켰고, 국가 자산을 경매로 처분하면서 러시아의 신흥 재벌 ① ‘올리가르히(Oligarch)’가 탄생하는 것을 지켜본 중국 공산당은 러시아와 같은 운명을 피하기 위해 노력했다. 중국 공산당은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조심스럽게 컨트롤하면서 아주 조금씩 경제를 개편했다. 부(富)를 분배하는 데 있어 급격하고 불안정한 변화를 피하려고 애썼다. 

물론 자유화는 중국과 러시아 모두를 상대적으로 평등한 공산 경제에서 상위 1%가 부의 3분의 1을 독식하는 경제로 바꿨다. 2015년 중국 하위 25% 가구는 전체 부의 1%만 소유했고, 러시아 하위 50% 가구는 15%만을 차지하고 있었다. 러시아의 올리가르히처럼 신흥 중국 재벌은 국가 권위에 도전하는 이기적이고 부패한 위협 세력으로 간주됐다. 푸틴 대통령은 올리가르히를 무너뜨리고 법과 질서를 되찾으면서 인기를 얻었다. 비슷하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을 견제함으로써 억만장자의 부와 힘을 억제해 인기를 끌었다. 

서방과 새로운 대결 구도 또한 두 정상의 인기를 높였다. 많은 러시아인과 중국인이 1991년 이후 ②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확장과 미국의 대만 지원을 보며 서방이 그들의 주권에 위협적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여론 조사를 보면 러시아인의 75%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고 있다. 중국 역시 러시아를 지지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여전히 자신들을 가난, 부패 그리고 외부 침입자들에게 맞서 평등 이념을 지키는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그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것이 논란이 될수록 그들은 서방과 대결 구도를 이용하려 한다. 외부 적의 존재에 대한 필요성 역시 더욱 커졌다. 2014년 러시아의 크름반도 강제 합병과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이 대표적인 사례다. 

10월에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의 3연임이 시작될 때 노골적인 정치적 저항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는 경제 발전이라는 대중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시진핑이 집권한 2012년 이후 불평등은 심화하고 부패는 증가하고 있다. 장기적인 ③ 제로 코로나 봉쇄 조치로 중국의 2022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1976년 이후 최저치인 3.3%로 낮아졌다. 국민적 인기를 높이겠다는 지도자의 전략이 방향 키를 중국의 경제 문제에서 대만을 힘으로 차지하려는 쪽으로 돌린 듯하다. 그럼에도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가능성은 작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를 목격한 중국이 러시아의 전철을 밟으려고 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면 중국은 러시아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면서도 러시아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으려는 노력을 해왔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더 거세지고, 러시아의 전쟁 비용이 많이 들어갈수록 대만을 둘러싼 평화는 더 오래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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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올리가르히는 고대 그리스의 과두정치(소수자에 의한 정치 지배)를 뜻하는 그리스어 ‘올리가르키아(oligarkhia)’에서 유래한 말이다. 러시아의 신흥 재벌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올리가르히는 소련이 30가지 경공업 분야에서 개인 사업을 허용하면서 등장했다. 이들은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러시아의 국영 산업이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정경유착으로 큰 부를 축적했다. 제조업과 석유, 가스 등 주요 산업들을 장악했고, 정치인들을 지원하며 권력을 누렸다. 올리가르히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의 비호를 받고 엄청난 부를 누렸지만, 2000년 푸틴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정치권과 갈등을 빚은 바 있다.

1949년 미국과 캐나다, 유럽 10개국 등 12개국이 발족시킨 집단안전보장기구다. 회원국 일방에 대한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집단적으로 방위 활동에 나선다는 점이 특징이다. 2022년 현재 회원국은 30개국이며, 본부는 벨기에 브뤼셀에 있다. 나토는 창설 당시 냉전 체제하에서 구소련을 중심으로 한 동구권의 위협에 대항했다. 과거 소련을 포함한 공산권 국가들은 이에 대항하기 위해 지역방위기구인 ‘바르샤바조약기구’를 창설했다. 한편, 올해 5월에는 그동안 중립을 지킨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지난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안보를 위해 나토 가입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제로 코로나는 감염자 ‘제로(0)’를 목표로 내건 방역 정책으로 코로나19 감염자가 발생하면 취하는 인근 지역 봉쇄와 이동 제한, 전수 검사 등의 강력한 조치를 일컫는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 중 미국 등 서구권 국가에서는 하루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왔지만, 지역 봉쇄에 기반한 제로 코로나 정책이 효과를 낸 중국에선 두 자릿수 이내의 확진자만 나왔다. 중국의 자랑이었던 제로 코로나 정책은 오미크론 확산으로 흔들렸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WHO)는 “중국이 다른 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낸시 첸

정리 심민관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

정리 김보영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