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위원장이 8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카카오 모빌리티 독점적 지위 횡포 중단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조위원장이 8월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카카오 모빌리티 독점적 지위 횡포 중단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김우창 카이스트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 ‘Quantitative Finance’ 편집장

인터넷 유머 게시판을 돌아다니다 ‘신박한 사업 아이템’이라는 제목의 글을 보았다. 누구나 살다 보면 한번쯤은 외출 중에 제때 화장실을 찾지 못하는 낭패스러운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이 사업은 참다못해 ‘선을 넘어버린’ 사람들에게 옷을 배달해주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다. 옷이나 물티슈 같은 물품 구매비는 실비로 하되 배달료 3만원을 추가로 받는 것이 수익 창출 모델인 듯하다. 익명성은 절대 보장하지만 “당신은 지금 갑질할 때가 아닙니다”라며 꼬장꼬장한 진상 고객은 사절하겠다는, 묘하게 현실적인 세부 사항이 웃음 포인트다.

이 게시글에 달린 댓글 중 무엇보다 눈길을 끌었던 것은 “조만간 카카오가 이걸로 사업하겠네”라는 글이었다. 농담임이 분명한 이 댓글은 별생각 없이 웃어넘기기에는 참으로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래도 혹시 장사가 잘된다면 카카오는 진짜로 이 사업에 진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사람은 필자뿐일까.

플랫폼 사업자의 전면적인 사업 확장은 무서울 정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기업의 숨결은 우리 삶에 아주 깊숙이 파고들었고, 플랫폼 기업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정도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추세라면 모든 경제 활동이 플랫폼 기업을 통해 일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이는 허황된 망상이다. 아직 선진국보다 모자라는 감은 있지만, 충분히 공정경쟁과 관련한 감시제도가 잘 갖춰진 우리나라에서 그 정도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다.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언론, 정부, 소비자, 생산자가 가만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플랫폼 업체는 수익에 합당한 효용을 참여자에게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플랫폼 덕에 아주 편해졌고,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사업이 플랫폼 덕에 가능해졌다. 하지만 그래도 위의 댓글이 여전히 묘한 불편함을 남기는 것은 규제의 칼날이 플랫폼 업체들에는 훨씬 무딘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일 게다.

5년 전 삼성의 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가 예식장업에 진출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는 당시 큰 사회적 논란을 야기했는데, 핵심은 소위 ‘골목상권 침해’ 논리였다. 중소기업의 시장 영역인 예식장업에 대기업인 삼성이 뛰어드는 것은 업계 내 상생을 침해한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결국 삼성은 사업전면철회를 선언하게 된다. 대형마트 휴점제 역시 이와 맥을 같이한다. 2012년 지자체별로 조례를 만들어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월 2회 휴무를 강제했다. 많은 사회적 논란과 헌법소원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대형마트의 24시간 영업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월 2회 휴무 역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삼성의 예식장업 진출을 허용했어야 한다거나 대형마트 휴점제가 전통시장 살리기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지적하고 싶은 것은, 소상공인 살리기를 명분으로 한 골목상권 진입 방지 논리가 기존의 대기업에만 강하게 적용되고 플랫폼 기업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는 우려다. 소위 플랫폼 기반 혁신 기업을 우대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역설적으로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여 장기적으로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은 없을까. 쿠팡의 로켓배송으로 신선한 채소를 누구나 당일 배송받을 수 있는 시대, 롯데마트는 왜 2주에 한 번씩 쉬어야만 하는가. 카카오의 미용실 생태계 독점은 괜찮은데, 삼성의 예식장 진출은 왜 안 되는가.

단적인 예로 8월 초 카카오모빌리티는 스마트 호출 요금제를 정액제에서 탄력요금제로 바꿔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돈을 더 내면 택시를 더 쉽게 잡게 해주는 스마트 호출 서비스는 그간 1000원의 정액요금을 적용해 왔다. 새로운 안은 이를 최대 5000원까지 탄력적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택시 기본요금이 3800원임을 감안하면, 택시를 타자마자 8800원을 내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 사업 확장도 지켜봐야

분명 카카오는 모빌리티 산업에 혁신을 가져 왔다. 이는 평가받아 마땅하며,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이 공정하다. 문제는 카카오모빌리티가 독점적인 사업자라는 점이다. 카카오T에는 전국 택시기사 25만 명 중 23만 명이 가입되어 있다. 이용자는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를 넘는 2800만 명에 달한다. 압도적 독점 체제를 달성한 카카오는 이윤 창출을 위해 아무런 규제 없이 실질 요금을 올리려 하는 것이다. 택시 산업은 면허 수로 공급이 조절되는 규제 기반의 기간산업이며, 영세 사업자인 택시기사는 요금조차 함부로 올릴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 같은 플랫폼 기업만을 피해가는 규제의 손길은 과연 공정하다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것이 국가 수준에서의 장기적인 혁신에 도움 되는 것인가.

무엇보다도 기존의 대기업 입장에서 볼멘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지점은 금융 산업이다. 재벌 주도의 고속 성장 이면에는 문어발식 순환출자 구조와 같은 폐해가 존재했다. 1995년, 이를 막기 위한 제도 중 하나로 은산분리, 즉 제조업 혹은 서비스업 회사의 은행 소유 금지 원칙이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 원칙은 금융 산업 혁신이라는 명분으로 정부에 의해 깨지게 된다. 인터넷 전문은행 특별법을 통해 설립된 카카오뱅크는 8월 6일 상장을 통해 코스피 시가총액 8위의 거대 기업으로 단기간에 자리 잡았다. 김범수 의장이 대주주인 IT 대기업 카카오가 카카오뱅크 지분 27%를 소유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결국 정부가 발 벗고 나서 은산분리 원칙을 직접 깨부수며 플랫폼 기반 IT 기업인 카카오에 특혜를 준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 혁신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 플랫폼 기업을 대하는 우리 정부의 태도는 단기간의 업적만 좇는 느낌이다. 원칙을 훼손하고, 독점을 허용하며, 특혜를 제공하면 눈에 보이는 혁신을 단기간에 달성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난 6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한 리나 칸으로 상징되는 미국의 플랫폼 기업에 대한 ‘빅테크 반독점법 패키지’, 그리고 디디추싱, 메이투안 등 중국 내 거대 플랫폼 업체에 철권을 내린 중국 시진핑 정권의 ‘공동 부유’는 이 맥락에서 궤를 같이한다. 혁신 기업이라도 기존의 사회 질서에 부합하지 않으면 규제받아야만 하며, 지속 가능한 혁신은 공정한 경쟁을 담보하는 규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은 지극히 민주적인 방법으로, 중국은 지극히 공산주의적인 방법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지만 말이다.

모빌리티 산업은 카카오가 압도적인 독점 사업자가 되었다. 그리고 카카오뱅크는 (시가총액 기준) 한국에서 가장 큰 은행이 되었다. 은산분리 원칙은 정부가 직접 파기했다. 독점사업자라고 카카오모빌리티를 분리시키거나 은산분리 원칙을 되살리겠다고 카카오뱅크를 닫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민주국가이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은 방법은 생산자, 근로자, 소비자가 혁신의 과실을 모두 누릴 수 있도록 공정한 경쟁을 담보하는 것이다. 카카오든 삼성이든, 쿠팡이든 롯데든, 생산자나 근로자에게 공정한 대우를 해주면서도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궁극적인 목표다. 그리고 그것은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미국은 가장 미국다운 방법으로, 중국은 가장 중국다운 방법으로 혁신과 사회의 보편적 가치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그리고 그 혁신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카로삼불’인가 흑묘백묘인가. 공정위, 일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