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김우창 카이스트(KAIST) 산업 및 시스템공학과 교수 서울대 산업공학, 미 프린스턴대 금융공학 박사, SSCI 학술지‘Quantitative Finance’편집장

4월 29일,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는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 71개를 발표했다. 이 중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미국 증시에 성공적인 상장을 마친 쿠팡의 동일인 지정 건이었다.

동일인이란 공정거래법상의 용어로 특정 기업이나 기업집단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사람이나 법인을 뜻한다. 편의상 기업 총수라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동일인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대표이사 회장, 네이버 이해진 창업자 등이 있다.

동일인은 특정 기업집단의 문어발식 확장에 의해 발생하는 폐단을 막기 위해 1987년 도입된 제도다. 국제적으로 일반적인 제도가 아니며, 우리나라 등 일부 국가에서만 운용된다. 공정위는 동일인을 중심으로 친인척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과 사익 편취 여부 등을 판단한다. 법 위반이 발견되면 제재하고 심한 경우엔 검찰에 고발한다. 동일인에 따라 특수관계인과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제재 대상 회사 등이 달라지므로 기업 총수들은 동일인 지정을 꺼린다. 재벌 규제의 출발점이 동일인이기 때문이다.

쿠팡의 미국 증시 상장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의 B클래스 소유주이며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김범석 의장은 기업공개(IPO) 이후 76.7%의 의결권을 보유하고 이사 선임을 포함해 주주의 동의를 필요로 하는 문제들의 결과를 통제할 능력을 갖게 됐다. 이런 맥락에서 공정위는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이 미국 쿠팡Inc를 통해 한국 쿠팡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음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공정위는 김범석 의장 개인이 아닌 법인(쿠팡(주))을 총수로 지정했다.

공정위가 공식적으로 밝힌 법인 동일인 지정 사유는 세 가지다. 첫째, 기존 외국계 기업집단의 사례에서 국내 최상단 회사를 동일인으로 판단해온 점. 둘째, 현행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이 국내를 전제로 설계돼 있어 외국인 동일인을 규제하기에 미비한 점, 마지막으로 어느 쪽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든 현재로서는 계열 회사 범위에 변화가 없는 점 등이다. 결국 규제의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다. 김 의장 개인이나 쿠팡(주) 법인 중 어느 쪽을 동일인으로 지정하든 기업집단의 범위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인인 김 의장이나 그의 친족이 소유한 국내 회사가 없어 사익 편취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다. 김 의장의 동일인 지정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를 위반한다는 지적도 있다. 결국 공정위는 정무적 판단을 한 것이다.

실질적인 지배력이 인정된 자연인이 동일인으로 지정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동일인 지정이 안 된 김 의장은 동일인으로서 받는 다방면의 규제로부터 벗어나게 됐다. 국내에서는 혈족 6촌과 인척 4촌까지 모두 동일인 관련자로 보고 규제하지만, 미국에서는 그 범위가 훨씬 좁다. 2017년 네이버의 이해진 창업자가 4%대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고, 오너 일가가 그룹 전체를 지배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동일인으로 지정된 사례나, 카카오 김범수 의장이 2016년에 총수로 지정받은 사례에 비춰보면, 김범석 의장은 다른 기업 총수에 비해 한국에서의 경영 활동과 관련한 개인, 혹은 가족 수준에서의 법적 책임으로부터 훨씬 자유로운 것이 확실하다.

쿠팡은 미국 델라웨어에 법적으로 위치한 쿠팡Inc가 지주회사이며, 일본의 소프트뱅크 그룹의 비전펀드가 지주회사의 지분 37%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실질적인 총수인 김범석 의장은 공정위가 밝혔듯 미국인이다. 쿠팡은 한국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고 있지만, 미국인이 창업했고 경영하는, 일본의 사모펀드가 최대주주인 미국 기업이다.

쿠팡과 유사한 사례는 S-Oil과 한국GM을 들 수 있다. S-Oil의 모기업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이며, 아람코 최대주주는 사우디 황실이다. 한국GM은 GM 계열사(76.97%)가 최대주주다. S-Oil과 한국GM의 동일인은 한국법인이며, 이러한 공정위의 선택에 사회적 논란은 전혀 발생한 바 없다. 이에 비춰 판단하면 공정위가 쿠팡의 한국법인을 동일인으로 지정한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

하지만 S-Oil이나 한국GM의 사례와 달리 공정위의 쿠팡에 대한 판단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단순히 김범석 의장이 미국인이라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김 의장이 한국계 미국인이 아닌 완전한 외국인, 그러니까 나카무라상이나 미스터 스미스, 혹은 사우디 왕자였으면 이런 논란이 있었을까. 김 의장은 미국인이지만, 한국인 부모로부터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살고 있으며,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그의 친족들도 모두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검은 머리 외국인(검머외)’이다.


자료 : ‘이코노미조선’ 정리
자료 : ‘이코노미조선’ 정리

쿠팡 동일인 지정 논란의 중심, ‘검머외’

쿠팡 동일인 지정 논란의 핵심은 우리 사회가 검머외, 특히 미국계 한국인에게 줬던 특혜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다. 검머외라는 표현이 일반화된 것은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 1999년,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극복의 일환으로 재미동포의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재외동포법을 만들었다. 이 법은 재외동포를 다른 외국인보다 우대하는 것을 골자로, 출입국 조처, 경제 활동 등에 있어 외국인으로서 받는 제약을 실질적으로 없앴다.

해당 조치로 한국계 미국인의 투자가 활성화돼 외환위기 극복에 도움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무와 권리를 취사선택하는 소위 체리피커들 때문에 수없이 많은 평범한 국민이 상실감을 느꼈던 것 역시 사실이다.

이제는 ‘풀 소유 스님’이라 비아냥받는 혜민 스님, 병역 면탈을 한 가수 스티브 유 등 연예계 인물들, 청문회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원정 출산으로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여 병역과 세금 혜택을 누리고 있는 정관계의 높으신 분들의 자제들 이야기는 차고 넘칠 만큼 많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 묵묵히 모든 의무를 다하는 평범한 국민이 검머외, 특히 한국계 미국인보다 못한 이등 시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필연이다.

공정위가 밝혔듯, 김 의장을 쿠팡의 동일인으로 지정하는 데는 아무런 규제의 실익이 없다. 하지만 이번 사례는 이 땅에서 나고 자란 혁신가들에게 아주 상징적인 메시지를 던졌다. 한국 국적을 버리면 이 나라에서 더 자유롭게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훨씬 많은 매출을 올리지만, 이재용 부회장은 한국인이기에 동일인으로 지정되어 상호출자, 지주회사 설립 제한, 각종 공시의무 등의 적용을 받고 있다. 김범석 의장보다 투자 활동에 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국인이 한국 땅에서 사업하는데, 검머외보다 더 많은 제약을 받는 것이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공정하지 않다.

최근 법무부가 국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바 있다. 골자는 영주자 중 국내 출생 등으로 우리 국민과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에 한해 그 자녀가 국내에서 태어나면 신고를 통해 우리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저출산, 고령화 시대 미래 인적 자원 확보를 입법 취지로 들었다. 해외에 문호를 개방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 국민이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는 데 외국인과 동일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뛰어난 인재를 해외에서 수혈하려는 노력만큼이나 이 나라에서 나고 자란 우리 자손이, 이 나라에서만큼은 외국인 못지않은 대우를 받고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