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환서울대 법학 학사, 미 조지타운대 조세법 석사, 사법연수원 29기, 사법시험 39회, 전 춘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김성환
서울대 법학 학사, 미 조지타운대 조세법 석사, 사법연수원 29기, 사법시험 39회, 전 춘천지방법원 부장판사, 전 대법원 재판연구관

세금은 경제주체들의 선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17세기 영국에서는 납세자가 보유한 집의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창문세(window tax)가 있었다고 한다. 그전까지는 집에 설치된 난로의 개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난로세(hearth tax)를 뒀는데, 징수 과정에서 세무 공무원이 가정집 내부에 들어가 난로의 숫자를 일일이 확인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납세자들과 마찰이 흔히 발생했다. 또한 잘사는 집이든 못사는 집이든 구별 없이 난로의 개수만을 기준으로 부과되는 까닭에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문제점도 논란이 됐다.

그래서 당시에는 일종의 사치품으로 여겨지던 창문의 개수를 기준으로 세금을 매기는 창문세를 도입했는데, 건물 외부에서도 쉽게 창문 수를 셀 수 있어 징수 과정에서 납세자들과 충돌을 줄일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사람들은 창문세를 피하거나 줄이기 위해서 집의 창문을 하나둘씩 메우기 시작했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집에서 살지언정 세금은 내기 싫었던 것이다.

네덜란드에서는 도로에 접하는 건물의 폭에 따라 세금을 매겼더니 사람들이 폭이 좁고 키가 큰 길쭉한 건물을 짓기 시작했는데, 요즘도 네덜란드를 여행하다 보면 이러한 형태의 건물이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 경험했던 고도압축성장 시대에는 세금에 관해 상대적으로 덜 신경 썼는지도 모르지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현재는 더욱더 세금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명목이자율이 그리 높지 않더라도 비과세 대상에 해당하는 금융상품이라면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거나, 회사 간의 시너지 효과를 목적으로 한 인수·합병(M&A) 논의가 세금 문제 때문에 좌초되기도 하는 등 세금에 의해 경제적인 선택이 영향을 받는 사례는 흔하다.


세금은 원래 대가와 관계없이 내는 돈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은 세금이란 원래 ‘대가와 관계없이 내는 돈’이기 때문이다. 누구든 되도록 세금을 덜 내고자 하는 동기를 갖게 마련이라는 주관적인 측면이 있고, 또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위한 의사결정을 할 때는 세후(稅後) 수익, 즉 세금까지 내고 난 후에 최종적으로 내 손에 남는 돈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는 객관적인 측면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경제성장이 정체돼 경제주체들이 기대하는 절대적인 수익의 크기가 줄어들수록 세금으로 떼어내는 부분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더 크게 와닿게 된다. 세금 신고나 원천징수를 잘못했을 경우에 덧붙여지는 가산세 부담까지 생각하면 더욱더 그렇다.

개인적으로도 얼마 전까지는 공직(부장판사)에 있으면서 세금에 관해 분쟁이 생겨 소송으로 발전한 이후만을 들여다보다가, 로펌 변호사로서 개인과 기업이 세무조사와 그 이전의 의사결정 단계에서 어떻게 세금 문제를 검토하는지까지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면서, 경제주체들에게 미치는 세금의 영향력을 더 직접적으로 절감하고 있다.


세금이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인 조세 중립성은 세금이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될 수 있으면 최소화하자는 원칙이다.
세금이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인 조세 중립성은 세금이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될 수 있으면 최소화하자는 원칙이다.

세금 때문에 자원 분배 왜곡될 수도

세금이 지향하는 목표 중 하나인 조세 중립성은 이처럼 세금이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을 될 수 있는 한 최소화하자는 원칙이다. 이는 세금 때문에 경제주체들이 다른 선택을 하는 왜곡이 발생하면 그 자체로 비효율적인 자원 분배를 초래해 사회 전체의 부(富)를 감소시킨다는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다. 한마디로 ‘시장은 최대한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조세 중립성만이 세금의 미덕일 수는 없다. 경제적 자원의 효율적인 분배가 항상 사회 전체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러 조세 중립성을 깨뜨리고 경제주체의 선택에 일정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세금도 존재하는 것이고, 이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정부의 주요 정책 수단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정책적 세금이 현실 세계에서 본래의 의도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채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을 엉뚱한 방향으로 왜곡하기만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점이다. 이때에도 물론 정부는 세수 확대라는 재정적 효과는 얻을 수 있겠지만, 애초 내세운 명분과 동떨어진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세금에 대해서는 납세의무자들의 조세저항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사회 갈등요소로 비화해 오히려 더 큰 손실을 줄 수도 있다. 조세 중립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추구하고자 했던 효과를 달성하지 못하는 정책적 세금은 사회 전체의 부를 감소시키고 납세의무자들의 불만을 키우면서도 오직 국고(國庫)만 배불리는 바람직하지 못한 세금으로 전락해버린다는 것이다.

이에 따른 악영향은 고스란히 정부와 사회 전체로 되돌아가게 된다. 앞서 영국의 사례에서도 봤다시피 납세자들이 세금부담을 줄이기 위해 창문을 메움으로써 주거환경과 건강이 악화하는 상황은 창문세를 도입한 정부로서도 절대 원하지 않았던 부작용이었을 것이다.


조세 정책은 실증 연구가 선행돼야

몇 해 전 대학원 수업에서 접한 ‘조세 설계(tax by design)’라는 책은 영국의 재정연구소에서 21세기 경제에 맞는 조세체계 개혁의 목표와 그 실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펴낸 보고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근대 ‘최적 과세이론’의 창시자인 제임스 멀리스 교수가 주축이 돼 다른 저명한 경제학자 및 변호사 등과 함께 써낸 이 책은 조세체계의 경제적 측면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특히 정책적 세금의 설계와 관련해서 통계자료와 실증적 연구를 토대로 삼아 현실에 미칠 영향과 파급효과를 면밀하게 분석하고 평가함으로써 바람직한 개혁 방향을 도출하고, 그 실천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살펴보면 다른 나라들도 우리와 마찬가지의 고민을 안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한편, 똑같은 고민을 과연 선진국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서 해결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무엇보다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을 일정한 방향으로 유도하고자 하는 정책적 세금은 가장 먼저 경제적인 측면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하고, 그로 인해 경제주체들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에 관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연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은 당위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이뤄지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서 개별 경제주체들은 각자의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냉정한 계산과 오랜 경험에 기반한 미래 예측 등을 동원해 의사결정을 하기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고 바람직한지를 따져보는 것은 뒷전으로 밀리기 십상이다.

정책적 세금을 설계할 때 납세자들이 과연 이에 반응해 어떠한 방향으로 경제적인 선택을 할 것인지를 먼저 고려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도덕적인 낙관론에 좌우돼 잘못된 전제를 설정하거나 당위론에만 치우쳐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을 도외시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물길을 새로 내기 위해서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의 본성을 바로 이해하고, 그에 맞게 주변 지형과 여건을 적절히 이용해야 하듯이, 정책적 세금 또한 마찬가지다.

요즘 들어 세간에 논란의 대상이 되는 부동산 관련 세제와 상속세 등 몇몇 세금들 역시 이와 같은 관점에서 과연 어떠한 점을 개선해야 본래 의도된 정책 효과를 매끄럽게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혹시나 실증적이고 객관적인 분석을 토대로 삼기보다는 당위에 매몰돼 현실과 동떨어진 출발점과 목표를 설정한 것은 아닌지 차분히 되짚어봐야 한다. 납세자들로 하여금 ‘창문을 메우도록’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