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숙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안명숙
연세대 도시공학과 도시계획 석사, 서울시 주택정책 자문위원

6월 17일 정부가 ‘갭투자(전세 끼고 주택 매입)와 전쟁’을 선언했다. 3억원 넘는 아파트의 전세 대출을 제한하면서 규제 대상 금액을 9억원 초과(12·16 대책)에서 3억원 초과로 낮췄다. 9억원 이하 아파트 가격이 상승하는 풍선효과를 의식한 결정이다.

본래 갭투자처럼 보증금을 승계해 매입하는 행위는 부동산 매매 시장에서 오랜 관행이었다. 경제적, 사회적 여건 등으로 주택을 구입하고 바로 입주할 수 없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전세를 줬다가 나중에 입주했다.

그러나 최근 갭투자는 투자 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문어발식 주택 투자가 성행하면서 집값이 단기간에 올랐다. 2020년 5월 기준 서울의 보증금 승계 매매 비중은 52.4%, 강남 4구는 72.7%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 거래보다 갭투자 비중이 훨씬 높다. ‘갭투자’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명사로 받아들여진 것 또한 이런 매입 형태가 투자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갭투자 비중이 늘어난 이유는 정부의 대출 규제로 설명되곤 한다. 정부가 15억원 이상 초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금지하고 9억원 초과 아파트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대다수 수요자가 집값이 오를 것으로 판단하고 주택을 선매입하려고 나선 것이다.

전세는 본래 임대인과 임차인 간 안전한 채무 관계에 불과했다. 세입자는 보증부 월세보다 높은 보증금을 내는 조건으로 월세를 지불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거비 부담을 줄인다. 임대인도 전세금을 올려 필요 자금을 충당한다. 전세 제도는 조선시대 말 농촌 인구의 서울 유입, 6·25 전쟁, 산업화 과정에서 심각한 도시 주택난을 겪으면서 자리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전세 제도가 유지되는 것은 그간 주택 시장에서 가격 상승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만약 주택 가격이 상승하지 않는다면, 현재와 같은 저금리 상황에서 주택 소유자는 전세금을 확정 금리 상품으로 운용해도 매력이 없다. 궁극적으로 전세가는 외부 충격이나 공급 증가 등으로 하락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인 상승세를 이어왔다. 전세가는 매매가와 상관관계를 갖는 주택 시장의 가격 지표로 자리매김해왔다.

1986년 이후 서울과 부산 아파트의 전세 지수와 매매 지수를 비교해서 살펴보면 전세가는 일반적으로 물가 상승률 이상 꾸준히 상승해왔다. 외환 위기나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외부 충격이나 공급 증가로 일시적 하락을 보였을 뿐이다. 특히 저금리 전세 자금 대출이 활성화한 2000년대 이후 전세가 지수는 집값과 그 궤를 같이했다.

부산은 집값 상승 기대가 크지 않고 공급도 지속해서 이어졌다. 그 결과 전세가 지수 그래프가 매매가와 일치하면서 안정적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전세 수요가 매매 수요로 자연스럽게 이동하면서 주택시장 내 ‘필터링 효과’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필터링 효과란 신규 주택 공급 증가로 소득이 높은 계층부터 더 좋은 집으로 이전하면서, 점차 모든 계층의 주택 품질이 향상되는 효과다.


김현미(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이 6월 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손병두(왼쪽)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함께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김현미(가운데) 국토교통부 장관이 6월 1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손병두(왼쪽)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과 함께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한 관리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전세는 어떻게 갭투자 수단이 됐나

반면 서울 아파트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4년 반 동안 안정세를 보였으나 서울 전세가는 같은 기간 상승 폭이 컸다. 결국 매매가와 전세가 사이 작은 틈이 생기면서 갭투자가 유리해졌다. 이는 집값 상승의 단초가 됐다. 2018년 이후 매매가 상승세가 지속하면서 매매가 상승 폭이 전세가 상승 폭을 크게 뛰어넘는 과열국면이 지속하고 있다. 만약 전세가 상승 폭이 커진다면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다시 줄어들면서 갭투자가 용이해진다. 이 경우 정부 대출 규제 효과가 반감되면서 수도권 아파트값은 다시 갭투자로 인한 거품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특히 강남구, 양천구 등은 교육 여건이 좋아 전세 수요 인기 지역의 가격 상승 폭이 크다.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을 보면 내년에 2만여 가구로 최근 5년간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돼 전세가 상승에 불을 붙이지 않을까 우려가 커지고 있다.

6·17 대책에는 대출 규제만이 아닌 갭투자를 막기 위한 토지 거래 허가제가 등장했다. 잠실, 대치, 청담, 삼성동 등 4개 동이 타깃이다. 개발 호재로 상승 폭이 큰 곳이라는 점이 규제 이유다. 결국 집값 상승의 바로미터가 되는 곳의 갭투자를 막는 것이 정부의 진짜 목표다. 이들 지역의 거래가 감소하면서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는 다소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틈새 효과가 다른 곳으로 번지면 정부가 규제 지역을 추가 지정할 전망이라 추격 매수에 신중해야 할 때다. 소나기가 오면 피해가라 하지 않았던가? 지금은 한 박자 쉬면서 정부의 정책 방향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러면 진짜 틈새가 보일 수 있다.

서울 잠실동과 삼성·대치·청담동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됐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잠실동과 삼성·대치·청담동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됐다. 사진 연합뉴스
서울 잠실동 부동산중개업소. 사진 연합뉴스
서울 잠실동 부동산중개업소. 사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