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지훈유튜브채널 ‘Gadget Seoul’ 운영,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장지훈
유튜브채널 ‘Gadget Seoul’ 운영, 한국 외국어대 졸업, 한화 갤러리아 상품총괄본부 기획팀

두 얼굴을 가진 로마신화 속 문(門)의 신, 야누스의 얼굴은 인간의 이중성을 묘사하는 상징으로 활용돼왔다. 정보기술(IT) 업계에도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모습을 한 기업이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삼성전자다.

생산과 설계, 반도체의 시작과 끝을 대변하는 두 분야에 있어 삼성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기업이다. 생산과 관련해서는 세계 최고의 미세 공정 수준을 달성한 파운드리(반도체 제조를 전담하는 생산 전문기업) 사업이 있다. 공정 미세화와 최신 기술의 발 빠른 도입이 곧 경쟁력인 파운드리 시장에서 삼성은 시장 1위 기업 TSMC를 기술적인 측면에서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로 존재한다.

설계와 관련해서도 삼성은 높은 수준의 역량을 갖췄다. 삼성의 설계 역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인 엑시노스다. 근 10년의 세월을 두고 안드로이드 진영 내 최고의 AP 중 하나로 뽑아도 손색이 없는 엑시노스는 삼성이 비메모리 분야 공략을 위해 특히나 공을 들이고 있는 이름이다.

파운드리와 모바일 AP. 각각 반도체의 생산과 설계를 대변하는 단어 속에 삼성의 비메모리 전략의 윤곽이 그려진다. 시스템 반도체 분야의 역량을 강화해 메모리 분야에 다소 집중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개선하고 사업영역 간에 새로운 시너지를 내는 것. 그리고 파운드리, 모바일 AP를 넘어 이미지 센서, 통신 모뎀 등 현재 삼성이 보여주고 있는 비메모리 분야의 성과들을 보고 있으면 그 전략은 꽤 실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점점 더 많은 분야를 공략해내는 기업 그래서 장래가 촉망되는 삼성전자. 하지만 이 이야기를 삼성의 관점이 아닌, 삼성을 바라보는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조금 다르다.

파운드리 기업은 반드시 팹리스 기업(반도체 제조 공정 중 설계와 개발만 수행하는 회사)이 필요하다. 팹리스 기업이 자신들이 설계한 반도체를 만들어줄 파운드리를 찾아 생산을 위탁해야 비로소 파운드리 기업의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TSMC와 더불어 업계 최고 수준의 생산 공정을 제공하는 파운드리로 그동안 글로벌 팹리스 기업들의 선택을 받아왔다. 하지만 삼성의 로직반도체 역량이 강화되면서 삼성은 자신의 파운드리 사업의 고객이 되는 팹리스 기업들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가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렇게 삼성이 5세대 이동통신(5G) 모뎀을 만들어내고 엑시노스가 로직반도체 시장에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는 동안 파운드리 사업의 핵심 고객 중 하나였던 애플, 퀄컴이 차례로 삼성의 파운드리에서 등을 돌렸다. 매력적인 파트너가 시장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가 되는 아이러니. 두 얼굴을 가진 삼성전자 비메모리 전략의 고민이 바로 이 지점에 놓여있다.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 깃발. 사진 연합뉴스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 앞 깃발. 사진 연합뉴스

새 비메모리 전략 필요…삼성 변화 중

최근 들려오는 삼성의 모바일 AP, 엑시노스 관련 소식은 야누스의 고민 앞에 선 삼성이 해당 문제에 의미 있는 대응 전략을 찾아가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먼저 살펴볼 부분은 엑시노스의 심장인 중앙처리장치(CPU)와 관련한 것이다.

삼성은 그동안 모바일 AP의 핵심이 되는 CPU 개발과 관련해 독자 개발 방향을 고수해왔다. 원천 기술을 보유한 영국 반도체 설계(IP) 기업인 ARM의 자산을 이용해 삼성 방식으로 커스텀(맞춤형) 설계를 해온 것이다. 생산에 설계 역량까지 확보하게 되면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에 이르러 삼성의 모바일 AP 사업은 파운드리 사업과 폭발적인 시너지를 기대해봄 직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해당 프로젝트를 관장하던 텍사스 오스틴의 CPU 개발팀 해체와 함께 새로운 방향성이 감지됐다.

삼성은 독자 CPU 개발을 포기하고 ARM과 협업을 택했다. 텍사스 오스틴의 CPU 개발팀을 해체하고 ARM의 협력사 CXC (Cortex-X Custom) 프로그램을 활용하게 된 삼성의 CPU 개발 전략 변화에 대한 이야기다. 모바일 CPU 관련 원천 기술을 보유한 ARM의 설계 능력과 삼성의 파운드리 기술이 만나 탄생하게 될 새로운 CPU는 엑시노스를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AP로 만들어 줄 것이다.

모바일 AP의 그래픽 성능을 좌우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대한 부분도 같은 맥락에서 정리해볼 수 있다. 삼성은 CPU와 마찬가지로 GPU 설계에서도 역시 유력 기업과 협력을 통해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을 택했다. CPU와 관련해 ARM과 협력을 택한 것처럼 삼성이 엑시노스의 GPU 설계를 위해 손을 잡은 기업은 GPU 시장 전통의 강자인 AMD다.

그렇게 되면서 새롭게 출시될 엑시노스의 성능 향상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우선 CPU 성능 향상과 관련해 ARM의 발표를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ARM은 엑시노스의 CPU 코어가 만들어질 CXC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며 새롭게 등장할 코어가 동일 세대의 고성능 코어보다 무려 30%의 성능 향상이 있다고 발표했다.

GPU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AMD가 보여주고 있는 모바일 GPU 성능 수준을 고려해보면 AMD의 모바일 GPU 아키텍처를 사용하게 될 엑시노스의 GPU 성능 역시 경쟁 제품을 상회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 엑시노스. 사진 삼성전자
삼성전자 엑시노스. 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시장 작동 원리 속 삼성 비메모리 전략 해답

엑시노스의 개발 방향성이 독자 개발이라는 것에서 선택과 집중 그리고 협력으로 바뀌는 순간 비로소 더 단단한 엑시노스의 미래 비전이 그려진다. 그리고 동맹에 맡긴 자리에 남은 삼성의 개발 여력이 엑시노스의 새로운 차별점을 만드는 데 재분배될 것이라는 점은 엑시노스의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다.

이 이야기에 그동안 반도체 시장을 이끌어왔던 핵심 작동 원리가 숨어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가장 높은 경쟁력을 확보한 이들끼리의 협력을 통해 최고의 시너지를 내는 것. 가장 강력한 협력 구조를 구축한 이들이 극한의 경쟁 속 최후의 승자가 되어 살았고 지금의 반도체 분업 구조가 완성됐다.

그런 관점에서 삼성이 구축한 진영은 꽤 단단해 보인다. 모바일 CPU 원천기술을 보유한 ARM과 GPU 시장의 세계적인 기업 AMD는 단순히 설계 분야의 협력을 넘어 삼성의 비메모리 사업 분야 반대편의 얼굴, 파운드리 사업에도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조합이다.

설계의 반대편에 놓인 파운드리 사업이 경쟁자라는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한층 자유로워졌다는 부분 역시 해당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는 부분이다. 설계와 관련해 AMD와 손을 잡게 되는 시점에 파운드리 사업과 관련해 AMD발 파운드리 수주 물량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점은 이 같은 점을 방증한다.

누군가는 삼성이 독자 CPU 개발을 포기하고 퀄컴의 CXC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점을 두고 미래를 버린 손쉬운 결정이었다고 비판하지만 일련의 이야기들을 차분히 복기해보면 로직반도체 전략 기조 변화 결정은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생각한다.

고도의 분업 구조에 순응하고 협력을 택한 삼성전자. 야누스의 고민 앞에 놓인 삼성의 비메모리 전략에 대한 해답이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