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 정책이 경쟁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이 ‘중국 제조 2025’ 정책을 통해 사이버 기술, 인공지능(AI), 항공 산업 등의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점하겠다는 포석을 깔았고 중동 지역 국가는 자원 고갈 이후를 대비해 비(非)석유 산업을 육성하기로 했다. 특히 이 국가들은 의료기기·제약·정보기술(IT)·스마트기술·신재생에너지·서비스 등 신성장 산업에 투자를 늘리기로 했다. 산업 다각화에 속도를 내면서 산업단지 개발·확충에 나선 국가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자유경제구역, 오만의 국가산업공단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정부 역시 신성장 동력을 육성하겠다며 벤처 투자를 늘리고 5G(5세대 이동통신) 상용화, 전기·수소차 보급, 핀테크 산업 육성 등 각종 정책 지원을 펴고 있다. 최근 글로벌 로봇 4대 강국을 목표로 제3차 지능형 로봇 기본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부 주도의 산업 육성 정책이 자칫 시장의 자율성을 해치고 관치금융이나 부패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것보다 시장 개입을 줄이고 민간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올바른 산업 육성 정책이라는 지적이다.
레다 체리프(Reda Cherif) 국제 통화 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왼쪽)푸아드 하사노프(Fuad Hasanov)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조지타운대 경제학부 부교수
레다 체리프(Reda Cherif) 국제 통화 기금(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왼쪽)
푸아드 하사노프(Fuad Hasanov)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 조지타운대 경제학부 부교수

1954년 1월에 발간된 ‘더 애틀랜틱(The Atlantic)’에 따르면 당시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이었던 존 F. 케네디는 산업이 미국 북동부의 뉴잉글랜드에서 미국 남부로 이동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신 정부가 뉴잉글랜드 지역 기업을 지원하고, 산업 노동자를 재교육하며 지역 산업 발전 기관에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케네디는 남부 지역의 성장을 도모하고 뉴잉글랜드에서는 새로운 산업을 촉진하는 데 있어서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날 산업 정책에 대한 논의는 수십 년간의 논쟁 끝에 다시 그 의제로 돌아왔다. ① 중국의 ‘중국 제조 2025년 계획’, 영국의 산업 전략, 새로운 프랑코-독일 정책 선언에 더해 ② 걸프협력회의(GCC·Gulf Cooperation Council)는 비석유 분야 개발 전략을 발표했고, 많은 개발도상국이 이와 비슷한 산업 다각화 노력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 간 경쟁 심화, 생산성 둔화, 제조업 일자리 감소, 불평등 증가 등에서 오는 압박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수립됐다. 그러나 산업 정책은 항상 정책 입안자와 학자 간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비평가들은 정부의 산업 정책은 많은 나라에서 효과가 없었고 대신 관치금융과 부패를 초래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경제에서 국가의 역할을 줄이고,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인프라와 교육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업에 유리한 환경에서 많은 기업과 기업가가 등장하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중남미를 비롯해 여러 나라의 산업 정책 실패 사례는 이 같은 견해에 힘을 싣는다.

반면 산업 정책 옹호론자는 우리가 국가 개입이 필요한 일종의 ‘시장 실패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의 개입이 없으면 특히 첨단 기술 분야의 경우 아무리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고 해도 새로운 산업이 등장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들은 동아시아 경제의 성공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조사 보고서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과거의 성공 사례를 토대로 ‘진정한’ 산업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세 가지 원칙을 추려내는 작업을 했다. 일본, 독일, 미국뿐 아니라 싱가포르, 한국과 같은 아시아의 기적이라 불리는 지역에서 정부는 신흥 기술 분야에서 국내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초기부터 개입했다. 첨단 분야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은 기술 혁신 정책을 의미한다.

기술과 혁신이 경제 성장의 핵심이다. 중국의 ‘중국 제조 2025’ 정책은 본질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이른바 ③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용했던 전략을 모방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프랑코-독일 산업 정책 전략도 미래의 산업, 즉 재생 에너지나 인공지능, 로봇 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혁신의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에 열려있는 선택지다.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국가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에 상관없이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데 국력을 집중할 수 있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것은 국내 투자자와 기업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소비자와 산업에도 기회를 창출한다. 게다가 기술 발전은 모두에게 유익할 수 있고, 전 세계적으로 경쟁, 혁신 그리고 생활 수준에 기여할 수 있다.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한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는 휴대전화용 마더보드. 사진 블룸버그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의 한 공장에서 조립되고 있는 휴대전화용 마더보드. 사진 블룸버그

날기 위해서는 두 개의 날개가 필요하듯이 효과적인 기술 혁신 정책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시장이 모두 필요하다. 국가와 시장을 대립 관계로 보는 방식은 잘못됐다. 2016년 저서 ‘브레이킹 오일 스펠(Breaking the Oil Spell)’에서 주장했듯이, 국가는 시장이 자발적으로 자원을 투입하지 않는 산업에 자원을 조달하는 것을 유도해야 한다. 동시에 정부는 자율적이고 경쟁적인 민간 활동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 시장에 의한 의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경제학자 ④ 마리아나 마즈카토(Mariana Mazzucato)는 “대중이 단순히 긍정적이거나 온순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야망을 품을 때, 새로운 영역을 개척할 수 있다”고 했다.

마즈카토는 뉴잉글랜드의 전통 산업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조달 정책뿐 아니라 연구·개발(R&D)에 대한 공적 투자를 통해 기술 혁신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새로운 분야의 창출을 촉진하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실제 1979년 미국 연방정부의 공적 조달은 항공기, 라디오, 텔레비전 장비 구입의 절반을 차지했다.

더 넓게 보면 국가가 공공 R&D, 위험 자본의 제공, 인프라와 기술에 대한 투자 등을 통해 신기술 육성과 상용화를 지원해야 할 이론적이고 경험적인 이유가 많다. 이러한 지출은 기존 혁신에 이익이 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혁신 창출에도 도움이 된다. 국가 주도 개발 정책 효과는 1961년 케네디가 달 탐사선 개발을 추진했을 때 가장 잘 드러났다. 불가능해 보였던 과제가 10년 만에 현실이 됐다.

기술과 혁신을 지원하려는 미국의 추진력은 과학과 파괴적인 기술의 진보로 이어졌고, 세계 최고의 첨단 기술 산업의 탄생을 이끌었다. 그 뒤를 이어 여러 아시아 국가가 ‘진정한’ 산업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그들 자신의 경제적 기적을 이뤘다. 이제 모든 국가는 기술 혁신 정책을 구현할 기회가 있다. 만약 그들이 성공한다면 그 결실은 우리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다.


Tip

2015년 리커창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처음 발표한 정책으로 제조업 기반 육성과 기술 혁신, 녹색 성장 등을 통해 중국 경제를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바꾸겠다는 산업 전략이다. 핵심 부품과 자재의 국산화율을 2020년까지 40%로 높이고 2025년에는 70%까지 달성해 10대 핵심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걸프협력회의(GCC)는 아라비아반도의 바레인, 쿠웨이트,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6개국의 정치·경제적 동맹이다.

중진국에 접어든 국가가 선진국으로 발전하지 못하거나 저소득 국가로 퇴보하는 현상.

런던대학의 혁신·공공 가치 경제학 교수이자 혁신·공공 목적 연구소(IIPP)의 설립자. 스코틀랜드 정부의 경제 자문위원회 및 남아프리카 경제 자문위원회의 위원.